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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점기획­|처가살이혼 늘어난다

‘처가살이’는 선택 아닌 필수?

맞벌이 부부 늘며 새로운 확대가족 자리매김…사위 역할 제대로 해야 장모 사랑 '듬뿍'

‘처가살이’는 선택 아닌 필수?

‘처가살이’는 선택 아닌 필수?
대학교수인 최 모씨(38)는 처가살이 석달째다. 그가 다섯 살, 두 살 된 남매를 데리고 처가행을 결심한 것은 아내의 해외연수 때문이었다.

부부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늘어놓고 머리를 맞댔다. 첫째, 친가행. 그러나 친가에는 형님 내외가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데다, 아버님이 병중이셔서 두 아이까지 떠맡기기가 미안했다. 둘째, 처가행. 처남이 유학 중이어서 큰 집에 장인 장모만 사시니 아이들 데리고 들어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셋째, 친가 근처로 이사. 넷째, 처가 근처로 이사.

고생하는 딸 육아고민 해결

최교수네는 양쪽 집안이 모두 어서 들어오라고 불러주는 행복한 경우였다. 그러나 1년이라는 한시적인 처가살이였기 때문에 그는 눈 딱 감고 여건이 좋은 처가를 택했다. 앞으로 두 주일 후면 아내는 미국으로 떠나고 그는 아내 없는 처가살이를 시작해야 한다. 최교수는 “아내가 없으면 장인 장모님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지겠지만 다 한식구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강모씨(36)는 지금 처가살이를 하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린다고 말한다. 대학강사인 아내와 결혼하면서 신혼집을 처가 바로 옆에 마련했다. 사실 그곳은 장인이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준비해둔 집이었는데 한 층을 자신들이 쓰게 된 것. 물론 엄연한 전세입주였다.



처가 바로 옆에 살면서 육아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이제 갓 돌을 넘긴 아들을 장모가 길러주기 때문에 큰 걱정 없이 맞벌이 생활을 한다. 하지만 몸이 약한 장모가 손자 한 명 기르는 일도 벅차하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장모의 사위 사랑”을 별로 받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가까이 살면서 서로에게 불만만 많아지는 것 같아 강씨는 처가도 친가도 아닌 제3의 장소로 이사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동갑내기 의사 부부인 정 모씨(33)는 다섯 달 전 5년간의 처가살이를 끝냈다. 애초 결혼 때부터 친가에서 “누가 의사랑 결혼하랬느냐”며 절대 아이를 길러줄 수 없다고 딱 잘랐기 때문에 비빌 언덕은 처가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근무지가 바뀌면서 처가에서 출퇴근하기에 너무 멀어지자, 어쩔 수 없이 아내의 병원 근처로 이사했다. 아이를 돌봐주는 할머니 한 분을 구해 같이 살고 있지만 처가에 살던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저녁마다 다섯 살 된 아들을 놀이방에서 데려오는 일을 놓고 아내와 티격태격해야 하고(처가에서는 장인의 몫이었다), 제 손으로 챙기지 않으면 밥 한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내는 핼쑥한 얼굴로 짜증만 냈다. 지난 6월 일주일간의 의사폐업투쟁 때 부부가 번갈아가며 응급실 밤샘근무를 하게 되자 보다못한 장인 장모가 왕복 4시간씩 버스를 타고 딸네집을 오가며 살림을 도와주었다. 처가에서는 이렇게 살려면 다시 합치자고 말하지만 아내는 이 또한 반대다. “시어머니는 수영장 다니면서 건강관리 하고 인생을 즐기는데 왜 몸도 성치 않은 친정어머니만 고생해야 하느냐”고 불평을 터뜨릴 때는 할 말이 없다.

이들이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안한다”는 처가살이를 자처한 이유는 간단하다. 맞벌이 부부의 최대현안인 육아문제 해결. 아무리 맞벌이여도 육아의 부담은 여자 쪽이 크고, 고생하는 딸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친정부모가 기꺼이 육아를 대신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사회학)는 “육아를 위해 젊은 맞벌이 부부가 부모와 가까운 거리에 살며 도움을 주고받는 ‘수정확대가족’이 새로운 가족형태로 보편화되면서 그 결과 시집보다 친정의 영향력이나 유대가 커졌다”고 말한다.

서울대 전경수 교수(인류학)도 산업사회에서 자리잡은 핵가족이 후기산업사회에서도 과연 인류에게 바람직한 가족의 초상을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했다. 전교수는 이미 서구식 핵가족(혈통원리에서 부계-모계의 양계성의 전통을 보이는 것)은 한국적 상황에서 잘 맞지 않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며 고려시대의 처가살이인 서류부가제(女胥留婦家制)에서 미래가족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자세한 내용은 52쪽 기사 참조).

어쨌든 여성의 사회진출이 일시적 유행이 아닌 이상, 맞벌이 신혼부부가 처음부터 처가로 들어가거나 처가 근처에 살림집을 장만하는 형태의 처가살이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확대가족의 모습을 제시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문제는 시집살이라는 오랜 전통 덕분에 여성은 며느리의 역할을 학습할 기회가 많았지만, 남성들은 처가살이하는 사위의 역할을 배울 모델이 적다는 데 있다. 어쩔 수 없이 처가살이를 하는 남편, 친정살이하는 아내, 딸네 식구와 살아야 하는 친정부모가 몸으로 부딪쳐가며 한식구가 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이들이 경험적으로 풀어놓는 성공적인 처가살이 방법은 무엇일까.

처가살이도 연습이 필요하다 “불편해서 어떻게 처가살이를 하느냐”고 정색을 하는 사람이 있다. 평소 처가에서 잠 한번 제대로 자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물론 아내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처가에 가는 일도 없다. 최교수는 “이런 사람들일수록 한 달 정도 처가에서 사는 연습을 한 뒤 처가살이를 결정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불편함은 당연하다 “며느리 구박하는 시어머니는 있어도 사위 구박하는 장모는 없다”고 한다. 그만큼 오랫동안 사위는 ‘백년손님’이었다. 손님으로 왔다가 손님으로 갈 사위를 누가 구박하겠는가. 하지만 같이 살다 보면 뜻밖의 갈등이 터져나온다. 특히 외손주들을 기꺼이 맡아주겠다고 나서는 처가 부모의 공통점은 ‘끔찍한 딸사랑’. “내 딸 생각해서 손주도 봐준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사위가 딸에게 조금만 못하는 점이 보여도 못내 섭섭해하는 경향이 있다. 처가살이하는 것만으로도 주위 사람들로부터 은근히 ‘공처가’ 소리를 듣는 남자 입장에서는 처가 부모의 잔소리까지 들어야 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집안일은 스스로 찾아 한다 반대로 함께 사는 사위를 계속 손님으로 보고 오히려 어른들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한식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집안일에서 사위는 완전히 제외되고, 식구들끼리 있다가도 사위가 집에 돌아오면 모두 일어서서 맞아주며, 반찬도 따로 만들어준다. 지나친 환대가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막 시집간 며느리가 시댁에 적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장인 장모에게 ‘재롱’을 부릴 만큼 주변머리가 있다면 더욱 좋고, 처남 처제는 내편으로 만들어 놓는다. 전기공사나 못질, 쓰레기 치우기 등 집안일은 시키기 전에 찾아서 한다.

아내도 힘들다 처가살이를 여성해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처가살이하는 여성은 항상 ‘내 몸 편하자고 친정부모 고생시키는 것 아닌가’라는 부담을 느낀다. 친정에 아들형제라도 있으면 더욱 눈치를 보게 된다. 처가식구와 남편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바로 아내다.

얹혀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것 처가살이 초기부터 경제적 분담을 확실히 해둔다. 예를 들어 입주시 전세금을 따로 내거나, 생활비의 일정부분을 맡는다. 처가에 얹혀 살면서 생활비를 줄여 저축을 하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의 괜한 걱정은 흘려 듣는다 처가살이를 한다고 하면 “불편하지 않느냐”고 쓸데없는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똑같은 말을 자꾸 듣다 보면 정말 그렇게 생각되는 법.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애 키워주고 사위 받아주는 처가가 있다는 게 자랑거리다.

그 밖에 아들을 뺏겼다는 느낌을 받는 친가를 이해시켜야 하고 외가에서 자란 아이들이 친가를 따르지 않으면서 생기는 갈등 등 처가살이는 의외의 문제들을 가져온다. 그러나 처가살이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소한 갈등보다 얻는 게 훨씬 더 많다고 말한다.



주간동아 2000.07.20 243호 (p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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