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6

2016.02.24

사회

성남시 ‘청년배당’, 엉뚱하게 흘러

직장인도, 해외 체류자도 자격만 되면…택시비, 장보기에 사용하기도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2-23 13:58:55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경기 성남 분당구에 사는 김정애(51·가명) 씨는 최근 성남시로부터 우편물을 받았다. 김씨의 아들이 ‘청년배당’ 수혜 대상자이니 주민센터에 가서 지역상품권을 수령하라는 통지서였다. 김씨의 아들은 만 24세로 법적 주소지는 성남시이지만 현재 미국에 있다. 생활비와 학비를 합쳐 연 7000만 원에 달하는 4년제 미국 대학을 졸업했고, 최근 미국 현지에서 취업을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대신해 주민센터에 간 김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주민센터 직원은 가족관계증명서를 검토하거나 아들이 국내에 있는지 묻지도 않고 김씨의 주민등록상 주소만 확인한 후 12만5000원어치에 해당하는 성남사랑상품권을

    전했다. 김씨는 “상품권 가맹점을 둘러보니 전통시장 등 사용처가 한정돼 있었다. 할 수 없이 전통시장에 가 반찬거리를 샀다. 정작 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은 못 찾았다”며 허탈해했다.
    성남 중원구에 사는 박희정(24·가명) 씨도 청년배당을 받았다. 하지만 택시비 외에는 딱히 쓸 데가 없었다. 상품권을 받는 음식점이 몇 군데 있어 알아봤지만, 가맹점에 등록해놓고 실제론 안 받는 경우가 있어 가기 전 확인해야 했다. 박씨는 가족들과 저녁 한 끼를 먹는 데 상품권을 썼다. 그는 “처음엔 상품권을 받고 기뻤지만 시간이 갈수록 ‘과연 청년배당이 청년을 위한 정책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나마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는 곳은 서점이나 성남아트센터 정도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어학 공부나 여행 경비, 취업컨설팅 등을 지원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생일 기준’ 따라 울고 웃는 수령자

    성남시 청년배당은 성남시 거주 청년을 격려하고자 올해 처음 시행하는 정책이다. 시에 따르면 ‘신청일 현재 성남시에 3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계속 거주하는 만 24세 청년’이 지급 대상이며, 분기별로 12만5000원어치 성남사랑상품권을 최대 50만 원까지 지원한다. 수혜 대상은 약 1만1300명, 예상되는 총지급액은 56억5000만 원으로 1~4분기에 거쳐 지급한다.
    성남시가 과감하게 추진하는 이 복지정책을 두고 시민들 사이에서 “실효성이 낮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먼저 사용처의 제한이다. 청년배당으로 지급하는 성남사랑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지역 전통시장, 소규모 소매점, 소규모 식품점, 상품권 가맹점인 음식점, 성남아트센터, 프로축구 성남FC 경기, 대기업 서점을 제외한 동네서점, 공영주차장, 택시, 시청연금매점, 시 산하 구내식당 등으로 한정돼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는 제외됐다.
    다음으로 수혜자를 만 24세로 한정한 데 대한 불만도 컸다. 시가 분기별로 구분한 지급 대상자는 다음과 같다. 1분기는 1991년 1월 2일~92년 1월 1일생, 2분기는 1991년 4월 2일~92년 4월 1일생, 3분기는 1991년 7월 2일~92년 7월 1일생, 4분기는 1991년 10월 2일~92년 10월 1일생이다. 따라서 1991년 12월 31일생은 1~4분기에 50만 원을 받을 수 있지만, 1991년 1월 2일생은 1분기에 12만5000원만 받는 셈이다.
    취업 여부나 소득과 관계없이 일괄 지급하는 정책도 복지의 의미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성남 중원구에 사는 대학 휴학생 서모(24) 씨는 “이번에 청년배당을 받은 한 친구는 대학을 조기 졸업한 뒤 대기업에 취직한 덕에 벌이가 넉넉해 친구들에게 가끔 밥을 산다. 이런 친구가 배당금을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성남시는 남는 돈이 있으면 몇 년째 취업도 못해 돈이 꼭 필요한 청년이나 저소득층에게 지급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시가 정책 집행 자체에 급급한 것 같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김정애 씨는 “청년배당 안내 통지서를 받고도 주민센터에 가지 않았더니 며칠 후 집 대문 앞에 ‘청년배당을 빨리 받아가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우편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수혜 대상자 집을 일일이 방문해 홍보물을 놓고 간 것”이라며 “요즘 같은 시대에 가가호호 유인물을 배포하는 게 말이 되나.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홍보에 과하게 매달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불만은 지급 대상자의 집을 방문한 공무원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1월 20일 경기도청 공무원노동조합 게시판에는 ‘성남시 청년배당 홍보’에 대한 게시물이 올라와 논란을 야기했다. ‘(청년배당을) 1월 22일 권한쟁의심판 결과 전에 신청하여 받아가라며 1월 19일 (지급) 대상자의 집집마다 방문하라는 지시가 있었으며 20일 오늘도 방문 안내 지시. (중략) 시민만 소중하고 직원은 안중에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市 “차등 지급은 행정 비효율”

    이에 대해 시는 “청년배당은 앞으로도 계층, 소득에 관계없이 동일한 액수를 지급할 것”이라고 한다. 수령자의 소득 상황을 따지는 데 행정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그 이유다. 성남시 관계자는 “극히 부유한 계층의 수령자 등 특수한 사례를 분리하고자 대상자 개인의 소득 및 재산을 조회하고, 시스템과 인력을 유지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 또한 이미 소득에 비례해 차별적으로 세금을 징수하고 있는데, 복지정책 집행 과정에서 이중으로 차별하는 것이 필요한지는 정책적 판단의 문제다. 세입에 차이를 둔다고 세출도 차이 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또한 지급 대상자의 집을 방문해 정책 홍보물을 배포한 이유에 대해서는 “시 정책을 홍보하는 것은 시정의 당연한 절차다. 도로명주소, 인구주택총조사 등 국가 시책을 홍보할 때도 각 가구에 홍보물을 배부했다”고 설명했다.
    성남시 청년배당을 두고 전문가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광윤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복지 혜택은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의미가 있다. 해외 체류자는 출입국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이것을 분류하는 행정 비용이 높다는 주장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복지정책은 한 번 시행하면 사람들에게 기대를 품게 하기 때문에 지속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성남시의 재정자립도가 54%에 그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예산 집행이 계속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년배당 정책은 젊은이에게 희망을 북돋아준다는 취지와는 무관하게 시행됐다. 청년들의 자기계발, 취업 역량 강화 등과는 상관없이 지역상품권을 지급한 정책이 과연 명분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