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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증시 ‘큰장’ 오는가

“돈벼락 맞자”… 때아닌 ‘대박’ 꿈

금융위기 경고 속 대형 저가주 연일 강세…“유동성 장세는 난센스” 분석도

“돈벼락 맞자”… 때아닌 ‘대박’ 꿈

“돈벼락 맞자”… 때아닌 ‘대박’ 꿈
증시 ‘큰장’ 오는가금융시장처럼 인간의 본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또 있을까. 무한한 욕망과 극심한 공포가 시장을 떠받치는 양대 심리구조다. 탐욕이 지배하면 시장은 과열되고 사람들은 무리수를 두게 된다. 반면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면 시장은 끝없이 추락한다. 욕망과 공포라는 상반된 인간심리로 인해 금융시장, 나아가 자본주의 자체가 불안정한 과열과 침체를 반복하는 것인지 모른다.”(김성환, ‘정크본드에서 헤지펀드까지’에서)

사상 최초의 은행 파업에도 불구하고 서울 증시 주변에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 상반기 내내 증시를 짓눌렀던 ‘수급 불안’ 악재에서 벗어나면서 하반기엔 ‘대박장’이 올 것이란 기대감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하반기 중 종합주가지수 1200 돌파를 예고하기도 한다. 5월29일 종합주가지수가 655.93까지 폭락했을 당시의 공포감은 완전히 사라진 느낌이다.

그러나 ‘대박장’은 성급한 기대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상반기의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 점차 회복될 가능성은 있지만 대박은 없다는 것이다. 대우증권 이종우 투자전략팀장은 “예고된 대란이 없듯 예고된 대박도 없다”고 단언한다. 또 오는 9월 이후 국제유가 인상에 따른 물가불안 등으로 증시 역시 불안할 것이라는 견해도 없지 않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자딘플레밍증권 김철중 이코노미스트는 “펀더멘털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데 상반기에는 극단적으로 비관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더니 하반기 들어 갑자기 낙관적인 분위기로 바뀌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극단적인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에 다시 제2의 위기가 오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외국인들은 정부의 원칙 없는 금융산업 구조조정, 무분별한 시장 개입 등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런 우려나 경고에도 불구하고 7월 들어 서울 증시는 산뜻하게 출발해 투자가들 사이에 큰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물론 코스닥 시장은 여전히 수급불안 우려로 맥을 못 추고 있지만 거래소시장은 기지개를 켜고 있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상반기 내내 주식시장을 괴롭혔던 투신권의 매도공세가 주춤해지고 있고, 정부의 강력한 금리안정 의지가 시장에서 먹혀들어가면서 금리가 속락하는 것 등이 투자가들의 기대를 부풀게 하는 대목이다. 결국 하반기 ‘대박 장세론’의 가장 큰 근거는 풍부해진 유동성인 셈이다.



‘유동성 장세’란 증시에 풍부한 자금이 들어와 주식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상황을 말한다. 작년에도 시중 자금이 투신권의 수익증권과 뮤추얼펀드로 몰려들면서 풍부한 자금을 기반으로 한 유동성 장세가 펼쳐졌다. 작년 7월 말에는 투신권 수탁고가 254조8966억원으로 사상 최고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후 대우사태 등으로 투신권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증시 수요 기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올 6월 말 현재 투신권 총수탁고는 142조489억원.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112조원 이상이 투신권을 이탈했다는 얘기다. 주식형 수익증권 등 간접상품에 투자했던 고객들의 환매 요구에 응하기 위해 투신권이 보유주식이나 채권을 팔 수밖에 없었기 때문. 올 6월 말까지 거래소시장에서 6조9236억원을 순매도한 기관투자가들의 물량 가운데 상당 부분이 투신권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7월 들어서는 투신권에 자금이 유입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올 6월 말까지 37조1713억원이나 감소하던 투신권 수탁고는 7월 들어 나흘 동안 4조5424억원이나 증가했다. 비과세 신탁상품 등의 예약판매가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지속적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 업계에서는 국회에서 조세특례제한법이 개정돼 본 인가가 나는 7월 말경에는 비과세 신탁상품으로 자금유입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구재상 상무는 “하반기 주식시장은 투신권에 자금이 얼마나 유입되는지에 따라 대세가 결정될 것”이라며 “최근 정부가 비과세펀드 등을 투신권에 몰아주고 있어 투신권의 매수세가 장을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도 “투신권의 환매 부담이 줄어들어 기관의 수급상황이 개선된 데다 금리 하락으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여 7~9월에는 기관이 이끄는 유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7월 들어 건설-증권-은행주 등 저가 대형주가 연일 강세를 보이는 것을 유동성 장세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보통 유동성 장세에서는 고수익을 쫓는 돈의 속성상 유동성이 풍부하고 접근하기 쉬운 저가 대형주로 매기가 몰린다. 대유리젠트증권 김경신 이사는 “아직 유동성 장세가 시작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전제하면서도 “최근 증권주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과거 상승장의 초기에 나타났던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증권주는 과거에도 투자가들 사이에 큰장이 열릴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면 가장 먼저 꿈틀대는 경향이 강했다. 증시가 활기를 띠면서 거래량이 늘어날 경우, 수수료 수입에 의존하는 증권사의 실적이 크게 좋아지기 때문이다. 증시가 바닥을 헤매던 98년 7월 삼성증권이 바닥을 치고 올라가면서 증권주들이 동반 상승을 시작했고, 3개월 후인 10월부터 증시의 대세 상승이 실현된 바 있다.

동원경제연구소 기업분석실장 온기선 이사는 “금리안정과 투신권 자금유입이라는 유동성 장세 조건에 더해 올해의 기업 수익성도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작년보다 더 좋아질 것으로 보여 4·4분기에는 실적장까지 예상되기 때문에 올해 종합주가지수 1200선 돌파는 무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원경제연구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기업들의 당기순익은 작년보다 92%나 증가한 27조원에 이를 전망.

그러나 유동성 장세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는 “투신권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게 멈춘 단계일 뿐 순유입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유동성 장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다만 그는 주식시장이 바닥을 쳤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상무는 하반기 저점을 700~750, 고점을 950~1000으로 예상했다.

한국투자신탁 주식운용부 윤성일 부장은 “투신권의 주식형 펀드나 채권형 펀드에 자금이 몰리긴 하겠지만 9월 이후에는 물가불안 등으로 장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7~8월에는 사상 최대로 예상되는 기업들의 반기 실적 발표로 실적 장이 전망된다는 것. 윤부장은 “7~8월 종합주가지수가 900~950선까지 갈 것으로 본다”면서 “지수 900 이상부터는 리스크 관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증권 이종우 투자전략팀장은 “시중 자금이 갈 곳을 못 찾고 떠다닌다는 전제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증시로 급격히 자금이 유입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팀장은 “작년 11월부터 지난 5월까지 은행권의 단기상품에 들어온 돈은 5조6000억원이었지만, 장기 상품에는 39조8000억원이 들어왔다”면서 “이는 7%대 금리가 1년 반 정도 계속되면서 시중자금이 여기에 적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쪹미래에셋증권 박만순 투자전략실장도 “서머 랠리보다 오텀 랠리에 기대를 걸어야 할 것”이라면서 유동성 장세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유로화 하락, 유가 인상 등으로 3·4분기 미국 경기가 둔화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국내적으로는 인위적으로 유동성을 풀어 기업 부도를 막고 있는 상황인데 이를 유동성이 창출됐다고 보는 것은 난센스”라는 것. 따라서 기업 구조조정 성과가 가시화되고 신용경색이 해소되는 4·4분기 이후에나 큰장이 올 수 있다는 것.

7~8월 유동성 장세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애널리스트들은 외국인 투자가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공통적으로 ‘냉정한’ 평가를 하고 있다. 이남우 상무나 박만순 실장은 새로운 외국인 투자자금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종우 팀장도 “그동안 외국인은 삼성전자 한국통신 현대전자 등 정보기술(IT) 관련 주식을 집중 매수했는데, 월가에서는 IT주식은 정점이 지났다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 서울 증시의 IT주식만 오를 것이라고 보는 것은 비합리적인 견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최근 들어 한국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외국인 투자가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자딘플레밍증권 김철중 이코노미스트는 “장기시설자금을 대출해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산업은행이 종금사에 유동성을 지원해주고 장기 상품인 은행 신탁을 단기로 만들어 기업어음(CP) 매입을 유도하는 등 오히려 우려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 투자가 눈에는 청소해야 할 기업을 오히려 살리는 것으로 비치고 있다는 것.

헤지펀드에 자문해주고 있는 애널리스트 A씨도 “최근 외국인 투자가들은 한국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에 회의를 표시하고 있다”면서 제2의 위기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가령 최근의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10조원대의 채권펀드가 나중에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는 것.

“최근의 자금시장 경색은 회사채와 CP를 인수해주는 기관인 투신사, 은행 신탁계정, 종금사에 돈이 몰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이들 기관이 고객 신뢰를 잃은 결과다. 그렇다면 새로운 투신사가 생겨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금융기관 진입장벽 때문에 불가능하다. 도대체 고객 돈을 관리하는 투신사가 자기자본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외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미 고객의 마음이 떠나버린 대한투신과 한국투신을 살리기 위해 새로운 상품을 몰아준다고 한들 얼마나 자금이 몰릴지 의문이다.”

증시는 하늘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시점에서 한국 경제의 구조조정이 미진하다는 진단이 높아가고 있고,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쓸데없는 탐욕을 부리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사실 아닐까.





주간동아 2000.07.20 243호 (p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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