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1

2017.08.16

와인 for you

온 신경을 집중하게 하는 교향곡

칼 뢰벤 ‘막시민 헤렌베르그 1896’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7-08-14 14:07:09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독일 모젤(Mosel) 지역은 세계적인 리슬링(Riesling) 와인 산지다. 모젤 강변의 포도밭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오금이 저린다. 경사가 워낙 급해서다. 모젤은 북위 50도에 위치한다. 러시아 사할린과 같은 위도다. 추위를 이기고자 모젤에서는 강을 마주하는 남향 급경사에 밭을 일군다. 햇빛이 포도나무에 골고루 전달되고 강물에 반사된 햇빛이 한 번 더 포도밭을 비춰 태양열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어서다.

    모젤에서는 점판암도 포도를 기르는 데 중요한 요소다. 점판암은 태양열을 흡수해 포도밭을 따뜻하게 지켜준다. 점판암이 많은 땅은 척박하지만, 19세기 말 유럽을 강타했던 필록세라(Phylloxera) 해충의 피해를 덜 입기도 했다. 그래서 모젤에는 수령이 100년 이상 된 포도나무가 많고, 이런 고목은 맛과 향이 탁월한 와인을 생산해낸다.

    칼 뢰벤(Carl Loewen)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리슬링 포도밭 막시민 헤렌베르그(Maximin Herrenberg)를 소유한 와이너리다. 막시민 헤렌베르그의 포도나무 수령은 121년에 이른다. 1896년 당시 밭주인이던 칼 슈미트 바그너(Carl Schmitt-Wagner)가 모젤에서 가장 좋은 리슬링만 골라 이곳에 심었다고 한다.

    칼 뢰벤이 막시민 헤렌베르그를 매입한 것은 2008년이었다. 밭을 사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슈미트 바그너 측은 막시민 헤렌베르그를 칼 뢰벤에게 넘겼다. 높은 가격을 불러서가 아니었다. 칼 뢰벤이야말로 밭과 포도나무를 건강하게 지키며 훌륭한 와인을 만들 거라 믿어서였다.

    칼 뢰벤은 막시민 헤렌베르그를 유기농으로 운영한다. 제초제와 살충제를 쓰지 않아 밭에는 풀이 무성하고 땅에는 유익한 벌레와 미생물이 가득하다. 와인 양조도 인공 배양이 아닌 포도에 자생한 천연 효모로만 한다. 이 모든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와인이 ‘막시민 헤렌베르그 1896’이다.



    막시민 헤렌베르그 1896이 담긴 잔에 코를 대면 농익은 복숭아와 살구향에 감탄이 터져 나온다. 한 모금 머금으면 크림처럼 부드러운 질감이 묵직하게 입안을 채운다. 여운에서 느껴지는 생강의 매콤함은 화룡점정이다. 안주 없이 와인만 느끼고 싶을 정도로 향미가 웅장하고 아름답다.

    칼 뢰벤은 다른 밭에서도 고목을 많이 기른다. 독일 관련법은 수령이 25년 이상이면 고목으로 규정하지만, 칼 뢰벤은 50년 이상 된 포도나무만 고목으로 분류한다. 칼 뢰벤의 ‘알테 레벤(Alte Reben)’은 수령이 50~70년 된 리슬링에서 생산한 와인이다. 모젤 전통 양조법으로 만드는 이 와인은 천연 효모로 100일간 발효하고 효모와 함께 숙성시킨 뒤 병입한다.

    알테 레벤은 반전이 있는 와인이다. 달콤한 과일과 꿀향이 코를 사로잡지만 맛은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깔끔하다. 여운에서 느껴지는 짭짤함은 입맛을 묘하게 자극해 식욕을 돋운다. 막시민 헤렌베르그 1896이 온 신경을 집중하며 감상하는 교향곡이라면, 알테 레벤은 식사와 함께 우아하게 즐기는 실내악 같다.

    칼 뢰벤의 와인 철학은 ‘포도나무에게 최대한 자유를 주는 것’이다. 포도나무를 자연 그대로 유지할수록 밭의 특징이 잘 드러난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다. 그래서인지 칼 뢰벤의 와인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리슬링의 다양한 얼굴을 담아내는 칼 뢰벤은 모젤의 숨은 보석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