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63

2018.11.09

와인 for you

배우는 바뀌어도 샴페인은 그대로

영화 ‘007’ 시리즈 속 샴페인 ‘볼렝저’

  • 입력2018-11-12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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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렝저 샴페인 하우스. (위) 자전거를 타고 밭을 돌아보는 생전의 릴리. [사진 제공 · ㈜신동와인]

    볼렝저 샴페인 하우스. (위) 자전거를 타고 밭을 돌아보는 생전의 릴리. [사진 제공 · ㈜신동와인]

    영화 ‘007’ 시리즈에 나오는 샴페인은 언제나 볼렝저(Bollinger)였다. 볼렝저는 영국 왕실 주최 경마대회인 로열 애스콧과 잉글랜드 럭비팀의 공식 샴페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볼렝저에는 늘 ‘전통과 권위’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볼렝저는 1829년 프랑스 샹퍄뉴(Champagne) 지방의 작은 마을 아이(Ay)에 설립됐다. 샴페인 가운데 최초로 1884년 영국 왕실 인증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40대 초반이던 릴리는 설립자의 증손자인 남편과 사별한 뒤 볼렝저를 맡았다. 릴리는 전쟁으로 망가진 포도밭을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돌봤다. 영어에 능통해 전쟁이 끝난 뒤 세계를 누비면서 마케팅에도 힘썼다. 

    1970년대 중반 ‘007’ 시리즈 제작사로부터 샴페인 협찬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다. 볼렝저 측은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는 대신 제작사를 아이로 초대했다. 이것이 ‘007’ 시리즈와 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만찬자리에서 이들은 친구가 됐고, 이후 매년 만나 저녁을 함께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1979년 개봉한 ‘007 문레이커’부터 최신작 ‘007 스펙터’까지 볼렝저의 우정출연도 계속됐다. 

    영화 ‘007 골든 아이’ 포스터에 등장한 볼렝저, 볼렝저 스페셜 퀴베, 볼렝저 라 그랑 아네. (왼쪽부터)[사진 제공 · ㈜신동와인]

    영화 ‘007 골든 아이’ 포스터에 등장한 볼렝저, 볼렝저 스페셜 퀴베, 볼렝저 라 그랑 아네. (왼쪽부터)[사진 제공 · ㈜신동와인]

    볼렝저의 묵직한 향미와 탄탄한 질감은 영화 속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와 썩 잘 어울린다. 스페셜 퀴베(Special Cuve′e)를 맛보면 잘 익은 사과의 달콤함과 상큼함, 갓 구운 빵과 아몬드의 고소함 등 향의 응축미가 놀라울 정도다. 기본급인 스페셜 퀴베가 이 정도니 더 고급인 라 그랑 아네(La Grand Anne′e)는 말할 필요도 없다. 

    라 그랑 아네는 프랑스어로 ‘위대한 해’라는 뜻. 수확이 탁월한 해에만 생산되는 빈티지 샴페인이다. 최신 빈티지인 2007년산을 맛보면 꿀에 절인 레몬, 달콤한 열대과일, 고소한 견과류, 매콤한 생강, 은은한 꽃향 등 복합미가 탁월하다. 마신 뒤에는 오렌지의 상큼함, 바닐라의 향긋함, 꿀의 달콤함이 오래 입안을 맴돈다. 



    비결이 뭘까.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피노 누아(Pinot Noir)의 함량과 긴 숙성 기간이다. 볼렝저의 모든 샴페인에는 피노 누아가 최소 60% 이상 들어간다. 농익은 과일향과 묵직함이 여기서 나온다. 숙성 기간도 스페셜 퀴베는 최소 3년, 라 그랑 아네 2007은 9년이나 된다. 긴 시간을 투자하니 복합미가 좋을 수밖에 없다.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늘 볼렝저와 함께한다’는 말을 남긴 릴리. 그의 철학을 이어받은 볼렝저는 전국 유명 백화점과 신동와인숍에서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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