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2

2001.07.12

댐 백지화 1년… 동강은 통곡한다

보전대책 표류… 래프팅 인파·양식장에 강물 오염, 생태계 파괴 가속

  • < 영월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5-01-05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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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댐 백지화 1년… 동강은 통곡한다
    동강(東江)은 잊혔는가. 지난해 6월5일 국내 환경사에 한 획을 그은 ‘영월댐(동강댐) 백지화’ 선언. 댐 건설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물 수요를 적절히 관리함으로써 자연생태계 보고(寶庫)인 동강을 보전하겠다는 정부의 발표 이후 동강은 얼마나 제 모습을 지켜왔을까. 범국민적 요구에 힘입어 수몰 위기를 넘긴 동강은 불과 1년여 만에 생태학적 미래가치를 외면당한 채 신음하고 있다.

    지난 6월27일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거운리. 영월읍 내에서 10여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동강 하류지역은 ‘버림받은 동강’의 현주소를 극명히 드러냈다. 이곳 섭새강변을 따라 죽 늘어선 것은 온통 래프팅(급류타기) 업체들. 동강쭛쭛쭛래프팅, △△레저래프팅, 동강XX레포츠 등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20여 업체들이 주차장과 샤워장 설비를 함께 갖추고 민박집과 식당까지 겸해 이 일대는 아예 ‘유원지’로 변모해 있었다. 몇몇 업체는 컨테이너박스 가건물과 천막을 설치해 래프팅 장비 보관창고로 쓰는 등 주변경관을 해치고 있었다. 새로 짓고 있는 건물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동강 인접 래프팅 업체 100여 개

    “군 내에서 영업중인 래프팅 업체만 60개다. 댐 백지화 이전의 20개보다 3배나 늘었다.” 래프팅업 등록업무를 맡은 영월군 문화관광과의 한 직원은 “등록번호가 적힌 부표를 부착하지 않은 래프팅 보트를 심심찮게 발견해 과징금을 물린 적도 있다”며 “농지에 무허가로 가건물을 짓는 불법행위도 공공연히 발생하지만 래프팅 업체가 워낙 난립하다 보니 정확한 실태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형편”이라 밝힌다. 외지에 사업장을 둔 업체도 5%에 이른다는 게 그의 귀띔. 동강을 끼고 인접한 정선군까지 합하면 래프팅 업체는 100여 개를 넘는다.

    영월군에 따르면 성수기인 7~8월의 동강 래프팅 인파는 무려 10만 명(월평균). 올해는 가뭄 영향으로 래프팅객이 많지 않아 업체마다 덤핑 가격을 제시하지만, 주민은 장마가 끝나면 지난해처럼 행락인파가 엄청나게 몰려 동강 유역의 오염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조금 상류에 위치한 문산리도 거운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 래프팅 업체의 손님 수송차량을 따라잡아 도착한 문산 나루터. 이곳은 73km 구간에 걸친 동강의 3~4개 래프팅 코스 중 하나인 문산 나루터~섭새(10km)의 출발 지점. 이날 오후 3시, 보슬비에도 아랑곳없이 서너 팀이 래프팅을 즐기고 있었다.



    “댐 백지화 이후 날만 새면 래프팅 차가 온다. 한여름 주말엔 래프팅 보트들이 강물을 벌겋게 물들일 정도다.” 나루터에서 음료수 노점상을 하는 이곳 토박이 엄영열씨(54)는 “래프팅이 주목적인 관광객들은 보트만 탈 뿐 환경은 뒷전”이라며 “올 여름에도 어김없이 이들이 버린 쓰레기가 동강 위를 둥둥 떠다닐 것”이라고 우려했다.

    댐 백지화 1년… 동강은 통곡한다
    강물을 썩이는 이런 직접적인 오염 외에도 래프팅은 동강변의 비오리와 천연기념물인 어름치·수달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비록 강원도가 동강의 어종보호를 위해 산란기의 래프팅을 규제해 영월과 정선에서 지난 4, 5월 일시적으로 래프팅을 금지하긴 했지만, 이는 근본대책이 못 된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공통된 견해다.

    동강보존본부 엄삼용 사무국장은 “댐 백지화 이후 목소리가 부쩍 커진 래프팅 업자의 상당수가 동강을 ‘돈(錢)강’쯤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며 “강을 뒤덮다시피 하는 수많은 래프팅 배들이 오랫동안 인간과 접촉하지 않은 동강의 수생동물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선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강을 망치는 건 래프팅만이 아니다. 동강 유역에 널린 송어 양식장도 강 오염을 가중시킨다.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와 영월군 거운·문산리 일대의 상당수 송어 양식장에서 양식장 찌꺼기가 섞인 폐수를 정화하지 않은 채 실개천으로 흘려 보내는 것. 실제 6월27일 오후 문산리의 한 송어 양식장과 이어진 개울에는 양식장 찌꺼기는 물론 주민과 관광객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부탄 가스통, 비료 포대, 주방용 세제용기 등이 악취를 풍기며 빗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동강 파괴는 강물 오염에만 그치지 않는다. 동강 유역의 천연동굴 중 생태적 가치가 우수한 동굴들도 이미 상당부분 훼손되었다. 원주지방환경관리청이 지난 3월 한국동굴연구소·한국동굴학회·한국동굴생물연구소 등 3개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동강 일대 71개 동굴 중 20개를 실태조사한 결과 연포굴(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옥굴(정선읍 용탄리), 먹굴(영월읍 삼옥리) 등 13개 동굴의 생성물(종유석 등)을 일반인과 전문 도굴꾼이 무차별 훼손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굴조사에 참여한 한국동굴연구소 우경식 소장(강원대 교수, 동굴지질학)은 “한국엔 1000여 개의 천연동굴이 있으나 이 중 천연기념물이나 지방문화재로 보존되는 동굴은 백룡동굴(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등 30여 개에 지나지 않는다”며 “학술적 가치를 지닌 동굴을 매장문화재법으로 보호할 수도 있지만 아직 일부 동굴은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되지 않은 실정”이라 말한다.

    지자체 공사도 동강 파괴 일조

    지자체의 반환경적 공사도 동강 파괴를 거든다. 지난 6월28일 동강 최상류인 정선읍 광하리~귤암리 2.4km 구간에서는 동강변을 따라 난 너비 4m의 편도 1차선 콘크리트 도로를 차량교행이 가능하도록 8m로 넓힌 뒤 도로가 수해로 침수하지 않게 도로보다 1.5~3m 높은 옹벽을 쌓는 군도(郡道) 6호선 수해복구 공사가 한창이었다. 굴삭기가 쉴새없이 도로옆 강변의 암반을 깨고 레미콘 트럭들은 연신 철근 구조물에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있었다. 이 공사는 수해로 인한 잦은 침수가 있음에도 이 일대를 댐 예정지로 고시한 후 기반시설 투자를 전혀 할 수 없어 불편을 겪어온 주민의 숙원사업. 현재 이 구간의 공정은 45%. 그러나 총 공사구간은 광하리에서 정선읍 남쪽 가수리를 잇는 26km로 올 연말까지 100% 완공할 예정. 정선군 건설과 관계자는 “일부 환경단체가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공사라고 비판하지만 수해복구공사는 현행법상 환경영향평가를 거칠 필요가 없다”며 “도로폭을 당초 8m로 설계했지만 실제 시공은 강변의 생김새를 유지하면서 6~8m 폭으로 융통성을 두고 진행해 환경엔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강 지킴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동굴연구소 김련 연구원은 “도로를 넓히려면 강변을 파헤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강폭이 좁아져 급격한 생태계 변화가 우려된다”며 “산과 마을을 뱀처럼 휘감고 흐르는 사행천(蛇行川)인 동강의 특성상 공사로 인해 깎인 강변은 물길을 바꿔 반대쪽 강변을 크게 침식시킬 것”이라 분석한다. 환경단체들은 또 당초 도로 성토용재 확보를 위해 귤암·가수리 강변에서 10t 트럭 1700대 분량의 골재를 채취하려던 정선군이 어류의 안식처인 자갈톱과 모래톱을 훼손할 것이라는 각계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하자 이를 철회하고 이 일대 사유지의 흙을 대신 사용하고 있는 데 대해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졸속행정이라 비판한다.

    동강 유역의 자연훼손은 이렇듯 빠르면서도 광범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동강을 위한 종합보존대책이 댐 백지화의 후속조치로 마련되지 않은 게 문제다. 현재 ‘최소한의 보존책’으로 거론하는 것은 ‘자연휴식지’ 지정. 자연휴식지는 국·도립공원이 아닌 지역 중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역을 보전하기 위한 자연환경보전법상의 제도. 동강 일대를 자연휴식지로 지정하면 해당지역 주민협의체가 위탁관리하며 관광객에게 자연휴식지 이용료를 징수하고 생태관찰시설 등을 조성해 입장료도 받을 수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자연휴식지로 지정할 곳은 정선군 광하교~영월군 섭새마을에 이르는 60km 구간의 강 양안 500m, 면적은 17.6km2다.

    댐 백지화 1년… 동강은 통곡한다
    환경부는 지난 5월22일 일부 언론을 통해 이같은 내용의 자연휴식지 관리계획을 강원도 및 동강 유역에 속한 영월·평창·정선군과 합의하고 6월15일부터 실시한다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주민 동의를 얻지 못해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 환경운동연합이 자연휴식지 지정은 장기 보존책으론 미흡하다며 동강을 생태계보전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주장하고 나서 의견조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은 조사기간이 많이 걸려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볼 대안이다. 일단은 댐 백지화 직후부터 1단계 동강보존책으로 준비해 온 자연휴식지 지정을 우선시할 계획이다.” 환경부 자연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최근 동강 유역 주민이 이 문제를 협의할 주민협의체를 오는 7월10일까지 구성키로 해 자연휴식지 지정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연휴식지 지정 논의가 민·관 간의 충분한 교감없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보편적 정서다.

    “아직 자연휴식지의 개념조차 모르는 주민이 태반이다. 더욱이 환경부의 자연휴식지 지정방안이 그다지 구체적이지 못해 과연 동강보전과 주민생존을 모두 감안한 최적안인지 의문이다.” 영월댐수몰주민대책위원회 이영석 위원장(39)은 “자연휴식지 지정 권한을 가진 3개군 역시 이렇다 할 ‘액션’없이 표류행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여기엔 댐 건설예정지 고시 이후 저리 영농자금 대출 등 각종 지원이 끊기고 규제를 강화해 고리의 일반자금과 사채를 빌려 쓰다 영농 빚을 떠안은 주민의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주민들이 자체 파악한 농가부채는 3개군 내 500여 농가의 132억 원. 이에 대한 부채상환 연기 및 이자 일부보전 등의 방안을 지자체들이 마련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부채 해결엔 미흡하다. 때문에 주민은 재산권 행사의 제한범위가 큰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엔 강한 거부감마저 느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댐 백지화로 댐 고시지역에서 해제된 영월댐 건설후보지 22.7km2 내 주민의 재산권 행사가 가능해지면서 동강변엔 민박집들이 앞다퉈 들어서고 있다. 이들은 사실상 숙박업을 하고 있지만 법적 규제는 전혀 없다. 지난 99년 관련법규를 개정하면서 방 5개 이하의 민박에 대해선 규제를 못하게 한 것.

    지난 6월28일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와 운치리를 거쳐 가수리까지 더듬어가는 동안 동강변 곳곳에서 각종 건축물 공사가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영월군 삼옥리~거운리 구간과 문산리 등에서는 농가주택을 새로 지었지만 법이 규정한 60평을 초과해 짓는 위법행위도 수시로 발생해 난개발을 부추기는 실정이다. 동강변엔 경매로 인한 외지인의 농지매입도 줄을 이어 투기 조짐마저 엿보인다.

    그럼에도 환경부와 강원도의 결정을 마냥 기다리는 3개군과 다를 바 없이, 강원발전연구원을 통해 동강관리종합대책을 강구중인 강원도 역시 아직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민 모두가 나서서 살려낸 동강은 과연 자연과 인간, 보전과 적정한 개발간 ‘공존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헛구호에 그쳐버린 ‘동강 사랑’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강은 맑고 푸른 강물만 무심히 흘려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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