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원은 HR 121(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군대의 압제 아래 고통을 감내한 분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촉구하는 역사적인 날을 만들 것입니다. (중략) 생존 할머니들의 증언은 위안부로서 감내한 공포와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우리 모두를 울게 만들었고 저에게도 충격을 안겼습니다. 존경하는 의장님, 오늘 우리 하원은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위안부 할머니가 겪은 비인간적 고통에 대해 명백하고 확실하게 사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바입니다.”(마이크 혼다 미국 하원의원)
2007년 7월 30일 ‘HR 121 통과 하원 본회의 기록 주요 의원 발언’(여성가족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자료 인용·www.hermuseum.go.kr)에 따르면 마이크 혼다(71)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은 일본계 3세인데도 2007년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주도하며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했다.
위안부 소녀상 방문 않을 것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지 5년이 흐른 8월 18일, 서울 홍은동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변하지 않은 현실에 응분의 책임을 느끼는 듯했다. 비영리 민간기구인 한국 GPF(Global Peace Festival)재단 초청으로 방한해 ‘통일 한반도의 미래비전과 세계평화구축 회의’에 참석한 그는 위안부 할머니 안식처인 ‘나눔의 집’(경기 광주)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혼다 의원에게 먼저 이명박 대통령의 위안부 발언에 대한 생각부터 물었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행위다.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혼다 의원은 “그것에 대한 견해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대통령 발언에 대해 한국 내에 여론이 형성됐을 것”이라는 선문답만 남겼다.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주역이라면 무조건 한국 편에서 위안부 사안을 바라볼 것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의 중립적 태도가 이 사안을 해결할 열쇠인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그에게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위안부 소녀상을 찾아갈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째를 맞은 지난해 12월, 20여 년 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거리 투쟁을 이어온 할머니들의 인권 회복을 목적으로 위안부 소녀상을 만들었다.
혼다 의원은 다시금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안부 소녀상의 존재조차 모른다는 그에게 “비정부기구(NGO)가 주도적으로 만든 기념비를 찾아가 위안부 할머니를 추모하는 한국인이 많다”고 설명했는데도 “그러한 행위는 좋지만 나는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나눔의 집에 가서 위안부를 직접 만날 것”이라면서 “한국 사람은 위안부 소녀상을 보고 기념 촬영만 하지 말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는 한국에 올 때마다 나눔의 집을 방문한다. 그곳은 수도사들이 세웠다. 한국인은 위안부를 위해 무엇을 하는가. 위안부가 죽으면 누가 기억해주고 누가 묻어주는가. 삶의 막바지를 살아가는 위안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위안부를 만날 때마다 이러한 점이 궁금했다.”
혼다 의원이 지적한 대로 위안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처우는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8월 20일 그가 방문한 나눔의 집은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단법인으로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63명 중 8명이 거주하며, 정보기술(IT) 그룹인 주식회사 제윤 후원으로 운영한다. 학계에서는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조선 여성이 8만에서 20만 명이라고 알려졌지만, 1990년 이후 한국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사람은 234명. 한국 정부는 정대협이 모은 국민 성금에 예산을 추가해 1998년 5월부터 피해자에게 생활안정지원금으로 일시금 4300만 원을 지급했을 뿐이다(‘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젠더’, 스즈키 유코 지음, 이성순·한예린 옮김, 나남 참고)
유엔 결의안 확대는 한국인 몫
그러면서 그는 2007년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일본 정부의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서라도 “한국인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캐나다, 호주, 브라질 등 9개국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데 이어 앞으로 유엔 결의안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유엔 결의안 확대는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이므로 나는 사안을 지켜보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미국 뉴저지 주에 위안부 기념비가 세워져 후대에 교육할 근거가 생겼다고 얘기하면서 “만일 (자신이 하원의원으로 있는) 캘리포니아 주 한국인이 위안부 기념비를 세울 것을 원한다면 적극 지원하겠다”며 교포사회에 과제를 안겨줬다.
“나는 2007년 위안부 결의안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배상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또 다른 이슈인 데다 배상에 앞서 사과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상자 기사 참조). 일본 정부의 사과가 필요한 이유는 그로 인해 ‘어머니, 친척, 여성, 여자 형제에게 폭력을 저지르지 마라’고 가르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르푸르, 보스니아, 동티모르 등에서는 전쟁 중에 많은 여성이 성적학대를 당한다. 우리는 후세에게 다시는 이러한 만행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2007년 7월 30일 ‘HR 121 통과 하원 본회의 기록 주요 의원 발언’(여성가족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자료 인용·www.hermuseum.go.kr)에 따르면 마이크 혼다(71)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은 일본계 3세인데도 2007년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주도하며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했다.
위안부 소녀상 방문 않을 것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지 5년이 흐른 8월 18일, 서울 홍은동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변하지 않은 현실에 응분의 책임을 느끼는 듯했다. 비영리 민간기구인 한국 GPF(Global Peace Festival)재단 초청으로 방한해 ‘통일 한반도의 미래비전과 세계평화구축 회의’에 참석한 그는 위안부 할머니 안식처인 ‘나눔의 집’(경기 광주) 방문을 앞두고 있었다.
혼다 의원에게 먼저 이명박 대통령의 위안부 발언에 대한 생각부터 물었다. 이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행위다.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혼다 의원은 “그것에 대한 견해가 없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대통령 발언에 대해 한국 내에 여론이 형성됐을 것”이라는 선문답만 남겼다.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킨 주역이라면 무조건 한국 편에서 위안부 사안을 바라볼 것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의 중립적 태도가 이 사안을 해결할 열쇠인지도 몰랐다.
이번에는 그에게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위안부 소녀상을 찾아갈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1000회째를 맞은 지난해 12월, 20여 년 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거리 투쟁을 이어온 할머니들의 인권 회복을 목적으로 위안부 소녀상을 만들었다.
혼다 의원은 다시금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안부 소녀상의 존재조차 모른다는 그에게 “비정부기구(NGO)가 주도적으로 만든 기념비를 찾아가 위안부 할머니를 추모하는 한국인이 많다”고 설명했는데도 “그러한 행위는 좋지만 나는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나눔의 집에 가서 위안부를 직접 만날 것”이라면서 “한국 사람은 위안부 소녀상을 보고 기념 촬영만 하지 말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이크 혼다 미국 하원의원은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것보다 살아 있는 위안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혼다 의원이 지적한 대로 위안부에 대한 한국 정부의 처우는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8월 20일 그가 방문한 나눔의 집은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단법인으로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63명 중 8명이 거주하며, 정보기술(IT) 그룹인 주식회사 제윤 후원으로 운영한다. 학계에서는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조선 여성이 8만에서 20만 명이라고 알려졌지만, 1990년 이후 한국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사람은 234명. 한국 정부는 정대협이 모은 국민 성금에 예산을 추가해 1998년 5월부터 피해자에게 생활안정지원금으로 일시금 4300만 원을 지급했을 뿐이다(‘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젠더’, 스즈키 유코 지음, 이성순·한예린 옮김, 나남 참고)
유엔 결의안 확대는 한국인 몫
그러면서 그는 2007년 미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한 이후 일본 정부의 변화를 불러오기 위해서라도 “한국인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캐나다, 호주, 브라질 등 9개국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데 이어 앞으로 유엔 결의안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유엔 결의안 확대는 한국인이 할 수 있는 일이므로 나는 사안을 지켜보겠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미국 뉴저지 주에 위안부 기념비가 세워져 후대에 교육할 근거가 생겼다고 얘기하면서 “만일 (자신이 하원의원으로 있는) 캘리포니아 주 한국인이 위안부 기념비를 세울 것을 원한다면 적극 지원하겠다”며 교포사회에 과제를 안겨줬다.
“나는 2007년 위안부 결의안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배상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또 다른 이슈인 데다 배상에 앞서 사과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상자 기사 참조). 일본 정부의 사과가 필요한 이유는 그로 인해 ‘어머니, 친척, 여성, 여자 형제에게 폭력을 저지르지 마라’고 가르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다르푸르, 보스니아, 동티모르 등에서는 전쟁 중에 많은 여성이 성적학대를 당한다. 우리는 후세에게 다시는 이러한 만행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