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자의 #쿠스타그램

나만의 컬러 2만5000원이면 만든다

용인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잉크랩 가보니

  • 입력2018-01-21 13: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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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외관.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외관.

    ‘아, 어떡해. 보기만 해도 너무 기분 좋아서 몸이 근질거려.’ 

    모나미가 지난해 12월 8일 자사 페이스북에 모나미 스토리연구소를 열었다는 소식을 올리자 한 누리꾼이 쓴 댓글이다. 그 밑에는 ‘헐 대박’ ‘펜부심이 폭발한다’ ‘이건 꼭 가야 해’ ‘용인인데 멀어도 가야 하는 부분’ 같은 댓글이 줄을 이었다. 

    대체 뭐가 이들의 기분을 좋게 하고, 펜부심(펜+자부심)을 폭발시켰으며, 경기 용인시까지 먼 길을 행차하고 싶게 만든 걸까. 기자는 평소 세상에 같은 펜은 없고 검은색 펜도 다 필기감이 다르다며 사 모으기에 바쁜 ‘펜팬’. 그런 기자의 눈을 번쩍이게 한 것은 ‘모나미 스토리연구소에서는 다양한 컬러를 조합해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잉크를 만들 수 있다’는 대목이었다. ‘펜 덕후’나 ‘문구 덕후’라면 몸이 들썩일 만한 소식이었을 것이다.

    물감으로 시작해 만년필까지

    모나미가 출시한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는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모나미가 출시한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는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모나미가 최근 워낙 다양한 펜을 내놓다 보니 요즘 학생들에게는 모나미의 이미지가 어떨지 모르겠다. 모나미 하면 떠오르는 건 단연 흰색과 검은색 조합 몸체의 153 볼펜인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다. 사명은 모나미의 전신인 광신화학공업이 자체 기술로 처음 만든 그림물감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다음에 생산한 제품은 왕자파스. 모나미 153은 1963년 5월 1일 모나미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볼펜이다. ‘153’에는 당시 볼펜 가격인 15원과 모나미가 만든 세 번째 제품이라는 뜻이 담겼다. 예전에는 이 볼펜으로 필기하다 보면 종종 잉크가 뭉쳐 나오는 ‘똥’ 현상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현저히 준 것을 알 수 있다. 

    1960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국내 문구업계를 주름잡아온 모나미는 최근 볼펜의 고급화 전략과 마커의 다양화 전략을 수립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전 세계에 마커를 1억 개 이상 팔았다. 도자기에 그릴 수 있는 것부터 타일과 패브릭에 그릴 수 있는 것까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물체 표면에 사용 가능한 다양한 종류의 마커를 생산한다. 2만 원 가까이 하는 볼펜을 내놓으며 ‘럭셔리한 볼펜’ 라인업도 세웠다. 



    모나미는 조만간 만년필도 출시할 계획이다.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잉크랩(ink Lab)’에서 잉크 DIY(Do It Yourself) 클래스를 여는 것도 이후 만년필 판매를 위한 포석은 아닐까. 나만의 잉크 컬러를 만드는 비용은 2만5000원. 과연 누가 저 돈을 주고 용인까지 가서 잉크를 만들까 궁금해졌다.

    잉크랩에서는 여러 컬러를 조합해 나만의 잉크를 만들 수 있다.

    잉크랩에서는 여러 컬러를 조합해 나만의 잉크를 만들 수 있다.

    1월 5일 오후 4시 잉크 만들기 체험을 하기 위해 용인시 수지구 모나미 본사 1층에 있는 모나미 스토리연구소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잉크가 담긴 플라스크가 진열된 선반이 눈에 들어왔다. 모나미 스토리연구소는 만년필용 잉크를 제작할 수 있는 잉크랩을 중심으로 전문 강사로부터 데코 마커, 패브릭 마커, 세라믹 마커 등을 활용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클래스룸, 모나미의 주력 제품과 디자인 상품을 전시 · 판매하는 제품존으로 나뉘어 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잉크 만들기를 체험한 사람들이 완성한 잉크를 손에 든 채 매장을 구경하는 모습이 보였다. 기자가 잉크 컬러를 만드는 도중에도 펜을 사려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됐다. ‘아, 생각보다 많이들 오는구나.’

    직원이 잉크를 만들 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직접 만든 잉크 컬러를 테스트해보고 있다.

    직원이 잉크를 만들 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직접 만든 잉크 컬러를 테스트해보고 있다.

    잉크 만들기 체험을 하려면 모나미 컨셉스토어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체험비는 잉크와 포장을 포함해 2만5000원. 화 · 수 · 목요일에는 세 번(11 : 00, 14 : 00, 16 : 00), 금요일에는 네 번(11 : 00, 14 : 00, 16 : 00, 19 : 30), 주말 역시 네 번(11 : 00, 14 : 00, 16 : 00, 18 : 00) 운영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한 번에 들을 수 있는 인원은 5명으로 주말 오후와 금요일 저녁 수업(19 : 30)에는 예약이 꽉 차는 경우가 많다. 모나미 관계자는 “유니크한 걸 좋아하는 컬렉터가 거리와 비용에 상관없이 많이 찾는다. 학생부터 중년까지 다양한 사람이 이곳을 방문하는데, 문구 덕후를 위한 놀이터 같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평생 쓰는 나만의 컬러

    완성된 잉크 컬러는 잉크랩에 등록돼 언제든 재구매할 수 있다.(왼쪽) 잉크를 포장하는 동안 둘러본 제품존과 DIY로 만드는 153 볼펜.

    완성된 잉크 컬러는 잉크랩에 등록돼 언제든 재구매할 수 있다.(왼쪽) 잉크를 포장하는 동안 둘러본 제품존과 DIY로 만드는 153 볼펜.

    자리에 앉아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나만의 컬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앞에 놓인 컬러 조합표를 한참 들여다봤다. 선택지가 많으니 오히려 고민이 됐다. 어떤 색을 만들까 고민하다 2월에 생일인 친구가 좋아하는 올리브그린 잉크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느낌의 색을 만들고 싶은지 설명하자 직원이 조합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오렌지색 잉크 2방울과 파란색 잉크 3방울. 손가락 마디만 한 비커에 각각의 잉크를 스포이드로 조금씩 떨어뜨리고 유리막대로 잘 저었다. 앞에 놓인 만년필로 잉크를 찍어 연습지에 선을 몇 번 그어봤다. 좀 더 연한 색을 만들고 싶으면 투명한 베이스 용액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 된다고 했다. 매장 직원은 “베이스를 많이 넣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며 “병에 담았을 때는 예쁘지만 실제로 종이에 쓰면 너무 연하게 나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리저리 조합해보다 처음 만든 색이 마음에 들어 곧바로 결정했다. 홍보팀 관계자는 “보통 45분 동안 색을 조합하다가도 시간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에 비하면 정말 빨리 만든 편”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완성한 잉크에는 고유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친구가 즐겨 쓰는 닉네임을 잉크 이름으로 정했다. 이날 만든 컬러 레시피는 잉크랩에 등록돼 언제든지 같은 색을 재구매할 수 있다. 재구매 비용은 택배비를 포함해 1만2000원. 직원이 “필기체로 잉크 이름을 쓸 건데 영어가 더 예쁘다”고 권유해 ‘Green herb’라고 지었다. 이렇게 이 세상에 처음으로 ‘Green herb’ 잉크가 탄생했다.

    완성된 잉크.

    완성된 잉크.

    방문객의 연령대는 워낙 다양하다는 것이 매장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어린이들은 아무래도 분홍이나 파랑, 민트색 잉크를 많이 만들고 어른들은 짙은 초록이나 버건디처럼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컬러를 만든다. 앞에 놓인 연습지를 여러 장 빼곡히 채우면서 잉크 컬러를 완성하는 사람도 많다. 한 번 와서 10만 원어치를 구매한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커플의 데이트 코스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매장 직원은 “커플이 함께 와 각자의 시그니처 색을 만들고 ‘뚠뚠이 색’처럼 애인의 애칭으로 잉크 컬러 이름을 짓기도 한다. 잉크를 다 만들고 남은 것을 버리려고 비커에 모아뒀는데 그 색이 마음에 든다며 가져간 고객도 있었다”고 밝혔다. 

    잉크를 포장하는 동안 매장을 둘러봤다. 제품존을 구경하다 보니 무언가 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모나미의 고급 펜부터 라이프스타일 소품, 디자인 팬시까지 이색적이고 독특한 상품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출시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끈 DIY 펜 키트 외에도 2018년 개의 해를 맞아 새롭게 나온 퍼피 153 시리즈를 팔고 있었다. 볼펜을 구매하고 즉석에서 레이저 각인을 받을 수도 있었다. 볼펜에 이름이 새겨지는 장면을 스마트폰 영상으로 찍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잉크와 함께 선물할 요량으로 만년필은 없는지 물었다. 매장에 있는 만년필은 2016년 출시한 3000원대의 올리카(OLIKA)뿐이었다. 모나미 관계자는 “새로운 만년필은 2월 출시될 예정이다. 많은 분이 라미 만년필과 비교하는데, 그 제품을 염두에 두고 만들지는 않았다. 가격대는 비싸지 않을 것이고 모나미의 시그니처인 육각형 보디 디자인을 차용한 제품”이라고 말했다.

    커플이 서로 잉크 만들어주기도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잉크랩에서는 제품을 활용한 수업도 진행된다.

    모나미 스토리연구소 잉크랩에서는 제품을 활용한 수업도 진행된다.

    매장을 나와 친구에게 완성한 잉크 사진을 보내주니 “정말 마음에 든다. 이제 만년필만 있으면 되겠다”며 기뻐했다. 특히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고급스러운 컬러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가격을 말해주자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만의 컬러를 갖는 데 그 정도는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년필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격을 알려주자 “조금 비싼 것 같다”고 말했다. 참고로 온라인 구매 시 펠리칸과 라미 만년필 잉크 30mℓ가 5000원 선이고, 파이롯트 잉크 30mℓ는 7000원 선이다. 컬러는 레드, 블루, 블랙, 블루블랙이 전부. 조금 다른 색을 원한다면 유야케(저녁놀)부터 치쿠린(죽림)까지 일본 정경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파이롯트의 이로시주쿠 잉크가 대안이 될 수 있다. 24색이 출시돼 있는데 50mℓ가 2만5000원 선이다. 몽블랑 잉크는 60mℓ가 3만 원대 후반이다. 이 정도면 모나미에서 만드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일본 여행을 자주 가는 지인은 모나미 잉크랩이 도쿄 구라마에의 문구점 가키모리 별관에 위치한 ‘잉크 스탠드(Ink stand)’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했다. 잉크 스탠드도 잉크를 섞어 나만의 잉크 컬러를 만드는 ‘잉금술’(잉크+연금술)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 문구 마니아의 성지로 불린다. 이곳의 체험 가격은 병당 2500엔으로 잉크랩과 비슷한 수준이다. 빨, 파, 검이라는 기본 컬러의 잉크에 질렸거나 이 컬러 하면 내가 떠오르는 시그니처 컬러를 갖고 싶다면 해볼 만한 체험이다. 흰색이나 금색, 은색 빼고는 다 만들 수 있다. 캘리그래피를 좋아하거나 다양한 컬러의 잉크를 모으는 사람이라면 만족도가 높겠다. 그러나 펜은 그저 글씨를 종이에 적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153 볼펜이나 플러스펜을 쓰는 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가 더 낫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진성 펜 덕후라면 알겠지. 펜과 잉크는 쓰는 재미도 있지만 모으는 재미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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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만의컬러 #레어템득템 #만들어쓰는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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