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1

2017.08.16

국제

포퓰리즘의 끝은 독재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제헌의회로 영구 집권 꿈꿔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7-08-14 13: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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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의 공식 국명은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The Bolivarian Republic of Venezuela)’이다. 볼리바르는 1820년대 스페인 식민지였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5개국을 독립시킨 전쟁 영웅 시몬 볼리바르(1783~1830)를 말한다. 특히 5개국 가운데 베네수엘라 국민은 볼리바르를 국부(國父)로 받들어왔다. 수도 카라카스가 볼리바르의 고향이다. 곳곳에 볼리바르 동상이 세워져 있고 볼리바르 광장, 볼리바르가(街), 볼리바르 박물관, 시몬볼리바르대, 시몬볼리바르국제공항 등 지명, 건물명에 볼리바르가 무수히 들어가 있다. 심지어 화폐 단위도 볼리바르다.

    베네수엘라가 사상 최악의 경제난에 빠져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하면서 볼리바르화가 휴지조각이 됐다. 카라카스 암시장에서는 최근 1달러가 8700볼리바르에 거래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고시하는 공식 환율인 ‘1달러=10볼리바르’와 비교하면 8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베네수엘라 최저임금은 월 9만7531볼리바르다. 식량 교환권을 포함하면 전체 급여는 25만531볼리바르지만 암시장에서 달러로 바꾸면 30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국내 제조업 기반이 사실상 붕괴돼 생필품 대부분을 외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실제 상거래에서는 암시장 환율이 적용된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설탕, 밀가루, 달걀, 휴지 등 생필품이 매우 부족해 일부 국민은 굶어 죽기 직전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 시몬볼리바르대가 최근 65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5%가 식량 부족으로 체중이 평균 8.62㎏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베네수엘라의 올해 인플레율이 1600%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버스 기사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른 인물   

    베네수엘라 경제가 파탄에 빠진 이유는 국제유가 폭락과 포퓰리즘 정책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는 국가 재정의 95%를 원유 수출 대금에 의존해왔다. 2014년 중반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대에 거래되던 국제유가는 지난 몇 년간 40~50달러로 폭락했다. 그러자 원유를 판 대금을 무상복지에 퍼붓던 베네수엘라 경제가 무너져버렸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1999년부터 2013년 3월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14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무상교육, 무상의료, 저가주택 공급, 휘발유와 생필품 무료 분배 등 포퓰리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이른바 ‘볼리바르 혁명’을 통해 베네수엘라를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볼리바르 혁명이란 볼리바르가 주창한 빈곤으로부터 해방과 제국주의로부터 독립 및 남미 통합을 뜻한다. 하지만 차베스의 정책은 경제에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했다. 특히 국제유가 폭락으로 국가 재정이 고갈되면서 무상복지는커녕 식량 수입에 쓸 돈조차 부족해졌다. 그런데도 차베스 전 대통령은 쿠바 등 중남미의 반미(反美) 국가들과 연대하고자 석유를 무상으로 공급했다.     
     
    차베스의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도 포퓰리즘 정책을 그대로 유지했다. 마두로는 버스 운전기사 출신으로 대통령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62년 카라카스에서 태어난 그는 80년대 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하며 운수노조 지도자로도 활동했다. 92년 쿠데타 기도로 감옥에 갇혀 있던 차베스를 도와준 것을 인연으로 그는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했다. 대통령 보좌관, 국회의원, 국회의장, 외무장관, 부통령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2013년 4월 대선에서 차베스의 후광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임기는 2019년까지. 마두로는 경제난에도 무상복지 예산을 줄이지 않았고 경제난은 더욱 심화됐다. 게다가 치안 부재로 살인과 납치 사건 등 강력범죄가 수시로 발생했다. 이 때문에 2015년 12월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통합사회주의당은 야당연합인 국민연합회의에게 참패했다. 전체 167석 중 112석을 차지한 국민연합회의는 마두로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추진했다. 국민연합회의는 이를 위해 대통령 소환 국민투표를 추진하는 등 마두로 퇴진 운동을 벌여왔다.



    그러자 마두로는 권력을 유지하고자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3월 자신이 임명한 대법관들로 구성된 대법원에 국회의 입법권을 뺏는 판결을 내리도록 했다. 즉 국회의 입법권을 별도로 지정한 기관이나 대법원 산하 헌법위원회가 행사하도록 한 것. 이는 야권이 장악한 의회를 무력화하려는 조치였다. 야권은 대법원 판결이 3권 분립 원칙을 무시한 ‘쿠데타’라며 거리 투쟁에 나섰다. 상당수 국민이 이에 동참했고 국제사회마저 강력하게 비판하자 대법원은 4월 판결을 번복했다.

    그 대신 마두로는 5월 제헌의회를 통한 개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야권은 물론 많은 시민단체가 권력 연장 책략이라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마두로가 시위를 막으려고 군과 경찰을 동원하면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까지 마두로 퇴진 시위를 벌이다 숨진 민간인이 최소 125명에 달한다. 결국 제헌의회는 8월 4일 선거를 통해 선출된 545명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했다. 의원은 대부분 마두로를 적극 지지하는 인사들이다. 마두로의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64)와 아들 니콜라스 마두로 게라(27)도 의원에 당선된 데다 제헌의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조작됐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권력 유지에 물불 안 가려

    제헌의회는 개헌은 물론, 의회와 정부기관을 해산하거나 관료를 해임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제헌의회는 첫 활동으로 마두로를 비판해온 루이사 오르테가 검찰총장부터 해임했다. 제헌의회는 또 마두로의 영구 집권을 골자로 하는 개헌을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유럽연합, 중남미 국가들이 제헌의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 금융기관 내 마두로의 모든 자산을 동결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이 참여하는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은 베네수엘라의 회원국 자격정지를 결정했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석유 수입 금지까지 단행하면 베네수엘라의 디폴트 위험은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베네수엘라 정부와 국영석유업체인 PDVSA는 올 연말까지 50억 달러(약 5조6700억 원)의 부채 원리금을 상환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의 외환보유고는 100억 달러 정도. 남미 최악의 독재자라는 마두로는 군부를 등에 업고 독재를 강화하고 있지만, 그의 앞날은 뜻대로 전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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