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4

2018.04.18

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삼성증권 직원들 왜 ‘유령주식’을 팔았을까

“마법적 사고, 일시 흥분으로 판단력 저하 … 오류 알고 팔았다면 도덕적 해이“

  • 입력2018-04-17 1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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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6일 삼성증권이 우리사주조합에 대한 배당금을 입금하는 대신 주식을 입고하는 착오를 저질렀다. 문제는 이처럼 착오에 의해 배당된 주식을 판 직원이 16명이나 된다는 점이다. 원래 주당 1000원씩 배당해야 하는데 실수로 우리사주조합원인 직원 2018명에게 현금 대신 주식 28억1000만 주를 잘못 입고했고, 직원 16명은 501만2000주를 내다 팔아 부당이득을 챙겼다. 그리고 실제로 발행되지 않은 주식이 매도됐다는 점에서 이른바 ‘유령주식’과 ‘무차입 공매도’ 논란이 일고 있다. 결국 주가 하락으로 선의의 투자자가 큰 피해를 입는 등 국민 처지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현상이 벌어졌다. 

    전산 처리 과정에서 실수도 어처구니없지만, 자신의 계좌에 거액의 주식이 들어온 데 대해 직원들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인 것인지 궁금하다. 아니면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점을 인지하고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순간적으로 직업적 윤리의식을 저버린 것일까. 

    평소 불법적인 무차입 공매도가 만연한 상태라면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즉 자신의 계좌로 흘러들어온 주식이 자신에게 배당된 것이 아니라 회사의 주가 조작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인식했다면 무심코 공매도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훨씬 더 많은 직원이 이 사건에 연루됐을 것 같다. 그러나 자신에게 엄청난 주식 배당이 이뤄진 것을 현실로 받아들였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은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상식적으로는 착오가 아닌 실제 벌어진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관점에서 두 가지 가능성을 추정해보고자 한다.

    “착하게 살아서 보상받았다”는 마법

    첫째, ‘마법적 사고’의 출현이다. 이는 마치 나에게 마법이 일어난 것처럼 상황을 해석하고, 더 나아가 내가 마법을 부린 듯이 인식하기도 한다.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어느 날 소원이 마법처럼 현실로 이뤄진 것으로 받아들인다. 길을 걷다 우연히 거액의 돈뭉치를 발견했다고 치자. 현실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이 돈을 가져가면 나중에 엄청난 책임을 지게 되고, 범죄자가 될 수 있으며, 심지어 누군가 나를 시험하려고 이런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마음도 품게 된다. 그러나 마법적 사고에 빠진 사람은 하늘이 나를 도왔으며, 누군가가 내 인생을 아름답게 하려고 이 같은 행운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착하게 살았기 때문에,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보상으로 누군가가 나에게 선물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생각이자 논리다. 

    유아기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면서 “그것은 나에게 들어온 선물이에요” “부모님이 저에게 주는 상이에요”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자신의 언행과 연관시킨다. 이는 비논리적이며, 과학적 인과관계는 전혀 없다. 다만 시간적 인과관계가 있을 뿐인데, 엄밀히 말하면 인과관계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마법적 사고는 성인의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실제로 나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얼마 전에 착한 일을 해서 그런가 봐” “전생에 내가 좋은 일을 했기 때문이야” “조상님 묫자리가 좋아서 그래” 같은 말로 행운을 설명하곤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은 행운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스스로 부여한다. 이런 사람이라면 거액의 주식이 들어왔을 때 착오 가능성을 의심하기보다 엄청난 행운이 일어났고, 이는 자신이 뭔가를 잘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그래서 금전적 이득을 취할 자격이 있다는 유아기의 마법적 사고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둘째, 일시적 흥분 상태에 따른 현실 판단력의 저하다. 갑작스레 거액의 주식 배당이 이뤄졌다면 누구나 엄청난 기쁨에 빠질 것이다. 이내 그것이 착오임을 인지하면 기쁨의 감정은 곧 사라질 테다. 그런데 만일 기쁜 감정을 유지하고자 혹은 놓치지 않고자 하는 무의식적 동기가 강하게 작용한다면 기쁨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클릭 몇 번으로 배당된 주식을 팔아 현금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실제로 성공해 주식이 현금화되는 과정을 목격한다. 이 과정 자체가 엄청난 희열이다. 자신의 감정적 흥분 상태를 유지하고자 훗날의 후유증이나 불이익을 잠시 망각한 채 오로지 감정적 측면의 만족감을 추구한다.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이성이 마비되고, 그 결과 현실적 판단 능력과 합리적 행동 수행이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다.

    [사진 제공=동아DB]

    [사진 제공=동아DB]

    대한민국 도덕성 점검 계기 돼야

    그런데 주식 배당이 오류임을 인식하고도 팔았다면 순간적으로 탈(脫)도덕적 또는 반(反)도덕적 행위를 한 것이다. 평소 도덕적으로 사는 것, 착하게 사는 것에 의문과 회의를 품은 직원은 이번 기회에 일단 이득을 챙기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결심했을 수 있다. 현실적 차원에서 철저하게 계산했을 수도 있다. 이후에 문제가 되더라도 일단 내 손에 들어온 돈은 내 것으로 인정될 가능성이 있고, 일부만 토해내면 될 것이라는 식의 예측을 했을 수도 있다. 마치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자신이 받을 형벌을 감수하더라도 돈을 챙기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길을 걷다 주운 물건을 원래부터 자신의 것인 양 요모조모로 돌려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고, 만일 걸리더라도 그때 가서 돌려주든가, 아니면 적당한 핑계를 대거나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다. 

    증권회사 직원이라면 누구보다 주식시장을 잘 알고 어떠한 행위가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지 명확히 파악하고 있을 테다. 그럼에도 비도덕적 행위, 더 나아가 불법이 의심되는 행위를 여러 명이 동시에 저질렀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증권업계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와 불법적 관행이 의심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유아기의 마법적 사고를 가지거나, 감정적 흥분 상태에서 이성적 판단 능력이 결여된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는 곳이다. 비난과 처벌을 감수하더라도 금전적 이득을 중요하게 여기는 몰염치하고 비도덕적인 인간들의 집합체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다. 

    개인의 부도덕과 그가 속한 집단의 비도덕 사이에는 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다. 즉 개인이 도덕적으로 깨끗할 때 그가 속한 집단도 그렇게 돼가고, 반대로 집단이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으면 개인 역시 도덕적 가치를 높게 추구한다.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 즉 자신이 속한 가정, 회사, 지역사회, 업계, 직역 등은 도덕적으로 온전한가.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도덕성 지수는 현재 어느 정도인가. 삼성증권 사태는 우리에게 삶의 가치와 도덕의 중요성을 돌아보고 반성하게끔 한 중요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우리 사회 전체의 도덕성 체질을 개선하는 좋은 계기로 승화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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