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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시장이 움직인다

고건, ‘왕건’을 꿈꾸는가

최근 시정홍보지 서울시 350만 전가구 배포…민주당선 미지근한 반응

고건, ‘왕건’을 꿈꾸는가

고건, ‘왕건’을 꿈꾸는가
고건 서울시장은 흔히 ‘말없는 잠룡(潛龍)’으로 불린다. 여권의 차기 대권 주자군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인 움직임이 거의 없다 보니 과연 예비주자가 맞기는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인 것. 고건 시장 본인은 물론 주변 인사들도 대권과 관련된 질문만 나오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입을 닫아버린다.

7월1일은 고시장의 취임 두 돌이 되는 날. 취임 2년째를 맞아 이루어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대권 얘기가 나오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여권이 자신을 대권주자로 ‘만드는’ 일이 없을 것이란 말인지, 자신이 대권주자로 나서는 일이 없을 것이란 말인지 불분명하지만 극도의 ‘몸조심’을 한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행정의 달인’이란 별명답게 공직자가 취해야 할 태도가 어떠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을 그다.

그런 고시장이지만 최근 서울시가 시정홍보를 위해 발간한 ‘새서울뉴스’로 인해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지난 1월부터 매월 말 발간하는 24면 타블로이드판 월간신문인 ‘새서울뉴스’의 내용이 고시장의 동정 등 시정에 대한 자화자찬성 기사 일색이며, 6월호부터는 4억7000여만원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 발행부수를 350만부로 늘려 시내 350만 전가구에 배달했다는 것이 파문의 주된 골자. 이로 인해 시민들과 시민단체들로부터 “유신체제식 관제홍보가 부활했느냐”는 질책이 쏟아지기도 했다. 특히 홍보지의 각 가정배포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깔려 있지 않느냐는 의혹도 받았다.

이에 대해 탁병오 정무부시장은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다”면서 “현행 ‘공직자선거 부정 방지법’에 따라 분기별로 1회에 한해 시정을 홍보할 수 있게 돼 있고, 선관위의 사전 검토를 거쳤다”고 해명했다. “시의회의 허가도 거쳤다”는 것. 역시 서울시로서는 철저한 ‘사전 조치’를 다 취한 셈이다. 탁부시장은 또 “행정 경험이 1, 2년도 아니고… 시장이 어떤 분이냐”고 덧붙였다. ‘결코 말썽을 자초할 사람이 아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서울시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새서울뉴스’ 배포에 따른 의혹을 완전히 씻기는 어려운 듯하다. 역으로 보자면 그만큼 고시장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도 될 수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고시장이 정치적인 행보를 부쩍 늘리기 시작했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이런 종류의 논란은 2002년까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고시장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여권의 대권 예비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경.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자민련 이한동 총재를 총리로 지명하고, 민주당에서 무소속 정몽준 의원 영입설이 나오면서부터였다. 이같은 움직임이 여권의 차기 구도 다원화 포석으로 해석되면서 ‘신 9룡’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고시장도 이 대열에 편입됐던 것.

그러나 최근 여권에서는 5월경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기류가 엿보여 주목된다. 동교동계의 한 핵심의원은 고시장의 대권 가능성과 관련해 “글쎄, 우리가 야당이라면 검토는 한번 해볼 수 있겠지”라고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민주당의 또 다른 핵심 인사도 “그분은 그 위치에서 가만히 있을 때 가장 빛난다. 조금이라도 (대권과 관련해) 움직이면 그 빛이 흐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중진의원도 “당에 착근하기가 어려워서…”라고 역시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물론 이는 여권 일각의 평가일 수도 있지만, 고시장에 대한 민주당 인사들의 반응이 미지근한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취임 초기 국장급 고위 공직자들의 잇따른 뇌물 비리로 곤욕을 치렀던 고시장은 부패척결을 위해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 시스템’을 도입하고, 광역단체장과 정부 고위 공직자 가운데 처음으로 자신의 판공비를 공개했다. 이로 인해 고시장은 지난 2월 미국 포드햄대학이 발표한 ‘부패척결에 공헌한 세계 8대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제법 나름의 성과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의 최대 특징은 어떤 경우에도 논란거리를 만들지 않고 차분하게 나간다는 것. 바로 이런 특성이 ‘행정가 고건’이 아닌 ‘정치인 고건’의 한계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주간동아 2000.07.20 243호 (p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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