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2

2001.07.12

기무사, 민간인 강압조사 말썽

실체 불분명한 내부 진정사건 불법 수사 … 장군 진급 예정자 군복 벗겨

  • < 김 당 기자 > dangk@donga.com

    입력2005-01-05 16: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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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무사, 민간인 강압조사 말썽
    국군 기무사령부가 내부 진정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간인을 강압 수사하고 피진정인의 동의 없이 통화명세를 추적하는 등 불법을 저지른 것으로 지적받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한 가정의 불화였다. 지난 3월 초 국군 기무사령부 소속 K중령은 아내 L씨와 합의 이혼했다. 이혼한 K중령은 곧바로 소속 부대인 국방부 기무부대에 진정서를 냈다. 진정의 요지는 아내가 5년 전에 자신의 상관이던 S대령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후 낙태한 적이 있고, 그로 인한 가정불화로 이혼에 이르렀으니 S대령을 처벌해 달라는 것이었다.

    국방부 기무부대를 경유해 진정을 접수한 기무사 참모장은 진정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S대령은 오는 7월1일부로 장군 진급 예정자인데다 부대원의 비위를 감찰하는 직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S대령과 K중령은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는 등 18년 동안이나 알고 지냈으며, S대령은 교회 장로였고, 역시 기독교 신자인 L씨는 S대령 부부가 다니는 교회에 함께 다니기도 했다. 참모장은 일단 기무부대 출신의 민간인 J씨 등에게 S대령의 통화명세 조사 등 뒷조사를 시키고 진정이 접수된 지 5주 만인 지난 4월17일 열린 기무사 간부회의에서 진정 내용과 내사 결과를 공개하고 대처방안을 논의했다.

    참모장은 간부회의 다음날인 4월18일 대공수사단장 H대령에게 진정사건 특별조사팀장을 맡겼다. 특별조사팀은 K중령에게서 진정사실을 재확인하고 L씨가 5년 전에 낙태한 사실도 확인했다. K중령은 아내 L씨가 1996∼97년에 S대령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S대령은 진정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L씨 역시 5년 전의 낙태는 S대령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진술했다.

    특별조사팀은 L씨에 대한 4차례 조사와 추궁 에도 불구하고 S대령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자 지난 5월8일 L씨를 동서울터미널 근처로 불러냈다. L씨는 근처 호텔에서 조사를 받겠다며 두 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임의동행 형식으로 수사관들을 따라갔다.



    L씨는 거짓말 탐지기가 있는 서울 장지동 기무사 210분실에서 오후 3시부터 10시간쯤 조사를 받았다. L씨는 고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경찰관의 입회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거짓말 탐지기 조사도 받을 수 없다며 나가려 했으나 수사관들이 가로막는 바람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여성 수사관도 없었다.

    대공수사단 요원들이 진정사건의 참고인인 민간인을 대공수사분실로 사실상 강제 연행해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10시간 이상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한 것은 기무사의 수사권한을 넘어선 월권행위라고 할 만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96~97년 S대령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부인한 L씨의 진술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거짓’이 아닌 ‘진실’이라는 반응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추궁은 계속되었고 L씨는 자포자기 심정에 조사관이 요구하는 대로 89∼90년에 S대령과 3∼4회 만나‘성적 접촉’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현재 L씨는 “S대령은 평소 존경하는 분으로 전혀‘그런 관계’가 없었고 다만 그때 오랜 만에 만나 악수한 것 이상의 접촉은 전혀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S대령 또한 “지난 89∼90년 무렵 남편의 장래 문제로 고민하는 L씨의 연락을 받고 3∼4회 만나 식사한 적은 있지만 ‘부적절한 관계’는 없었다”고 말한다.

    특별조사팀은 K중령의 진정내용(96∼97년 사건)은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으나 89∼90년 두 사람 간에 ‘성적 접촉’이 있었다는 취지로 보고했다. 이를 근거로 기무사는 지난 5월28일 현역복무 부적격 조사위원회를 열어 S대령을‘사생활이 방종하여 근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군의 위상을 손상케 하는 자’(육규 115 제15조 2항)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S대령이 피진정인인 본인에게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본인 동의 없이 통화명세를 추적하고 심지어 내사팀이 통화명세를 진정인에게 제공하는 등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며 이의를 제기하자 기무사는 이 사건을 육군본부 현역복무 부적격 심사위원회로 넘겼다.

    결국 지난 6월26일 육군 현역복무 부적격 심사위는 진정사건과는 무관한 10여 년 전의 ‘사생활 방종’을 문제삼아 S대령을 ‘현역복무 부적격자’로 규정해 ‘옷’을 벗겼다. 그러나 S대령은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에 기초해 내린 현역 부적격 처분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한 가정의 불화와 구설(口舌)에서 비롯한 내부 진정사건에 대한 ‘부적절한 처리’가 기무사 조직과 개인의 ‘부적절한 관계’로 번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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