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양건 감사원장(가운데)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에서 열린 이임식에 참석해 이임사를 하고 있다.
8월 26일 논란 끝에 양건 감사원장이 사임했다. 그는 “재임하는 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자못 비장할 뿐 아니라 날이 서 있다. 그래서 소문도 무성하다.
양 전 원장이 물러난 첫 번째 이유는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결론이 바뀐 것과 관련한 논란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김황식 전 원장 시절인 2011년 1차 감사 결과 발표 당시 감사원은 “특별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한 이후 1월 2차 감사에서는 보의 안정성과 수질 악화 문제를 지적했다. 3차 감사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4대강 사업은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고 결론 내렸다. 정권에 따른 결론 변경에 곧바로 ‘정치감사’ 논란이 일었다. 양 전 원장이 박근혜 정부에서도 살아남으려고 코드감사를 시도했다가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사퇴했다는 설이다.
朴 대통령과 청와대가 일차 책임
연이어 인사문제를 둘러싼 갈등 때문이라는 두 번째 설이 퍼졌다. 6월 김인철 전 감사위원이 사퇴한 뒤 청와대 측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캠프 정치쇄신특별위원이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분과 위원이던 장훈 중앙대 교수를 후임으로 추천했다. 이를 둘러싸고 감사원 내부에서는 물론, 청와대와 양 전 원장의 의견이 충돌한 결과 양 전 원장이 역부족을 느끼고 사퇴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결론을 바꾸는 과정에서 내부 논란이 벌어졌다는 세 번째 설까지 불거진 상태다. 양 전 원장은 특히 박근혜 정부 수립 이후 임명된 김영호 사무총장과 갈등이 심했다고 알려졌다. 더욱이 양 전 원장은 지난번 3차 감사 결과 발표 때 4대강 사업이 당시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설계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데 반대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울러 8월 말 공개할 4차 감사 결과와 관련해서도 양 전 원장과 김 총장 사이에 고성이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양 전 원장이 원칙과 소신을 지키려다 청와대와 감사원 내 친박(친박근혜)계에 밀려 사퇴했다는 것인데, 결국 양 전 원장이 이임사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도 결국 이 내용인 것이다.
하지만 2차 감사 결과와 관련해 양 전 원장이 반대했다는 얘기가 없는 것으로 미뤄볼 때 양 전 원장도 코드감사를 했다는 지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긴 어렵다. 더욱이 양 전 원장은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 결과 발표 시기를 2012년 9월에서 대통령선거(대선) 이후로 지연한 의혹도 받고 있다.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이것도 박근혜 대선후보를 배려한 조치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당시 국회 법사위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 문제를 집중 제기했지만 감사원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결과 발표를 대선 이후로 미뤘다.
어떤 설이 진실이든 현 시점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임기가 보장된 헌법 기관의 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그것도 억울해하면서 그만뒀다.’ 더욱이 사퇴와 관련해 여러 잡음까지 일고 있다. 이 정도면 일차적 책임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져야 한다. 사퇴시킬 요량이었더라도 최소한 뒷말이 나오지 않게 처리했어야 한다. 바람직하게는 보장된 임기를 채우도록 하면서 접점을 찾았어야 한다. 더 바람직하게는 완전히 독립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간섭하지 말았어야 한다.
청와대는 이렇게 항변했다. “새 정부에서는 양건 감사원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유임했는데, 자신의 결단으로 스스로 사퇴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새 정부 초기 권력기관장 인선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던 3월, 청와대가 양 전 원장을 유임한다고 발표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연이어 사무총장을 코드가 맞는 사람으로 임명했고, 감사위원에 친박 핵심 인물을 밀어 넣으려 했다. 이는 ‘당신의 임기를 보장해줄 테니 그 대신 우리 사람을 받아서 쓰라’고 한 셈이다. 결국 원장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사실상 ‘점령’ 시도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점령 전술이 거칠거나 미숙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로 가는 길
감사원법은 제2조에서 직무와 관련한 독립성을 강조한다. 또 소속 공무원의 임면, 조직, 예산 편성상 독립성도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법대로라면 비록 대통령이 임명은 하지만 간섭하지 못하는 자리가 바로 감사원장이다. 그러나 실제 관행은 그렇지 못했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전윤철 전 원장도 불협화음 속에서 물러났다. 왜 새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원장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 정부 동안 코드감사를 일삼았다고 보거나 현 정부 동안 코드감사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문민정부 이후 정권교체기에 임기를 보장받은 감사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 때 임명한 이종남 전 원장이 유일하다.
연이어 두 차례 정권교체기에 감사원장이 불협화음 속에서 사퇴하면서 일각에서는 개선론이, 다른 일각에서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개선론의 핵심은 차제에 감사원을 미국처럼 국회로 보내자는 것이다. 국회 소속이면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원장을 강제 또는 반강제로 하차시키기 어렵다. 이 문제는 헌법 개정 사항이기 때문에 차후 개헌 과정에서 해결할 일이다.
그전에는 독립적으로 기관 운영을 할 수 있는 원장을 임명하는 것이 국민적 관점에서 바람직하다. 감사원은 행정부 내 야당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편이지만 냉정하게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다. 입법부 곧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데 한계가 있는 우리나라 정치 시스템 하에서는 그래서 감사원의 존재감이 더 빛난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인식이다. 감사원이 정부 정책에 들러리나 서길 원한다면, 다시 말해 코드감사나 하는 기관이 되길 원한다면 기존의 점령 노선을 그대로 따르면 된다. 새 원장을 아예 친박 핵심 인물로 임명하고 감사위원까지 그 일색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계속 임명한다면 차기 감사원장은 다음 정부에서 또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불운한 처지에 놓일 것이 뻔하다.
반면 감사원을 건강한 상태, 곧 철저히 독립적인 기관으로 가져가길 원한다면 야당도 환영할 만한 인물로 감사원장을 임명해야 한다. 엄정 중립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감사위원에 코드가 맞는 인물을 배치하려는 시도도 접어야 한다. 감사원장이 독립적일 수 있다면, 그 감사원장 하에서 감사위원 선임도 독립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간단히 말해 감사위원 인사에서 청와대가 완전히 빠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감사원법이 규정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번 기회에 이런 관행을 전통으로 수립한다면 감사원의 중립성 논란은 더는 없을 것이다. 국회 이관 요구도 당연히 힘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감사원을 장악하려 들면 행정부는 더 부패할 테고, 차기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현 정부의 요직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는 악순환도 반복될 개연성이 높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를 지나면서 우리나라 부패지수는 더 높아졌다. 부패 때문에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박 대통령이 하반기 국정운영 기조로 자주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비정상의 정상화’다. 지난 정부 시절 쌓인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데도 감사원은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