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0

2021.03.12

소수 일탈 ‘LH 게이트’냐, 정권 뒤흔들 ‘신도시 게이트’냐

정치인·공직자 연루 드러나면 일파만파…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도 영향 미칠 듯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21-03-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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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3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현직 직원의 ‘광명·시흥 3기 신도시’ 투기 의혹 뒤에 정치권과 기획부동산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국토교통부(국토부)는 2018년 12월 19일 경기 남양주시 왕숙지구, 경기 하남시 교산지구, 인천 계양구 계양테크노밸리 등에 대규모 택지지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3기 신도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2019년 5월 7일 경기 고양시 창릉지구와 부천시 대장지구, 올해 2월 24일 경기 광명시 광명동·옥길동과 시흥시 과림동 일대가 3기 신도시 조성 지역으로 추가됐다. 

    지난해부터 부동산업계에선 경기 광명·시흥 일대가 3기 신도시 개발 지역으로 추가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신도시나 대규모 택지를 조성할 수 있는 곳은 빤하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에 밝은 한 소식통은 “택지개발 관련 비리는 보통 정권 초기에 시작되는데…”라고 말했다. 재력가들이 정권이 바뀐 후 신도시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의 땅을 대량 매입하곤 했다는 것이다.


    ‘부동산대책 25연타’와 신도시 개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경기 시흥시 과림동 일대 농지의 묘목.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경기 시흥시 과림동 일대 농지의 묘목.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땅을 사는 것은 결국 재력가다. 이들은 자신이 매입한 지역이 택지지구나 신도시로 지정되도록 영향력을 발휘한다. 통상의 경우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상은 국회의원이나 자치의회의원, 자치단체장 등이다. 선출직 공무원은 다음 선거에서도 당선돼야 하니 여론에 민감한 데다 정치 자금도 필요하다. 기획부동산·필지 매입자는 자신에게 협조한 정치인을 합법적으로, 때로는 비합법적으로 후원하게 마련이다. 

    보통의 경우 후원받는 정치인 등은 대외적으로 “난개발에 반대한다”고 말하면서 밑으론 택지개발을 요구한다. 국토부 공무원들을 압박하는 것인데, 이때 눈치 빠른 공무원은 차명으로 해당 지역의 일부 토지를 사놓고 대세를 따를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25번이나 부동산대책을 발표해 거래를 엄격히 통제했다. 이 과정에서 신도시로 개발될 수 있는 지역의 가치는 더욱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신도시는 대개 농지가 많은 평지에 들어선다. 개발을 위해 농지가 수용되면 경작자는 소득을 상실한 대가로 ‘영농손실보상금’을 받는다. 도시에 거주하는 땅 구입자가 직접 농사를 짓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조경업자를 동원해 관리하기 비교적 용이한 묘목을 심거나 현지인에게 사례금을 줘 임업을 하는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많다. 시흥과 광명 땅을 구입한 전현직 LH 직원 중 일부가 이렇게 했다. 



    이번 투기 의혹은 LH 내부 관계자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에 제보해 알려졌다. LH 내부에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읽힌다. 신도시 개발지로 확정되려면 영향력 있는 정치인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정치권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본 쪽이 내부 폭로를 기획했을 소지가 있는 것이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이 2019년 4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LH 사장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수사 어려워

    흥미로운 것은 정치권 반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당초 정세균 국무총리는 수사권이 없는 총리실과 국토부 중심의 정부합동조사단을 꾸려 조사하겠다고 했다. 뒤늦게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특별수사단, 금융위원회, 국세청 등 관계기관이 참여한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를 통해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전현직 LH 직원의 가명·차명 거래 개연성을 언급하며 수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은 몸을 사리는 듯한 모습이다. 3월 4일 국민의힘은 국토교통위원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하고 이튿날 회의 소집을 요구했으나 진선미 위원장 등 여당 의원들의 불참으로 회의가 무산됐다. 국토위원회 전체회의는 3월 9일에야 열렸다. 

    LH 투기 의혹에 검찰이 나서지 못하는 것은 수사권 축소와 관련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찰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 참사)에 한해서만 직접 수사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검찰이 수사에 나설 수 있는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수사권 축소가 이번 사건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장외 검찰총장’ 노릇을 하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야권은 수사가 부진할 경우 광명·시흥뿐 아니라 3기 신도시 사업 전체에 특검을 요구할 수 있다. 불만을 품은 LH 내부 세력이 개발을 비호한 정치인의 이름을 외부에 흘릴 여지도 있다. 이 경우 문재인 정부는 또 한바탕 홍역을 치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신도시 게이트’로 사안이 커질 수도 있다. 여권은 일부 직원의 일탈에 불과하다며 사태가 더 커지는 것을 막으려 할 공산이 크다. 이번 사건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2021년 20대 대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권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 사안이 정치인과 공무원, 기획부동산이 연루된 신도시 게이트로 증폭되는 것이다. LH 게이트가 될 것인가, 그보다 더 큰 게이트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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