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55

2022.09.02

짙어지는 이재명 그림자, 깊어지는 尹의 고민

[이종훈의 政說] ‘윤심’ 내세우느라 경기도지사 선거 패배… 이준석·이재명 동시 상대 난제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2022-09-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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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31일 국회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뉴스1]

    8월 31일 국회 국민의힘 원내대표실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뉴스1]

    겨우 이겼다. 그의 그림자를 빨리 지워야 했다. 최측근을 저격수로 내세웠지만 오히려 저격당하고 말았다. 기사회생한 그는 제1야당 대표로 등극했다. 다시 맞서야 할 처지인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대선 승리 당시만큼의 지지율도 유지하고 있지 못한 때문이다. 100여 일 동안 실책이 뼈아프다. 더 커진 이재명 그림자를 어떻게 지워나갈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고민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가까운 시일 내 모시겠다”지만

    8월 28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윤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했다. 제1야당 대표로서, 또 지난 대선 경쟁자이자 차기 유력 대선 주자로서 존재감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다. 윤 대통령은 여기에 말려들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8월 30일 이 대표와 전화통화에서 영수회담 제안에 대해 “당이 안정되면 가까운 시일 내 여야 당대표와 좋은 자리를 만들어 모시겠다”고 답했다. 이 발언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겼다. 첫째, 당장 만날 생각은 없다. 둘째, 일대일로 만날 일은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은 새 지도부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인용하면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무력화된 까닭이다. 새 비대위를 추석 연휴 전 출범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이 전 대표가 또 다른 가처분신청을 예고한 상태다. 새 비대위 또한 무사할지 의문이다. 이번에도 가처분신청이 인용된다면 국민의힘은 지도부 장기 공백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여야 대표를 함께 모시겠다”고 말한 것은 당장 만날 일이 없다는 의미로밖에 볼 수 없다.

    일대일 만남을 피하려는 이유는 대비 효과 때문이다. 중도층을 중심으로 적잖은 국민이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선 당시 선택을 후회하는 중일 테다. “차라리 이 대표를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부터 할 것이 분명하다. 당연히 향후에도 이 대표의 행보에 더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수를 가진 원내 제1당이기도 하다. 정기국회가 시작된 현 시점에서 일대일 영수회담은 이 대표에 대한 국민적 주목도만 높일 개연성이 크다.



    돌이켜보면 이재명 그림자를 지울 기회가 있었다. 지방선거가 결정적 계기였다. 대선 패배 직후 이 대표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것에 대해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론이 있었다. 총괄선대위원장으로서 지방선거 전체를 이끄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상당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대선에 이은 연패로 이재명 책임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두 가지가 면죄부로 작용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승리했고, 본인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사실 말이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했다면 이재명 그림자는 많이 약화됐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인천 계양을 선거에서조차 이 대표가 패했더라면 이재명 그림자는 아예 사라졌을지 모른다.

    국민의힘은 당시 이른바 ‘윤심(尹心)’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경기도는 이 대표의 텃밭으로 알려진 지역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 자신의 복심 격인 친윤석열(친윤)계 김은혜 전 의원을 내세워 이겨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비윤(비윤석열)계 유승민 전 의원을 내세웠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이재명 견제용’

    윤 대통령은 8월 21일 김은혜 전 의원을 대통령홍보수석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임명 배경으로 전문성과 대통령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를 들었다. 이것이 이유의 전부일까. 다분히 이재명 견제용이다. 김 수석 임명은 이 의원이 민주당 대표가 될 것이 분명한 시점에 이뤄졌다.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 김 수석은 대선 당시 대장동이 속한 경기 성남 분당갑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으로서 ‘이재명 저격수’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친윤계 핵심 인사가 될 수 있었고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선택됐다.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그림자 지우기에 실패했지만 김 수석은 국민의힘 내에서 이재명의 허점을 가장 잘 아는 그 나름 전문가다. ‘대포 역할’을 염두에 두고 홍보수석으로 불러들였겠지만 앞서의 특명을 끝내 완수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번에도 실패할 경우 이재명 그림자는 더 짙어질 것이 분명하다. 야당 대표에 대한 대통령홍보수석의 어설픈 공격은 자칫 이 대표 존재감만 더 부각하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은 내부적으로는 이준석 전 대표를, 외부적으로는 이재명 대표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처지다. 두 사람 모두 차기 대권 주자다. 당연히 윤 대통령과 차별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국정수행 지지율이라도 탄탄하게 받쳐준다면 여론의 힘을 빌려 두 사람의 도전을 간단하게 물리치겠지만 아직까지 상황은 녹록지 않다. 여론전에서도 불리한 구도다. 이래저래 협공을 받아 고사당할 가능성이 큰 국면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이 클수록 이 대표에 대한 기대감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대선 득표 결과가 근소한 탓에 두 사람 중 누가 못하면 상대방이 더 주목받는 묘한 기류가 존재한다. 두 사람은 또 다른 시험대 앞에 섰다. 2024년 총선이다. 윤 대통령에게는 중간 평가에 해당하는 선거다. 이 대표로서는 연패의 악몽을 극복하고 차기 대선 승리의 기반을 닦아야 하는 선거다.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을 앞에 둔 상황에서 여야 협치는 점점 더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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