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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기적 인간’의 20세기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키티 제노비스 사건’은 과장됐고,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연출됐다

‘이기적 인간’의 20세기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이기적 인간’의 20세기 신화가 무너지고 있다
#1 
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무렵 미국 뉴욕 퀸스 주택가에서 키티 제노비스라는 29세 여성이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흑인 남성으로부터 노상강도를 당했다. 제노비스는 격렬히 저항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파트 현관 앞까지 끌려가 칼에 찔린 채 숨졌다. 경찰이 신고를 받은 것은 여자가 죽고 20분이 지나서였다. ‘뉴욕타임스(NYT)’는 이 사건을 심층 취재해 그해 3월 27일자 1면 톱기사로 내보냈다. ‘살인을 목격하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37명’(이후 속보에서 38명으로 바뀜)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취재를 지휘한 에이허브 로젠탈은 NYT의 전설적 편집국장이 됐고 미국에서 사건·사고 신고전화가 911로 일원화됐다. ‘38명의 목격자’는 타인의 곤경에 냉담한 익명의 도시인을 상징하게 됐고, ‘키티 제노비스’라는 이름은 불운의 상징이 됐다. 또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도 약해진다는 ‘책임감 분산 효과’ 또는 ‘방관자 효과’란 심리학 용어를 탄생시켰다. 

#2
 1971년 8월 14일 스탠퍼드대 심리학과가 위치한 조던 홀 지하에 작은 감옥이 들어섰다. 젊고 건강하며 심리적으로 안정된 백인 남학생 70명 중 24명을 뽑아 간수 12명과 죄수 12명으로 배역을 나눠 맡겼다. 일당 15달러를 주기로 하고 최장 2주간의 역할극에 들어간 것. 교도관과 재소자의 성격 특질이 수감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찰하기 위해 실험 진행자는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실험 첫날부터 죄수들은 크고 작은 소동을 일으키며 반항했고, 간수들은 이들을 통제하고자 엄격한 규칙을 만들고 물리적 제재를 가했다. 갈등은 점점 심해졌고 간수 역의 학생들은 죄수 역의 학생들에게 심리적 모욕은 물론, 신체적 학대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2주 예정의 실험이 만 6일째인 8월 20일 종료됐다. ‘스탠퍼드 감옥 실험(SPE)’은 사회적 환경과 주어진 역할에 따라 선량한 사람도 악마적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증좌가 됐다. 이 실험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가학성이 특정 조건 아래서 발현된다는 의미로 실험을 주관한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2007년 출간한 책 제목과 같은 ‘루시퍼 효과’로도 유명해졌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은 부풀려졌다

키티 제노비스.(왼쪽), 스탠퍼드 감옥 실험 당시 사진. [동아DB, www.princetonexp.org]

키티 제노비스.(왼쪽), 스탠퍼드 감옥 실험 당시 사진. [동아DB, www.princetonexp.org]

이 2가지 사례는 인간 본성이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쾌락을 위해 언제든 타인을 희생시킬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20세기 후반 내내 인구에 회자됐다. 성선설보다 성악설에 입각한 이런 관점은 1970년대 이후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입각해 시장만능주의를 주창한 신자유주의 세계관의 핵심을 이루기도 한다. 다윈의 적자생존론을 사회진화론적으로 각색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가 발표된 시점도 그즈음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이들 사례가 과장되거나 조작됐다는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과거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먼저 키티 제노비스 사건의 경우 2016년 키티의 남동생 빌 제노비스가 진실을 추적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 ‘목격자(The Witness)’가 개봉되면서 NYT의 보도가 과장됐음이 드러났다. 

남매의 어머니는 생기발랄하고 책임감 강하던 딸이 사망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빌과 다른 가족은 NYT의 보도내용이 어머니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빌은 2년 뒤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누나의 비극을 잊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해병대에서도 그의 이름만 듣고도 그가 키티의 동생임을 눈치채는 바람에 군 생활도 힘겨웠다. 그러다 결국 베트남전서 두 다리를 잃은 빌은 2004년 NYT가 해당 보도에서 목격자 수가 과장됐음을 인정하는 보도를 접하고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제임스 솔로몬과 함께 누나 죽음의 진실을 찾아나섰다. 

조사 결과 사고 상황을 보거나 들은 사람은 대여섯 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한 명은 “여자를 내버려둬”라고 범인을 향해 외쳤고, 2명 이상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키티의 비명을 듣고 달려와 숨을 거둘 때까지 곁을 지켜준 소피아 파라라는 여성도 있었음이 새로 밝혀졌다. 빌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머릿속 헛소리를 현실처럼 만들어내면 사람들은 그걸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며 그럴 만하다고 믿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그게 진짜 우리 삶의 일부가 돼버립니다.”


‘루시퍼 효과’는 조작됐다

필립 짐바르도 교수(왼쪽)와 그가 출간한 ‘루시퍼 효과’ 책표지. [위키피디아]

필립 짐바르도 교수(왼쪽)와 그가 출간한 ‘루시퍼 효과’ 책표지. [위키피디아]

올해 6월엔 SPE가 거짓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작가이자 인공지능(AI) 박사인 벤 블룸은 6월 7일 미국 인터넷 매체 미디엄에 ‘어느 거짓말의 수명(The Lifespan of a Lie)’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다수 실험 참가자의 증언과 프랑스 영화감독 티볼트 르 텍시에가 스탠퍼드대 서고에서 발견해 4월 프랑스에서 출간한 SPE 관련 미공개 녹취록 ‘어떤 거짓말의 역사(Histoire d’un Mensonge)’를 토대로 실험 참가자들의 이상행동이 암묵적으로 합의된 연기였거나 짐바르도 교수의 부추김을 받아 연출된 것이라고 폭로했다. 

실험 사흘째 되던 날 욕설을 퍼부으며 발작증세를 일으켜 가장 주목받았던 죄수 역의 더글라스 코피(현재 법정신의학자)는 발작이 연기였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 연기에 일부 진실이 담겼다면 간수 역의 가혹행위에 따른 공포 때문이 아니라 감옥에서 실험 직후 있을 예정이던 대학원 GRE 시험공부를 못하게 해서 생긴 불안과 초조 때문이라고 밝혔다. 

코피를 포함해 3명의 죄수 역할 참가자들은 실험이 힘겨우면 떠날 수 있다고 들었으나 막상 실험에 돌입한 뒤 실험이탈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실제 녹취록에는 짐바르도 교수가 “실험을 중단하려면 의학적 도움이나 정신적…이 필요한 두 가지 경우에 한한다”고 말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는 사실상 불법감금으로 심각한 연구윤리 위반임과 동시에(실험 참가자들은 언제라도 자신의 참여를 철회할 권리가 있다) 법적으로 처벌받을 만한 행동이다. 이에 대해 짐바르도 교수는 “떠나고 싶으면 ‘나는 실험을 중단하겠다’고 말하라 했는데 그들은 그 말은 하지 않고 ‘나가고 싶다’거나 ‘의사가 보고 싶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만 했다”는 다소 억지 반박을 했다. 

녹취록에는 짐바르도 교수가 간수 역할 참가자들에게 수감자를 학대하라고 부추긴 내용도 담겨 있었다. “육체적으로 괴롭히거나 고문해선 안 된지만 지루함과 좌절감, 그리고 어느 정도의 공포심을 조성할 수 있다. 우리가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며 그들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한 대목이다. 또 이 실험의 아이디어가 데이비드 제프라는 학부생으로부터 나왔는데 그는 실험 착수 이틀 전부터 스태프들과 사전 시뮬레이션을 했을 뿐 아니라 간수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온갖 가학적 규칙과 제재를 내놨다는 것이다. 

또 억센 남부 억양을 지닌 가장 고약한 간수 노릇을 해 ‘존 웨인’이란 별명으로 불린 데이브 에셜먼은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학생이었다. 그는 벤 블룸과 심층 인터뷰에서 “나는 남부 출신도 아니었지만 연구진이 거친 간수 역을 원했기 때문에 나 나름 최선의 연기를 했다”고 밝혔다. 실제 실험이 끝난 뒤 짐바르도 교수는 실험 참가자 가운데 특별히 그를 지목해 감사를 표했다는 것. 

짐바르도 교수는 관련 내용을 부인하며 제자를 포함한 실험 참가자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SPE가 선정적 결과를 도출할 의도에 의해 오염된 ‘연출된 실험’이라는 사실을 뒤집기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사실 이 실험에 대해 학계의 의혹과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실험이 끝난 직후 짐바르도 교수는 자신의 연구를 심리학술지가 아닌, 일반 언론 잡지인 ‘뉴욕타임스매거진’에 발표했다.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은 것이다. 

또 여러 차례의 반복 검증에도 실패했다. 가장 최근의 것으로 ‘BBC 감옥 실험’이 있다. 2002년 영국 세인트앤드루대의 스티븐 레이처와 엑서터대의 알렉산더 해슬럼은 영국 공영방송사 BBC의 도움을 받아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재현했다. 이 실험에서는 심각한 가혹행위가 발생하지 않았고, 교도관은 역할에 전혀 몰입하지 못해 수감자에게 압도되기까지 했다. 이에 레이처와 해슬럼은 인간은 환경 요소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악의 평범성

공교롭게도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의 아성이 무너졌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놔두면 시장이 저절로 잘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은 금융자본주의의 모럴 해저드로 산산이 부서졌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역시 종의 다양성을 확보한 생명체가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다는 적자생존론을 개별 생명체 차원으로 축소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다윈이 말한 환경 변화는 전체 종이 살아남느냐 마느냐 하는 격변을 말하는데, 개체 차원에서 고군분투를 펼친 존재가 최종승자가 된다는 환상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을 이타적 존재로 규정하기도 힘들다. 20세기 이기주의 신화에는 아직 ‘밀그램 실험’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61년 스탠리 밀그램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는 실험 참가자를 교사로 설정해 학생들이 암기 과제를 하나씩 틀릴 때마다 15V에서 450V까지 단계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하게 했다. 학생은 전문 연기자였고, 실제 전류도 흐르지 않았지만 교사 역을 맡은 피실험자에겐 실제 상황이라고 속였다. 학생 역을 맡은 연기자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하는 연기를 펼쳤음에도 “실험은 계속돼야 한다”는 지시를 받은 피실험자의 65%는 최고전압 450V까지 전압을 올렸다. 

이 실험은 나치전범인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하고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설파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과 맞물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치하의 독일인들이 유대인 학살 같은 범죄에 가담할 수 있었느냐에 대한 해답으로 간주됐다.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평범한 사람이 상부의 부당한 지시를 기계적으로 수행할 때 참극이 벌어진다는 의미다. SPE는 밀그램 실험이 열어젖힌 인간 본성의 심연에 대한 화룡점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기적 인간’으로 누가 이득 볼까

밀그램 실험 장면. [미국 예일대 자료]

밀그램 실험 장면. [미국 예일대 자료]

하지만 밀그램 실험과 SPE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밀그램 실험에선 피실험 대상은 가해자 역할만 맡겼으며 피해자 역할은 처음부터 연기자의 도움을 받았음을 명확히 했다. 그래서 실험 대상자들은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술회하면서도 실험 결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SPE에선 실험 대상에게 가해자와 피해자 역할을 맡기고 자신들은 개입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양측에 모두 실험 주최 측이 심어놓은 연기자가 숨어 있었다. 또 밀그램 실험에선 “실험은 계속돼야 한다”는 종용에도 피실험자의 35%는 자발적으로 실험을 중단했다. 반면 SPE에선 “실험을 중단하겠다”는 구체적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험 참여 거부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도 달랐다. 밀그램의 실험에선 65%만이 타인의 고통에 무심했다면, SPE 실험에선 대상자 모두가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마지막으로 실험 수행자의 운명이 달랐다. 밀그램 교수와 짐바르도 교수는 1933년생 동갑내기에 명문대 심리학과 교수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밀그램 교수는 실제 연구윤리를 위반하지 않았음에도 비윤리적 실험을 했다는 비난 속에서 학계의 눈 밖에 나 예일대 교수직을 잃고 그 충격으로 심장병으로 고생하다 51세에 숨졌다. 

반면 그 10년 뒤 더 지독한 실험을, 그것도 연구윤리를 위반하면서까지 한 짐바르도 교수는 2002년 미국 심리학회장에 오를 정도로 승승장구했으며 그가 쓴 ‘루시퍼 효과’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2004년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이라크 포로를 학대한 미군 병사들의 심리를 꿰뚫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밀그램 실험은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인식에 대한 거부감이 클 때 이뤄졌다. 반면 SPE는 그런 인식이 어느 정도 수용된 상황에서 이뤄졌다. 그래서인지 그저 호기심 많던 밀그램 교수는 추락했고 대중적 명성을 탐했던 짐바르도 교수는 각광받았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면 어떤 사람이 이득을 보게 될까. 바로 이기적인 사람들이다. 모두가 이기적이라고 하면 자신의 이기적 면모가 은폐되기 때문이다. 설령 그런 면모가 노출됐다 해도 위압적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면 된다. 우리가 잘못을 저질러도 그것은 우리가 악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우리를 내몰았기 때문이라는 면죄부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그램 실험에 따르면 이타적인 사람은 최소 35%는 된다. 또 그 실험 대상자를 추적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 따르면 전압을 최고 수치까지 올렸던 사람 중 일부는 이후 새로운 삶을 택했다. 자신의 이기심에 놀라 이타적 삶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의 본성이 선한가, 악한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삶을 택할 것인가에 있다.






주간동아 2018.08.15 1151호 (p66~69)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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