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09

2019.10.11

안강의 통증 이야기

화상벌레에 물리면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이유

  • 안강 안강병원장

    kangahn2003@gmail.com

    입력2019-10-13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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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뉴시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불에 덴 것처럼 아플까. 청딱지개미반날개(일명 ‘화상벌레’)에 물린 사람들이 느끼는 통증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로 화상벌레에 피부가 살짝 닿기만 해도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겋게 부어오르고 매우 아프다. 이것은 페데린(Pederin)이라는 물질 때문이다. 페데린은 코브라 독보다 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곤충의 체액에 함유된 페데린이 인체에 닿으면 불에 덴 것처럼 소양감과 작열감이 생기고, 간혹 물집이나 수포가 생기는 페데러스피부염을 동반하기도 한다. 

    사실 페데린은 곤충의 몸에 이상한 세포가 나타나면 이것이 스스로 죽도록 작용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곤충 몸에 있는 천연 항암제인 것이다. 그래서 이 물질을 이용해 백혈병 치료 약물을 개발하려는 시도들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화상벌레에 물려 큰 통증을 느끼는 것은 강한 염증 반응에 따른 결과다. 이종단백질이 우리 몸에 침투하면 염증 반응이 일어난다. 염증 반응이 강할수록 인체의 통증 센서는 더 심하게 자극받는다. 이 자극이 뇌에 전달되는데, 우리가 느끼는 통증은 염증 반응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통증이 아닌 다른 자극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감각이 무뎌져 우리는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된다. 예를 들면 처음 맡아보는 강하고 역겨운 냄새가 그렇다. 필자도 삭힌 홍어를 처음 접했을 때 냄새가 너무 싫었고, 맛도 괴팍하리만큼 이상했다. 입천장이 까지고 설사까지 했다. 하지만 두세 번 먹자 냄새가 매력적으로 바뀌었고, 소화가 잘되는 것은 물론, 부드럽고 쫄깃한 맛을 즐기게 됐으며, 입천장이 까지거나 설사하는 일도 없었다. 감각이 잘 적응한 예다. 반면 통증은 염증 반응으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반복되거나 노출되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아프지 않게 해주는 약만 있어도 좋겠다고 말하지만 아프지 않으면 더욱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선천성무통각증처럼 태어날 때부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환자는 신체에 부상을 입거나 화상을 당해도 고통이 없어 병을 알지 못하고, 결국 성인이 되기 전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통증은 우리 몸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어기전 가운데 하나며, 염증은 우리 몸에 적이 침입했으니 싸울 준비를 하라는 신호다. 만일 염증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몸은 적군이 들어와도 싸울 수 없고 손상된 부분이 생겨도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염증과 통증은 우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수단인 셈이다. 그러나 통증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성인병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통증은 지속 기간에 따라 만성과 급성으로 분류된다. 화상벌레에 물려 아픈 것은 급성통증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회복돼 없어진다. 화상벌레가 살갗에 닿은 경우 증상이 빠르게 확산되거나 커지지 않는다. 10~12일 정도면 신체의 자연 치유 과정을 거쳐 완치된다.

    염증 반응과 신경회로의 변화에 따라 증상도 달라

    하지만 없어져야 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유령처럼 남아 있는 통증이 만성통증이다. 급성통증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우리 몸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만성통증은 기억으로 남는다. 

    우리 몸에서 급성통증이 만성통증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조개류인 전복의 반응에 비유해볼 수 있다. 전복 일부분에 전기 자극을 순간적으로 가하면 그 부분이 움츠려든다. 강한 자극을 가하거나 조금 덜 강한 자극을 여러 번 반복해 가하면 움츠려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을 감작이라고 한다. 

    어깨를 다치고 수주일 뒤 다친 부위는 다 나은 듯싶은데 계속 아프다면 이는 유령처럼 아픈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저녁에 잠들기가 힘들어 뒤척이게 되고 은근히 아픈 것이 영 찝찝하다. 이런 통증이 수개월을 가면 어깨가 굳어 움직임이 제한되거나 힘줄이 부딪치고 찢어지면서 극심한 통증으로 바뀌기도 한다. 처음 어깨를 다쳐 아픈 것은 급성통증이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났는데도 어깨 근육이나 힘줄들이 긴장돼 있고, 누르면 건강한 쪽에 비해 더 아프고 움직임도 부자연스럽다면 만성통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신경회로가 이미 변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통증이 회복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신경회로의 변화는 더욱 커지고 뇌 신경세포 사이에 새로운 연결고리(시냅스)가 형성돼 통증은 점점 고착화돼간다. 

    이때 의사나 환자가 흔히 하는 실수가 자기공명영상(MRI)이나 엑스레이 등에 나타난 변화를 곧 병으로 오인하는 것이다. MRI나 초음파 사진에 나타난 이상은 만성통증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인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현재 통증과는 무관하다. MRI나 초음파 사진에서 보이는 변화가 지금 아픈 병과 일치할 확률은 반반으로 보는 것이 정설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면 급성통증은 현재 발생한 손상이자 염증 반응이다. 반면 만성통증은 신경회로에 유령처럼 기억된 병이며, MRI나 초음파 사진 등에 나타난 변화가 실제로는 통증과 무관할 개연성이 크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따라서 화상벌레에 물리면 연고나 스테로이드 주사 등으로 염증만 조절하면 되지만, 만성통증에는 스테로이드 주사 등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염증만 조절하는 것은 오히려 만성통증 치료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급성통증은 염증에 의해 나타나지만 만성통증은 신경회로의 변화, 신경 연결고리의 변화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안강은… ‘통증박사 안강입니다’ 1, 2의 저자로 차의과대 만성통증센터 소장, 대한신경근치료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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