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1

2017.08.16

특집 | 선생은 많고 학생은 없다

“초등교사는 성골, 우리는 육두품인가요”

고착화된 ‘중등교원 임용절벽’에 한숨 쉬는 사범대생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8-14 13: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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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에서 올해 중등교사를 가장 많이 뽑는 과목이 뭔지 아세요? 보건이에요. 보건은 28명, 전문상담은 26명을 선발하는데 국·영·수에선 국어교사 1명 뽑는 게 전부죠. 영어와 수학은 아예 채용 인원이 0명이고요. 내가 준비하는 과목에 정원이 있을지조차 모르는 채로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은 이 무렵이면 피가 바짝바짝 말라요.”

    중등교사 임용시험 준비생의 얘기다. 8월 초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2018학년도 공립교사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시험 사전 예고’를 발표했을 때 ‘충격과 공포’에 빠진 건 교대생만이 아니다. 중고교교사를 꿈꾸며 각지에서 공부 중인 사범대 졸업(예정)자도 ‘임용절벽’에 고개를 떨궈야 했다.



    사범대생은 ‘백수’여도 되나요?

    전국에서 4066명을 선발한 2017학년도 중등교사 임용시험 지원자는 4만3648명에 달했다. 평균 경쟁률이 10.73 대 1이었고, 모집인원이 적은 일부 과목에선 수십 명이 한 자리를 놓고 다투는 상황도 빚어졌다. 그런데 2018학년도에는 이보다 더한 경쟁이 벌어질 것으로 예고됐다. 각 시·도교육청 발표를 집계한 결과 교과교사 선발 인원이 3033명으로 전년(3525명)보다 492명 줄어든 것이다. 선발 인원 감소폭이 공립 초등교사(2228명)보다 적긴 하지만, 2017학년도 경쟁률을 감안하면 중등교사 임용시험 준비생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오히려 큰 상황이다.

    지난 2년간 전국 초등교사 임용 경쟁률은 1.19 대 1에 그쳤다. 모집인원보다 지원자 수가 적은 지역도 있었다. 교대 졸업생이 ‘눈높이’만 낮추면 큰 어려움 없이 교직에 진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중등 분야는 상황이 다르다. 중등교사 임용시험 경쟁률은 2014학년도에 전국 평균 7.72 대 1을 기록한 이래 4년 연속 증가세다(표 참조). 직접적 원인은 채용 인원 감소이고, 그 배경에는 만성적인 ‘저출산’ 문제가 있다. 한 중등교사 임용시험 준비생은 “중등교사 임용시험은 국어, 영어, 수학 등 사범대 정원이 많은 과목의 응시자가 가장 많다. 문제는 이들 과목이 교사 임용 적체 현상도 가장 심하다는 점이다. 교사 모집인원이 매년 줄고 경쟁률은 치솟는다. 요즘 같아서는 교사 되겠다고 사범대에 진학한 게 잘못이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국어 70명, 영어 45명, 수학 55명의 중등교사 선발을 예고했던 서울시만 해도 올해 각 과목 채용 예정 인원을 각각 52명, 34명, 52명으로 줄였다. 대전은 국어 3명, 영어와 수학 각 2명을 선발하는 게 전부고, 울산은 아예 국·영·수 교사를 1명도 뽑지 않을 예정이다. 중등교사 임용시험 준비생의 온라인 모임인 ‘전국 중등 예비교사들의 외침’은 8월 8일 이에 대한 성명을 내고 ‘올해 (전국적으로) 국어, 영어, 수학 과목 선발 인원은 672명인데 지난해 수준으로 지원자(2만334명)가 몰린다면 임용률이 3.3%에 불과할 것’이라며 교육당국의 관심을 촉구했다.

    다른 과목이라고 상황이 나은 건 아니다. 지난해 전국적으로 교사 32명을 선발했던 한문과목의 경우 올해 선발 예정 인원이 14명으로 줄었다. 서울(3명)을 제외하면 경기, 인천, 대전, 세종 등 지원자가 선호하는 수도권지역 어디에서도 한문교사를 뽑지 않을 예정이다. 임용시험 준비생 사이에서는 ‘그래도 올해 전국 선발 인원이 0명인 독일어, 프랑스어에 비하면 한문교사 준비생은 상황이 나은 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교대생 ‘임용절벽’에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자, 중등교사 임용시험 준비생들도 ‘더는 참을 수 없다’고 나서는 분위기다. 8월 12일 서울에서 대규모 항의 시위를 예고하는 등 집단행동에 돌입할 태세다.

    특히 임용시험 준비생들은 정부가 보건·영양·사서·상담 등 비교과 분야 교사 수를 계속 늘리면서 교과교사 선발 인원은 줄이는 데 불만이 크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8학년도 비교과 중등교사 선발 인원은 1935명으로 전년(494명)에 비해 1451명 늘었다.

    한 임용시험 준비생은 “인사 적체 문제가 심각하다 해도, 교사가 되려고 오랫동안 준비해온 교과목 임용시험 지원자에게도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적절히 배분해줘야 하지 않나”라며 “지금은 교육 예산이 한쪽으로만 쏠리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또 그는 “교대생이 백수가 되면 큰일 나고, 사범대생은 괜찮은 게 아니다. 중등 교과교사 임용절벽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장기적 교원 수급 대책 마련해야

    현재 우리나라의 중등교원 양성기관은 전국 46개 사범대를 비롯해 △일반대 교육학과 △일반대 교직 과정 △교육대학원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곳에서 교원자격증을 취득하는 ‘예비 교사’ 수가 연간 2만 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해 공립학교 교사 임용 인원은 턱없이 적은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상당수 예비 교사가 임용시험을 포기한 채 ‘기간제교사’ 등으로 교단에 서고, 이들의 존재가 교육현장에 ‘잠재적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대한 중등교사 지원자의 불만이 높아지자 교육계에서는 임용 인원이 확정 발표되는 10월 안에 중등교사 선발 인원이 다소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중등 분야에도 임용시험에 합격한 뒤 발령을 받지 못한 교사가 453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교사 수를 늘리는 것이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이에 대해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장기적인 교육환경 전망에 따라 교원 수급 계획을 세우고, 그에 맞춰 교대·사대 체계를 개편하는 것”이라며 “특히 중등교원 임용 분야의 경우 교원자격증 발급기관을 줄이는 등 예비 교사 공급 자체를 줄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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