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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에서 지옥으로’ 닮은꼴 두 권력자

유고 밀로셰비치-페루 몬테시노스, 비자금 조성 권력게임 즐기다 결국 철창행

  •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천당에서 지옥으로’ 닮은꼴 두 권력자

‘천당에서 지옥으로’ 닮은꼴 두 권력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59) 전 유고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몬테시노스(55) 전 페루 정보기관 총책에 대한 사법처리가 세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6월28일 유고 연방정부는 밀로셰비치를 헤이그 국제전범재판소로 넘겼고, 24일에는 ‘도망자’ 몬테시노스가 베네수엘라에서 붙잡혀 페루로 압송되었다. 두 사람 모두 지난 90년대 10년 동안 발칸 반도와 페루에서 숱한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거나 죽음으로 몰아넣은 절대 권력자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법정에 서야 하는 고단한 처지로 몰락했다.

1989년 세르비아 대통령에 올랐으나 지난해 10월 민중혁명으로 물러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은 논쟁적인 인물이다. 서방세계는 그를 ‘발칸의 학살자’라고 하지만, 지금도 많은 세르비아인에겐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영웅’이다. 다만 구호로 내건 ‘위대한 세르비아’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한 정치가가 되었을 뿐이다. 90년대 발칸 반도에서 밀로셰비치가 맡은 역할은 많은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불행하게도 그의 영향력 아래 놓인 90년대 발칸 전쟁으로 적어도 10만명, 많게는 25만 명이 죽었다. 이 때문에 헤이그 전범재판소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일반적으로 예상하는 선고량은 무기징역이다.

페루 정보기관 총책으로 10년 후지모리 정권의 대들보이던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는 ‘후지모리 대통령과 함께 페루를 이끄는 쌍두마차’ 소리를 들어온 인물이었다. 지난해 10월 페루에서 도망가기 전 몬테시노스는 페루 국가정보부(SIN) 요원 1만5000명을 아우르며 후지모리 10년 집권기간 중 2인자로서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페루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몬테시노스는 사관학교 선후배 인맥을 십분 활용해 농업대 교수 출신으로 군부에 대한 장악력이 부족한 후지모리 대통령과 군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다.

이런 배경으로 페루 군부에 대한 인사는 사실상 몬테시노스 손에 쥐어졌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절제하는 능력이 부족한 듯했다. 한마디로 그는 ‘국가 테러’의 상징적 인물로 기록된다. 그의 명령계통 아래 있는 특수정보대(일명 콜리나 그룹)에게는 리마 교외에서 일어난 15명 민간인 학살사건(1991년)을 비롯해 반체제 인사 납치살해 등 각종 인권탄압을 저질렀다는 혐의가 따른다. 그밖에 공금횡령과 마약밀매, 무기밀매 혐의가 있다. 밀로셰비치와 마찬가지로, 몬테시노스에게 내려질 선고량도 무기징역으로 보인다.

적어도 지난해 초가을까지는 밀로셰비치와 몬테시노스, 이 두 사람이 오늘 같은 비참한 처지로 몰락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절대권력을 누렸다. 두 권력자의 몰락을 부추긴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10년 권력 끝의 방심(放心)과 말기적 누수(漏水)였다. 지난해 치러진 9·26 유고 대선에 앞서 나온 여러 여론조사 지표는 밀로셰비치가 고전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밀로셰비치는 “설마 내가 지겠느냐” 면서 선거전에 나섰다가 보이슬라브 슈투니차 당시 야당연합 후보에게 패배했다. 그런 다음 어설프게 투표 결과를 조작 발표했다가, 그를 본 성난 유권자들의 시위가 민중혁명의 성격으로 커졌고 밀로셰비치는 마침내 물러나야 했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닮은꼴 두 권력자
몬테시노스도 10년 절대권력이 낳은 방심과 말기적 누수현상이 겹쳐 오늘의 고단한 처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정치인·법조인·언론인·군부 등 페루의 여러 세력들을 돈으로 매수하면서, 먼 훗날에 협박용으로 쓸 요량으로 그 장면들을 ‘몰래카메라’에 담아왔다. 그의 몰락을 불러온 결정적인 사건은 잘 알려진 대로 지난해 10월 초 야당의원 뇌물수수 현장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가 새어나간 때문이었다. 자신의 도끼에 발등을 찍힌 몬테시노스의 비디오 파문은 후지모리 정권의 부도덕성에 결정타를 가했다.

자신이 만들어 보관해 온 비디오 테이프가 이토록 페루 사회에 말 그대로 핵폭발을 일으킬 줄은 몬테시노스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이 사건은 그때 껏 정치 운명적으로 한배를 탄 후지모리 대통령과 몬테시노스를 갈라서도록 만든 결정적인 계기였다. 위기를 느낀 후지모리는 “4월 조기총선 실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 몬테시노스에게 망명을 종용했고, 몬테시노스 비리가 하나둘씩 파헤쳐지면서 마침내 후지모리 자신이 일본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다. 몬테시노스가 만들어 놓은 함정에 페루를 10년 동안 이끌어온 후지모리-몬테시노스 쌍두마차가 빠진 셈이다.

90년대 발칸의 실력자 밀로셰비치는 자신의 권력게임을 즐긴 듯, 스스로를 ‘세르비아의 호메이니’라 불렀다(호메이니는 잘 알려진 바처럼 이란의 회교지도자로서 81년 이란혁명을 성공시킨 인물이다). 그런 그가 극단적인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깃발을 내건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인종청소’로 숱한 희생자를 낸 데 대해 면죄부를 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토(NATO)군을 주축으로 한 코소보평화유지군(KFOR)과 함께 지난 99년 6월 코소보로 들어갔을 때 만난 알바니아인은 “밀로셰비치는 나치 히틀러 같은 인물”이라고 치를 떨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석연찮은 3선 연임 시비에서 비롯한 정치 위기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해 페루 현지에서 접촉한 지식인들은 “몬테시노스는 후지모리보다 권력게임을 더 즐기는 사람”이라는 말들을 했다. 후지모리가 권력의 총수로서 이른바 권력게임의 집행자라면, 몬테시노스는 그 권력게임의 가상 대결국면을 머리에 두고 입안, 기획 조정하면서 뒤에서 후지모리의 정치게임을 지켜보는 재미를 즐겼다는 것이다.

독재권력을 휘둘렀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반미냐 친미냐의 잣대로 보면 두 사람은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밀로셰비치는 90년대 발칸에서 잇단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들에 맞서왔다. 보스니아 내전(92~95년)에서는 나토군에 맞서 싸우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코소보 전쟁(98~99년)에서는 78일 동안의 나토군 공습을 받는 동안 “클린턴과 블레어를 전쟁 범죄자로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의 시각에선 헤이그에 본부를 둔 유고전범재판소는 ‘서방의 정치적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벨그라드 코슈투니차 정권이 서방의 경제원조 차단 압력에 굴복해 그 자신을 헤이그 법정에 세운다는 것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조종(弔鐘)을 울리는 일이다.

이와는 달리, 몬테시노스는 오래 전부터 미 중앙정보국(CIA)의 협력자로 알려졌다. 청년장교 시절부터 정보 업무를 맡은 몬테시노스는 현역 대위 시절이던 지난 1977년, 당시 페루 사회주의 정권의 소련 전투기 구입규모가 담긴 정보서류를 CIA에 넘겨준 혐의로 불명예제대를 했고 1년 가까이 감옥에서 보낸 전력이 있다. 정보기관 총수로 있는 동안 몬테시노스가 미 CIA와 밀착했다는 것은 페루 현지에선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몬테시노스가 페루 정보기관 총책이 되기 전부터 미 CIA에 줄을 대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숨을 곳이 마땅찮을 망명객 몬테시노스는 이런저런 연줄을 동원해 도움을 청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일단 용도 폐기된 전 권력자가 미 CIA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체포에 미 연방수사국(FBI)이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도 이를 반증한다.

밀로셰비치와 몬테시노스, 이들은 둘 다 막대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공통점도 빼놓을 수 없다. 밀로셰비치는 측근의 도움을 받아 수억 달러에 이르는 비자금을 스위스·이스라엘·레바논·그리스·사이프러스 등의 비밀계좌에 숨긴 혐의를 받고 있다. 페루정부에 따르면 몬테시노스도 적어도 2억7천만 달러에 이르는 ‘검은 돈’을 해외은행들에 숨긴 것으로 알려진다. 따지자면 도둑정치(kleptocracy)에 다름 아니다.

두 사람은 또한 많은 적들을 주변에 두었다. 10년 독재권력의 자연스런 부산물이다. 몬테시노스는 감옥 안에서의 암살을 우려해 방탄조끼를 입은 채 음식을 간수에게 먼저 먹으라고 한 다음 먹는다. 그는 “3만 개의 비디오 테이프를 숨겨놓았다”면서 이를 무기로 정부와 거래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밀로셰비치는 극단적으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egomaniacs)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옥중 자살을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치 권력자들은 두 사람의 실패에서 배울 게 많을 것이다.



주간동아 2001.07.12 292호 (p58~59)

<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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