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협은 북한에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다만 고립을 가져다줄 것이다. (중략) 도발행동을 벌인다면 추가적으로 압력을 가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중략)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영향력 있는 추가 제재조치가 이뤄질 것이다.”(방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월 25일 공동기자회견에서 한 말)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중략) 북한이 반대하는 ‘제재의 고깔’은 유엔 차원의 강화된 제재는 물론 개별 회원국 차원의 광범위한 제재를 촉발할 것이고, 이는 북한에게 견딜 수 없는 무게의 철모가 될 것이다.”(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5월 7일 미국 뉴욕 국제평화연구소(IPI) 초청 연설에서 한 말)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가 속속 확인되면서 한미 양국의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은 추가적인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의 고통을 가중하겠다는 것.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한 이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무기금수와 경제제재를 담은 대북 제재결의 1718, 1874, 2087, 2094호를 내놓으며 평양을 압박해왔다. 4차 핵실험이 이뤄질 경우 한미 두 나라는 이번에도 유엔을 통해 새로운 추가 제재결의안을 만드는 방식으로 대응하리라는 게 양국 정부 당국자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경제자원 도시지역으로 집중
문제는 그간 외부 압박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여온 평양의 행동패턴이다. 안보리 제재결의가 나올 때마다 관련국 당국자들은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수위”라고 자평해왔지만, 결의안이 실제로 북한의 행동을 바꾸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음이 명확하기 때문. 이렇게 해서 피할 수 없는 질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왜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까. 사상 유례없는 제재에도 평양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분석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이용석 미국 윌리엄스대 교수가 작성한 ‘경제제재에 맞서기 : 대북 경제제재의 불균등한 지리적 영향(Countering Sanctions: The Unequal Geographic Impact of Economic Sanctions in North Korea)’이라는 제목의 논문. 4월 말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북한 관련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이 연구는 야간 위성사진에 찍힌 불빛 개수를 연도별로 추적해 북한의 지역별 경제활동량을 추정한 결과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9개 인공위성이 지구촌 전역을 날마다 촬영한 사진을 연 단위로 합성한다. 이렇게 집계되는 불빛 총량의 증감은 해당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변화 추이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게 서구 전문가들의 연구결과. 따라서 이는 경제 관련 통계가 사실상 전무한 북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인 셈이다.
시간 순으로 살펴보면, 1992년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등락을 반복하는 가운데서도 점진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북한의 불빛 총량은 대량기근이 정점에 이르렀던 97년 크게 하락했다가 2000년대 중반까지 그 숫자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2006년 핵실험 이후 주변국과의 경제교류가 타격을 입자 2008~2009년에 이르러 북한의 불빛 개수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제재로 북한의 경제 사정이 악화된 것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신동아’ 2011년 4월호 ‘MB정부 이후 불빛 26% 급감…1992년 이래 최악’ 기사 참조).
이용석 교수의 연구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지역별로 쪼개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1992년부터 2010년 사이 북한 전역을 가로세로 1km 단위로 쪼개 불빛 개수를 확인한 뒤 인구 데이터를 적용해 통계를 추출해보니, 도시와 내륙지방의 1인당 불빛 개수 증감 추이에 큰 차이가 나타난다는 게 그 골자다. 제재가 본격화된 후 내륙지방에서는 1인당 불빛 개수가 0.45% 감소했지만 도시지역에서는 오히려 0.29% 증가했다는 것. 1인당 GDP로 환산하면 내륙지방은 0.09% 감소, 도시지역은 0.06% 증가했다는 게 논문의 핵심주장이다.
도시와 내륙의 1인당 불빛 개수 차이는 1990년대에는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였고 2000년대 초반에는 큰 변동이 없었지만, 1차 핵실험으로 대북제재가 본격화한 2007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함흥, 원산, 신의주 등 다른 도시보다 평양의 증가세가 한층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지방 대도시와 내륙지역의 1인당 불빛개수 격차는 1.1%에 불과하지만 평양과 변방지역의 격차는 3.3%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원인으로 제재에 대한 북한 권력엘리트의 대응방식을 꼽는다. 에너지 같은 경제자원을 도시지역으로 집중하는 식으로 경제제재의 부정적 영향을 차단해왔다는 것. 이 때문에 제재의 주된 타깃이라 할 수 있는 평양 권력엘리트의 삶의 질은 오히려 이전보다 개선됐고, 내륙지역 주민들의 고통만 증가했다는 결론이다.
중국은 北 지하자원 헐값에 사들여
대북제재가 북한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다고 이 교수는 주장한다. 핵개발 중단 여부를 결정할 권력엘리트와 주변 인물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 앞으로도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조치가 의도한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피폐할 대로 피폐한 내륙 주민의 삶만 더욱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논문에서 눈에 띄는 또 한 대목은 같은 내륙이라도 중국과 접경지역에서는 오히려 경제활동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제재 이후 한국, 일본, 유럽 등과의 경제교류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북한의 대(對)중 교역이 큰 폭으로 늘어났음은 잘 알려진 사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한 제재가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없으리라는 지적 역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과연 중국은 정치적 이유만으로 대북제재에 동참을 꺼리는 것일까. 북한과 중국의 교역규모를 꼼꼼히 살펴보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한국 정부의 5·24조치 이후 북한의 대중 수출은 2009년에 비해 월평균 1억2687만 달러 증가했다. 문제는 그중 대부분이 무연탄과 철광석이라는 두 가지 품목에 의해서만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경제제재로 부족해진 외화 수입을 오로지 지하자원을 중국에 내다파는 방식으로 만회해왔다는 뜻이다.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이렇듯 ‘독점 소비자’에게 팔다 보니 가격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두 품목의 수출단가는 2011년 중·후반을 기점으로 뚜렷한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해 2013년 말에는 무연탄의 경우 20% 이상, 철광석은 10% 떨어졌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그 속도 또한 중국이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는 무연탄, 철광석 수입단가 하락세보다 한결 가파르다는 것. 쉽게 말해 대북제재에서 비껴 서 있는 중국이 ‘유일한 소비자’ 지위를 이용해 헐값에 북한 지하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뒤집어보면 이는 중국이 대북제재에 단호하게 임하지 않는 또 다른 속내가 무엇인지 가늠하게 해준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지하자원 수요 역시 빠르게 증가해온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유일한 수출창구’라는 현재 상황이 오히려 즐길 만하다는 것. 동북지역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지방정부나 개별 기업으로서는 북한 지하자원을 값싸게 독점하며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구조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경제적 시각으로 보면 중국이야말로 대북제재의 최대 수혜자인 셈이다. 그간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에는 중국도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피력했지만, 이는 앞으로도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금수조치 곳곳에 빠져나갈 구멍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조치가 최소한 대량살상무기 추가 개발과 수출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됐을까. 3월 발간된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패널의 보고서는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으나 그 속도는 늦췄다”고 자평했지만,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5월 초 공개한 보고서는 비판적인 결론을 내린다. 유엔의 거래금지조치 대상이 대부분 북한 국적 회사에만 집중돼 홍콩 등에 설립된 위장회사를 활용한 거래에는 효과가 없고, 중간고리 구실을 하는 운송회사를 제외하는 바람에 실효성이 퇴색했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금수조치에는 곳곳에 ‘빠져나갈 구멍(loophole)’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전직 안보부처 고위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이미 1차 핵실험 직후부터 정부 안에서도 경제제재가 북한의 핵개발을 중단시키거나 체제 붕괴 수준의 위력을 갖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고 회고한다. 지금까지 시행됐거나 거론된 대부분의 조치는 이미 부시 행정부 시절 기획된 것이지만, 단번에 최대치를 가동하는 대신 점차 수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해오면서 그 효과가 한층 반감됐다는 얘기다.
1차 북핵 위기 발발 이후 한국과 미국은 매번 ‘강력한 처벌’을 공언해왔지만, 그사이 북한 체제는 지방을 희생해 평양만 살아남는 방식으로 적응하거나 지하자원을 헐값에 내다파는 우회로를 만들어냈고, 구멍 뚫린 대북제재는 그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데 그치고 말았다. 4차 핵실험을 코앞에 둔 지금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윤병세 장관의 으름장이 실패한 북핵 외교 20여 년의 쓸쓸한 자기위안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유다. 손에 쥔 카드가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이다.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전에 경험할 수 없었던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중략) 북한이 반대하는 ‘제재의 고깔’은 유엔 차원의 강화된 제재는 물론 개별 회원국 차원의 광범위한 제재를 촉발할 것이고, 이는 북한에게 견딜 수 없는 무게의 철모가 될 것이다.”(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5월 7일 미국 뉴욕 국제평화연구소(IPI) 초청 연설에서 한 말)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가 속속 확인되면서 한미 양국의 대응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은 추가적인 경제제재를 통해 북한의 고통을 가중하겠다는 것.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한 이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무기금수와 경제제재를 담은 대북 제재결의 1718, 1874, 2087, 2094호를 내놓으며 평양을 압박해왔다. 4차 핵실험이 이뤄질 경우 한미 두 나라는 이번에도 유엔을 통해 새로운 추가 제재결의안을 만드는 방식으로 대응하리라는 게 양국 정부 당국자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경제자원 도시지역으로 집중
문제는 그간 외부 압박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여온 평양의 행동패턴이다. 안보리 제재결의가 나올 때마다 관련국 당국자들은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수위”라고 자평해왔지만, 결의안이 실제로 북한의 행동을 바꾸는 데는 기여하지 못했음이 명확하기 때문. 이렇게 해서 피할 수 없는 질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왜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까. 사상 유례없는 제재에도 평양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눈여겨볼 만한 분석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이용석 미국 윌리엄스대 교수가 작성한 ‘경제제재에 맞서기 : 대북 경제제재의 불균등한 지리적 영향(Countering Sanctions: The Unequal Geographic Impact of Economic Sanctions in North Korea)’이라는 제목의 논문. 4월 말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가 북한 관련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공개한 이 연구는 야간 위성사진에 찍힌 불빛 개수를 연도별로 추적해 북한의 지역별 경제활동량을 추정한 결과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9개 인공위성이 지구촌 전역을 날마다 촬영한 사진을 연 단위로 합성한다. 이렇게 집계되는 불빛 총량의 증감은 해당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변화 추이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게 서구 전문가들의 연구결과. 따라서 이는 경제 관련 통계가 사실상 전무한 북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인 셈이다.
시간 순으로 살펴보면, 1992년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등락을 반복하는 가운데서도 점진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북한의 불빛 총량은 대량기근이 정점에 이르렀던 97년 크게 하락했다가 2000년대 중반까지 그 숫자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2006년 핵실험 이후 주변국과의 경제교류가 타격을 입자 2008~2009년에 이르러 북한의 불빛 개수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경제제재로 북한의 경제 사정이 악화된 것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신동아’ 2011년 4월호 ‘MB정부 이후 불빛 26% 급감…1992년 이래 최악’ 기사 참조).
이용석 교수의 연구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 지역별로 쪼개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 1992년부터 2010년 사이 북한 전역을 가로세로 1km 단위로 쪼개 불빛 개수를 확인한 뒤 인구 데이터를 적용해 통계를 추출해보니, 도시와 내륙지방의 1인당 불빛 개수 증감 추이에 큰 차이가 나타난다는 게 그 골자다. 제재가 본격화된 후 내륙지방에서는 1인당 불빛 개수가 0.45% 감소했지만 도시지역에서는 오히려 0.29% 증가했다는 것. 1인당 GDP로 환산하면 내륙지방은 0.09% 감소, 도시지역은 0.06% 증가했다는 게 논문의 핵심주장이다.
도시와 내륙의 1인당 불빛 개수 차이는 1990년대에는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였고 2000년대 초반에는 큰 변동이 없었지만, 1차 핵실험으로 대북제재가 본격화한 2007년 이후 급격히 증가했다.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함흥, 원산, 신의주 등 다른 도시보다 평양의 증가세가 한층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지방 대도시와 내륙지역의 1인당 불빛개수 격차는 1.1%에 불과하지만 평양과 변방지역의 격차는 3.3%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원인으로 제재에 대한 북한 권력엘리트의 대응방식을 꼽는다. 에너지 같은 경제자원을 도시지역으로 집중하는 식으로 경제제재의 부정적 영향을 차단해왔다는 것. 이 때문에 제재의 주된 타깃이라 할 수 있는 평양 권력엘리트의 삶의 질은 오히려 이전보다 개선됐고, 내륙지역 주민들의 고통만 증가했다는 결론이다.
중국은 北 지하자원 헐값에 사들여
대북제재가 북한의 행동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여기 있다고 이 교수는 주장한다. 핵개발 중단 여부를 결정할 권력엘리트와 주변 인물들은 고통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 앞으로도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조치가 의도한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피폐할 대로 피폐한 내륙 주민의 삶만 더욱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논문에서 눈에 띄는 또 한 대목은 같은 내륙이라도 중국과 접경지역에서는 오히려 경제활동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제재 이후 한국, 일본, 유럽 등과의 경제교류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북한의 대(對)중 교역이 큰 폭으로 늘어났음은 잘 알려진 사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는 한 제재가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없으리라는 지적 역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과연 중국은 정치적 이유만으로 대북제재에 동참을 꺼리는 것일까. 북한과 중국의 교역규모를 꼼꼼히 살펴보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한국 정부의 5·24조치 이후 북한의 대중 수출은 2009년에 비해 월평균 1억2687만 달러 증가했다. 문제는 그중 대부분이 무연탄과 철광석이라는 두 가지 품목에 의해서만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경제제재로 부족해진 외화 수입을 오로지 지하자원을 중국에 내다파는 방식으로 만회해왔다는 뜻이다.
더욱 눈여겨볼 대목은 이렇듯 ‘독점 소비자’에게 팔다 보니 가격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두 품목의 수출단가는 2011년 중·후반을 기점으로 뚜렷한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해 2013년 말에는 무연탄의 경우 20% 이상, 철광석은 10% 떨어졌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분석이다. 그 속도 또한 중국이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는 무연탄, 철광석 수입단가 하락세보다 한결 가파르다는 것. 쉽게 말해 대북제재에서 비껴 서 있는 중국이 ‘유일한 소비자’ 지위를 이용해 헐값에 북한 지하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뒤집어보면 이는 중국이 대북제재에 단호하게 임하지 않는 또 다른 속내가 무엇인지 가늠하게 해준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지하자원 수요 역시 빠르게 증가해온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유일한 수출창구’라는 현재 상황이 오히려 즐길 만하다는 것. 동북지역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지방정부나 개별 기업으로서는 북한 지하자원을 값싸게 독점하며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구조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경제적 시각으로 보면 중국이야말로 대북제재의 최대 수혜자인 셈이다. 그간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에는 중국도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피력했지만, 이는 앞으로도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금수조치 곳곳에 빠져나갈 구멍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조치가 최소한 대량살상무기 추가 개발과 수출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됐을까. 3월 발간된 유엔 대북제재 전문가패널의 보고서는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으나 그 속도는 늦췄다”고 자평했지만,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5월 초 공개한 보고서는 비판적인 결론을 내린다. 유엔의 거래금지조치 대상이 대부분 북한 국적 회사에만 집중돼 홍콩 등에 설립된 위장회사를 활용한 거래에는 효과가 없고, 중간고리 구실을 하는 운송회사를 제외하는 바람에 실효성이 퇴색했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금수조치에는 곳곳에 ‘빠져나갈 구멍(loophole)’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전직 안보부처 고위관계자는 “솔직히 말해 이미 1차 핵실험 직후부터 정부 안에서도 경제제재가 북한의 핵개발을 중단시키거나 체제 붕괴 수준의 위력을 갖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고 회고한다. 지금까지 시행됐거나 거론된 대부분의 조치는 이미 부시 행정부 시절 기획된 것이지만, 단번에 최대치를 가동하는 대신 점차 수위를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해오면서 그 효과가 한층 반감됐다는 얘기다.
1차 북핵 위기 발발 이후 한국과 미국은 매번 ‘강력한 처벌’을 공언해왔지만, 그사이 북한 체제는 지방을 희생해 평양만 살아남는 방식으로 적응하거나 지하자원을 헐값에 내다파는 우회로를 만들어냈고, 구멍 뚫린 대북제재는 그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데 그치고 말았다. 4차 핵실험을 코앞에 둔 지금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윤병세 장관의 으름장이 실패한 북핵 외교 20여 년의 쓸쓸한 자기위안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이유다. 손에 쥔 카드가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