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공부머리 독서법’ 저자 최승필

“학습 능력? ‘대치동 키즈’도 별다를 거 없다”

사교육 심화되는데 기초학력 미달 늘어  …  ‘읽고 이해하는’ 힘이 공부의 지름길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9-06-17 08: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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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중식 기자,  장소 제공  ·  위워크 선릉2호점]

    [홍중식 기자, 장소 제공  ·  위워크 선릉2호점]

    ‘공부머리 독서법’(책구루)이 화제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알고도 읽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지난해 5월 1인 출판사에서 출간돼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지금까지 15만 부가 팔렸다. 최근 온라인서점 예스24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1~5월) 베스트셀러 1위에도 올랐다. 출판사에 따르면 국어 영역이 특히 어려웠던 ‘불수능’(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입소문이 판매 상승에 주효했다고 한다. 

    책의 주장은 이렇다. ‘독서를 잘해야 공부를 잘한다.’ 읽기 능력이 좋을수록 공부를 잘하는데, 읽기 능력을 끌어올리는 비법이 바로 독서라는 것이다. 단, 많이 읽고 어려운 책을 택하기보다 쉬운 책이라도 깊이 있게 읽고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독서법이라고 조언한다. 이때 학습만화와 속독(速讀)을 경계하고, 같은 책을 읽고 또 읽는 반복 독서와 책 문장을 받아 적는 필사(筆寫)를 권장한다. 

    저자는 서울 강남 대치동 등에서 12년간 독서·논술을 가르친 독서교육 전문가이자 20여 권의 어린이·청소년 지식도서를 펴낸 최승필(44) 씨. 현재 그는 학원 강의를 정리하고 경기 남양주에서 네이버 카페 ‘공부머리 독서법’의 운영과 집필 활동, 그리고 주부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세 아이를 혼자 키우다시피 한 아내에게 ‘독박육아 장기대출’을 상환하느라 오후 5시면 귀가해 저녁밥을 차리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고 한다. 6월 11일 서울 강남에서 그를 만났다.

    독서  ·  논술 대치동 강사 출신

    독서교육에 관한 책을 펴낸 이유는. 

    “학원 강사로 일하거나 학원을 직접 운영하면서 ‘이게 맞나’ 하는 회의가 자주 들었다. 독서는 개인적인 행위라 학원에서 독서 지도를 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안 그래도 학습 압박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짐을 실어주는 것 같았다. 또 어머니들과 개별 상담을 하는 것에도 지쳤다.(웃음) 가령 ‘애가 자꾸 판타지 소설만 읽는다’고 하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자꾸 찾아 읽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설득하는 것이 반복되곤 했다. 책을 써 좀 더 많은 사람에게 독서교육의 중요성과 방법을 알리고 싶었다.” 

    최씨는 “12년간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계속 떨어지는 현상을 지켜봤다”고 말한다. 이는 지표로도 확인된다. 교육부가 진행하는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전수 평가에서 기초학력 미달 학생 비율은 2012년 2.6%에서 2016년 4.1%로 해마다 상승했다. 지난해 중고교생 표집 평가에서도 기초학력 미달률이 대체적으로 전년보다 높아졌다(표 참조). 최씨는 “공부가 더 어려워지는 고교생의 기초학력 미달률이 중학생보다 높은 게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지난해 국어·수학 과목에서 중학생 기초학력 미달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갈수록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저하되는 징후로 해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사교육을 많이 받는 요즘 아이들의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건가. 




    “학원 강사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아무리 책을 싫어하는 아이라도 어떻게든 책을 읽게 하면 핵심 줄거리를 어느 정도는 파악했다. 그런데 5년 정도 지나자 주인공이 입은 옷 색깔은 기억해도 핵심 줄거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풍’을 주제로 글을 쓰라고 하면 아이들은 ‘소풍을 다녀왔다. 재밌었다. 또 가고 싶다’ 수준으로 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디로 갔어?’ ‘뭐 했어?’ ‘뭐가 재밌었어?’ 하고 구체적으로 물으면 조잘조잘 대답한다. 생각은 많은데, 단지 글로 표현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런데 요즘엔 ‘그냥 재밌었어요’ 하고 마는 아이가 많다. 예전에는 원고지 400자를 채우라고 하면 자기 글에 자신이 빠져들어 2000자를 넘기는 아이가 간혹 있었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아이가 멸종했다 싶을 정도다.” 

    왜 그렇게 됐을까. 

    “사교육과 학습만화, 그리고 스마트폰 때문이라고 본다. 많은 아이가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독서 목록은 학습만화로 채우며, 여가시간에는 스마트폰을 한다.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똑똑하기로 소문난 대치동 아이들을 주로 가르치지 않았나. 

    “대치동 아이들이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은 맞지만, 학습 능력이 다른 지역 아이들에 비해 크게 높은 것은 아니다. 조금 나은 수준인데, 이것도 사교육을 많이 받아서라기보다 아무래도 학력 수준이 높은 부모가 많은 지역이라 어려서부터 자녀의 독서교육에 공을 들이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편으로는 사교육의 힘으로 앞서나가다 고교생이 되면서 성적이 떨어지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학습만화? 내다 팔아라”

    [홍중식 기자,  장소 제공  ·  위워크 선릉2호점]

    [홍중식 기자, 장소 제공  ·  위워크 선릉2호점]

    학습만화는 또 하나의 한류문화라고 할 정도로 국내 판매는 물론 해외 수출도 왕성한, 출판시장의 대어(大魚)다. 그러나 최씨는 학습만화를 ‘책을 읽히고 싶은 부모와 책 읽기가 싫은 아이, 그리고 책을 팔고 싶은 출판사가 이룬 삼자담합의 결과물’이라고 일갈한다. 

    학습만화가 다 나쁜가. 


    “요즘 학습만화는 부모 세대가 어릴 때 읽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나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와 다르다. 두 책은 단지 만화 형식을 빌렸을 뿐, 역사·세계사에 관한 충실한 콘텐츠였다. 그런데 요즘 학습만화는 이야기와 지식,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총천연색 화보일 뿐이다. 여기서 얄팍한 지식을 습득해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한다. 또 속독하는 나쁜 버릇이 생긴다. 도서관에 가면 열이면 열이 학습만화 10여 권을 쌓아놓고 읽는다. 읽는다기보다 훑는 것에 가깝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다 똑같다.” 

    학부모들은 아이에게서 학습만화를 떼놓기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이가 아직 영·유아라면 집 안의 학습만화들을 모두 내다 팔기를 권한다. 그런데 이미 학습만화를 좋아한다면 그걸 뺏을 방법은 없다. 스마트폰과 게임을 허용하면서 학습만화를 금지할 수는 없지 않나. 다만 여가시간에만 학습만화를 허용하고, 진짜 독서를 하는 인위적인 시공간을 만들도록 한다. 시간을 정해놓고 아이와 엄마, 아빠가 각자 골라온 책을 읽는 거다. 하루 1시간씩 일주일에 닷새간 하자고 하면 2~3일 실천하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좋은 책은 아이가 재밌어 하는 책’이라고 하는데, 책이 너무 많아 고르기가 어렵다. 

    “‘나는 엄마가 골라주는 책이 좋아요’ 하는 말에 속지 말아야 한다. ‘대충 읽어는 줄게’라는 뜻이다.(웃음) 책을 싫어하는 아이라면 재미있다고 입소문난 책을 디딤돌 삼아 먼저 권해주는 게 좋다. 아이가 재미를 느끼고 ‘이런 책 또 없어요?’ 하면 그 책이 꽂힌 도서관 서가로 데려가 그 주변에서 책을 고르게 한다. 아이가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데 시간을 한참 허비하는데,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책을 구경하고,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아이는 많은 것을 배운다. 고른 책이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다면 덮어도 된다. 이런 경우를 고려해 책을 많이 빌려오자. 6권 중 2권만 제대로 읽어도 굉장히 훌륭한 독서 생활이다.” 

    ‘대치동 출신’임에도 최씨는 “사교육 효과는 중학교 3학년 시기가 되면 사실상 사라진다”고 단언한다. ‘읽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이해하는’ 데 익숙해져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성적이 떨어진다는 것. 이는 국어, 사회, 과학뿐 아니라 수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말한다. 

    수학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이 어느 때보다 대세다. 

    “한국은 입시경쟁이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국가임에도 교육학 상식이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점이 참 놀랍다. 수학이 곧 읽기 실력이라는 것은 교육학에서 기본에 속한다. 수학은 논리고, 논리는 언어로 표현된다. 수학의 논리는 단 한 문장도 뺄 수 없는 아주 치밀한 언어 논리다. 따라서 읽고 이해하는 언어 능력이 뛰어나야 수학도 잘한다. 실제로 1980년대 일본 초등학교에서 ‘10분 아침독서운동’을 펼쳤을 때 성적이 가장 많이 오른 과목이 국어와 수학이었다. 대치동 수학 강사들도 ‘어릴 때 책 좀 읽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한다.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하는 말이다.” 

    당장 입시가 급한 중고교생이 학원을 접고 책 읽기에 집중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 

    “나는 과감하게 사교육을 줄이고 독서에 집중할 것을 권한다. 특히 중3의 읽기 능력이 초등학교 5, 6학년 수준으로 현저히 뒤처져 있다면 아무리 열심히 학원을 다녀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고2라도 읽기 능력 떨어지면 초등 도서 읽어야

    최씨는 지난해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달 과정의 ‘독서 스타트’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는 거기서 고교 2학년 기윤(가명)이를 만났다. 강남에서 나고 자란 기윤이는 중학생 때까지 우등생이었지만 고교에 진학한 이후 중위권으로 밀려났다. 이에 미국 대학에 진학하고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갔는데, 영어를 썩 잘했음에도 대입시험(SAT) 점수가 나오질 않았다. 기윤이 어머니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효과를 거두지 못해도 좋으니 제발 받아만 달라”며 이 프로그램에 참여 신청을 했다고 한다. 

    언어 능력 테스트 결과 기윤이의 점수는 100점 만점에 47점으로 초등학교 6학년 수준. 최씨는 “고교 교과서를 이해하려면 적어도 70점이 넘어야 하기에 70점 득점을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한 달 후 기윤이는 72점을 받아 목표를 약간 초과 달성했다. 기윤이에게 주어진 ‘독서 미션’은 이렇다. 청소년 소설을 일주일에 한 권 읽는데, 세 차례 반복 독서해 해당 소설에 관한 12개 문제를 모두 맞힐 것, 그리고 소설 도입부를 공책에 필사할 것. 여기에 더해 대입이 코앞이라는 점을 감안해 매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국어 영역의 논설문 혹은 설명문 지문 하나를 세 번씩 필사하고, 모르는 내용을 찾아 익히게 했다.
     
    최씨는 “기윤이에게 골라준 책은 ‘열혈 수탉 분투기’ 등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동화였다”며 “언어 능력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올라가는 게 아니다.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부머리 독서법’은 책을 찬찬히, 샅샅이 뜯어 읽는 ‘슬로 리딩’, 1년에 책 한 권을 베껴 적는 필사 강화 독서, 초록을 만들며 책 읽기 등 학년에 따른 여러 독서법을 제시한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혼자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중고교생에게 스스로 실천하라고 바라기엔 난망하다. 부모가 챙겨주기에도 버거워 보인다. 실제 많은 부모가 최씨에게 “이런 거 해주는 학원 없느냐”고 묻고, “공부머리 독서법을 적용한 학원을 만들자”는 제안도 들어온다고 한다. 

    결국 독서학원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지 않다. 앞서 말했듯 학원에서 하는 독서지도에는 한계가 있다. 스스로 원하는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진정한 독서인데, 학원에서는 커리큘럼을 짤 수밖에 없다. 어머니들이 선호하는 수준 높은 책이 반영되면서 오히려 아이들의 읽기 능력을 떨어뜨리는 커리큘럼이 되곤 한다. 독서·논술학원에 다녀 성과를 거두는 아이는 딱 두 가지 타입이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독서가이거나, 읽기 능력이 굉장히 떨어져 독서 기초를 잡아줘야 하는 경우다.” 

    최씨는 ‘가정 주도’와 ‘학원 위탁’ 사이 제3의 길로 온라인 카페에서 방학 때마다 슬로 리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정해진 책을 읽고 매주 ‘공독쌤’ 최씨가 내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무료지만 ‘인질료’라 부르는 참가비를 내야 한다. 미션 수행을 중도포기하면 참가비를 되돌려 받을 수 없으나, 완주하면 ‘참가비+α’를 돌려받는다. 중도포기자가 ‘날린’ 참가비 전액이 α의 재원으로 쓰이는 것. 2월 ‘프린들 주세요’ 프로젝트에는 총 274개 가정이 참가해 235개 가정이 완주했다. 86%에 달하는 높은 완주율에 대해 최씨는 “매주 읽어야 하는 책 분량이 적고,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책에 등장한 음식점에 가서 밥 먹고 인증하기 등 재미난 이벤트 요소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핵심은 ‘좋은 질문’

    독서 목적이 공부 잘하는 것이냐는 비판도 있다. 

    “독서의 실제 효과가 초코파이라면 나는 초코파이의 부스러기 정도를 얘기하는 거다. 그런데 이 부스러기에 대해 아무도 거론하지 않는다. 독서는 참 좋은 것이지만, 영어·수학학원이 더 중요하다고들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독서와 공부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말하기로 했다. ‘공부머리 독서법’이 해외로 수출되진 않을 것이라고, 나는 강력하게 확신한다. 미국, 유럽, 일본 등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주요 회원국 가운데 독서 기반 교육을 하지 않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에서 내 책은 ‘밥은 밥이다’ 수준의 당연한 얘기로 읽힐 게 자명하다.” 

    세 아이의 아빠인데,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키웠나. 

    “그러지 못했다.(웃음) 학원 일과 어린이·청소년 도서를 집필한다고 주말에도 나가 일해서 아이들이 ‘아빠가 우리 집에 놀러왔네’ 할 정도였다. 요즘 강연이 많아 집을 자주 비우지만, 강연 없는 날에는 저녁밥 먹은 뒤 두 시간가량 둘째와 막내에게 책을 읽어주고, 중학교 2학년인 큰아이와는 밤 10시까지 함께 책을 읽는다.” 

    학부모로서 공교육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난해부터 한국 공교육에서도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개시돼 반갑다. 이는 다시 말해 슬로 리딩인데, 여기서 핵심은 ‘좋은 질문하기’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려면 본인부터 책을 깊이 있게 읽고 좋은 독서가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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