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4

2018.04.18

경제

케뱅·카뱅이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

금융계 새바람 맞지만 개인정보 확보, 은산분리 규제 완화 없으면 ‘찻잔 속 태풍’

  • 입력2018-04-18 16: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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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4월 출범한 국내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첫돌을 맞았다. 케이뱅크에 이어 지난해 7월 영업을 시작한 카카오뱅크도 정보기술(IT) 기반 은행으로 연착륙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이들 앞에 펼쳐진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은 편리성과 낮은 대출금리 등을 내세워 단시일 내 가입자 수를 크게 늘렸다. 출범 초부터 케이뱅크를 이용 중인 30대 직장인 김모 씨는 계좌이체 시 공인인증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점을 인터넷전문은행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김씨는 “비밀번호 6자리만 입력하면 바로 이체가 돼 정말 편하다. 또 예전에는 급하게 이체해야 할 때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 카드가 없어 낭패를 본 적이 종종 있는데, 케이뱅크를 쓰고부터는 그럴 일이 없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은행 업무의 시간적, 공간적 장벽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시중은행은 오후 4시면 문을 닫아 직장인은 점심시간을 할애하거나 근무가 없는 날 은행 업무를 몰아서 봐야 하는데, 인터넷전문은행을 이용하면 365일 24시간 비대면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주말, 공휴일 상관없이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신용평가부터 대출까지 한 번에 이뤄진다. 

    케이뱅크에 따르면 시중은행이 문을 닫는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자사 앱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한 고객이 전체의 70%에 달한다. 카카오뱅크 역시 60% 수준이다. 또한 카카오뱅크는 1월 전월세보증금 대출을 100% 비대면 상품으로 출시해 각광받고 있다. 케이뱅크도 6월 아파트담보대출을 비대면화해 출시할 예정이다.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이 출범 1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케이뱅크 광화문 사옥에서 1년 성과와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왼쪽). 카카오뱅크는 1월 출범 160여 일 만에 가입자 수 500만 명을 넘겼다. [동아DB, 뉴스1]

    심성훈 케이뱅크 은행장이 출범 1주년을 맞아 서울 종로구 케이뱅크 광화문 사옥에서 1년 성과와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왼쪽). 카카오뱅크는 1월 출범 160여 일 만에 가입자 수 500만 명을 넘겼다. [동아DB, 뉴스1]

    이러한 편리함 덕분에 인터넷전문은행의 고객 수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케이뱅크는 영업 개시 당일 4만여 명이 가입한 데 이어 4월 현재 전체 고객 수가 62만8190여 명에 달한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160여 일 만인 1월 7일 가입자 수가 500만 명을 넘어서며 ‘카뱅 돌풍’을 일으켰다. 



    이러한 모바일 기반의 금융 서비스가 인기를 끌자 시중은행도 앱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각종 사업증빙과 재무자료를 소지하고 은행 영업점을 방문해야만 대출이 가능하던 ‘SOHO 개인사업자 대출’을 비대면화했다. IBK기업은행도 고객 특성을 반영한 디지털 예·적금 특화 상품과 우량기업 임직원 대출은 물론, 비대면 전용 부동산담보대출도 순차적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가장 큰 강점은 높은 예금이자와 낮은 대출금리다. 전국은행연합회 예금금리 공시를 보면 케이뱅크 ‘코드K 정기예금’의 1년 만기 정기예금금리는 2.40%로 은행권에서 가장 높다. 그다음은 카카오뱅크 정기예금으로 2.20%이다. 반면 케이뱅크의 평균 대출금리(3월 기준 5.55%)는 시중은행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편이다. 이는 중신용자 대출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슬림K, 미니K, 소호대출 등 중신용자 대출에 역점을 두고 사업을 추진해온 케이뱅크는 전체 대출 건수 가운데 4등급 이하 8등급 사이(중신용) 고객의 대출 건수 비중이 60%를 넘고, 금액 비중으로 계산해도 40%를 넘어선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초기 금융당국으로부터 ‘고신용자 대출 쏠림’ 현상을 지적받았지만, 금액 기준이 아닌 건수 기준으로 따지면 현재 중신용자 대출은 전체 대출에서 50%가량을 차지한다. 또한 대표적 중신용자 대출인 ‘비상금 대출’은 시중은행을 포함해 금리가 연평균 5.71%로 가장 낮다. 인터넷전문은행의 금리 수준에 맞춰 시중은행도 예금이자를 높이고 대출금리는 내렸다. 

    이처럼 인터넷전문은행은 출범 당시 정부와 금융 소비자들이 가졌던 ‘메기 효과’ 기대감을 어느 정도 충족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때론 두 은행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시중은행과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케이뱅크, 카카오뱅크는 최근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IT 기반의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아직까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해외에서 성공 사례를 찾자면 미국 찰스슈왑뱅크와 앨리뱅크를 들 수 있다. 찰스슈왑뱅크는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융합한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해 개인의 투자성향에 맞는 자동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한 고객 자산관리 포트폴리오를 고객 관점에서 단순화해 전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앨리뱅크는 제너럴모터스(GM)의 손자 회사로 오토론, 리스 등 자동차 금융 관련 상품 및 서비스를 특화해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다. 

    임일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인터넷전문은행은 말 그대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좀 더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도전이 필요하다. 시중은행이 하지 못한 걸 해내야 한다. 온라인 쇼핑몰과 연계해 소액전자결제 부문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AI를 활용한 신용도평가 시스템을 개발해 유망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식의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형 개인정보 활용 방안 시급

    국내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진정한 미래 금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등 데이터 활용 방안에 변화가 필요하다. [뉴시스]

    국내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진정한 미래 금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등 데이터 활용 방안에 변화가 필요하다. [뉴시스]

    관건은 개인정보와 관련된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집, 활용할 수 있느냐다. IT를 기반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개인의 소비 패턴과 취향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지만 현재 법규정상 은행과 신용카드사 간 정보 교환은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장은 “유럽연합(EU)이 5월부터 개인정보보호 규정(GDPR)을 시행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합리적인 선에서 관련 규정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GDPR의 주요 항목은 개인이 본인 데이터의 △처리 관련 사항을 제공받을 권리 △열람 요청 권리 △정정 요청 권리 △삭제 요청 권리 △처리 제한 요청 권리 △데이터 이동 권리 △처리 거부 요청 권리 △개인정보의 자동 프로파일링 및 활용에 대한 결정 권리 등이다. 즉 마케팅 일환으로 개인의 직업, 취미, 위치 등이 자동으로 수집 및 처리, 활용되는 경우에 대해 데이터 주체자인 개인에게 미리 해당 내용을 고지하고 활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방침이다. 

    최 센터장은 “음지에서 무차별적으로 일어나는 개인정보 유출을 막으려면 하루빨리 적절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최근 ‘페이스북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제 개인정보는 개인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러려면 우리가 개인정보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 정부는 합리적이면서도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 모두 따르게 해야 한다.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유출하는 업체에게는 회생 불가 수준의 강력한 페널티를 부여하는 식이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개인정보 유통을 막아버리는 건 미래 금융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미 업계에서는 개인정보 활용과 관련해 조만간 해외 기업들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IT 관련 한 관계자는 “외국은 개인정보 수집에 대해 우리보다 규제가 덜한 편이다. 특히 중국은 규제가 있어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려면 시행착오를 통한 노하우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중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반면 제자리걸음만 하는 우리나라는 조만간 데이터 분야에서 외국과 더는 경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인터넷전문은행은 물론이고 시중은행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뱅크 출범 전부터 논란이 됐던 은산분리 규제도 인터넷전문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 현재 케이뱅크는 자본 확충이 절실한 상황임에도 은산분리 규제에 따라 수개월째 증자 추진이 지연되고 있다. 은산분리는 은행법상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최대 10%만 소유할 수 있고, 그중 의결권은 4%로 제한하는 규제다. 

    현행법상 유상증자를 하려면 모든 주주가 동일한 비율로 출자해야 하는데, 케이뱅크는 주주가 20곳이나 돼 의견을 취합하기 쉽지 않다. 주주 가운데 자금력을 가진 KT가 주도적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되지만, 은산분리 규제에 따라 KT는 산업자본으로 분류돼 독자적인 대규모 증자가 불가능하다.

    해외 핀테크 산업에 국내시장 잠식될 수도

    자본금 2500억 원으로 출범한 케이뱅크는 최소 2년은 거뜬히 버틸 수 있으리란 생각과 함께, 그사이 은산분리 규제도 완화될 것이라 판단했지만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케이뱅크는 지난해 말 새 주주사인 부동산투자회사 MDM으로부터 투자받아 1000억 원 증자를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케이뱅크는 추가 증자를 계획 중이다. 증자 규모는 1500억~5000억 원으로 지난번 보다 커 기존 주주들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권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에 한해서라도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금융당국과 여당은 은산분리 기조가 와해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여전히 규제 완화를 반대하고 있다. 

    그나마 카카오뱅크는 은산분리 규제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다. 주주 구성도 9개 회사로 단순하고, 금융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가 대주주라 지분 비율에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4월 4일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카카오뱅크에 1860억 원을 출자해 3720만 주를 취득하는 유상증자에 참여했다. 이번 유상증자를 통해 카카오뱅크는 자본금을 1조3000억 원까지 불렸다. 

    케이뱅크는 기존 상품의 안정적인 판매 및 신규 대출상품 출시를 위해 유상증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아파트담보대출의 경우 일반신용대출보다 규모가 크고, 대출액이 커지면 위험자산 대비 자본금 비중인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 비율이 줄어들게 된다. 

    BIS 비율은 은행 건전성과 안전성을 나타내는 대표 지표인 만큼 BIS 비율이 내려가면 그만큼 신규 서비스 확장이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은산분리 규제→유상증자 요원→사업 확장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재 국회에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담은 은행법 개정안과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등 5개 법안이 계류 중이다.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산업에서 4차 산업이 바로 접목될 수 있는 영역으로, 향후 유일하게 ‘고용 증대를 기대할 수 있는 금융업 분야’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반대로 핀테크(금융+기술)와 인터넷전문은행이 발전하지 못하면 결국 해외 핀테크 산업에 국내시장이 잠식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IT 업계 한 관계자는 “경제 핏줄인 금융산업이 낙후하면 국가 경쟁력은 총체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 산업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인터넷전문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들이 하루빨리 완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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