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듣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벽화를 직접 본 것은 94년. 마침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천장화)와 ‘최후의 만찬’(벽화) 복원작업이 끝난 직후였다(나머지 그림들의 복원은 99년에 끝났다). 400년 동안 여러 차례 덧칠을 한 데다 세월의 더께로 얼룩졌던 것을 닦아내니 완전히 다른 그림이 돼 있었다. 혹자는 먼지가 만든 ‘세월의 무게감’이 더 좋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폴란드 출신 작가 필리프 반덴베르크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제작 당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되찾은 시스티나 천장화에 ‘미켈란젤로의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가정 아래 한 편의 추리소설을 썼다.
천장화를 복원하던 중 예언자 요엘이 들고 있는 두루마리 위에서 A자가 발견된다. 요엘 바로 옆 에리트레아의 독서대에서는 I-F-A라는 일련의 글자가 나타난다. 이듬해 예언자 에제키엘을 복원하자 L-U가, 페르시아 예언자에서는 B, 그리고 예레미야에서는 A가 드러났다. A-I-F-A-L-U-B-A. 400년 전에 죽은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프레스코화에 도대체 무엇을 써놓았단 말인가.
이를 추적하던 옐리넥 추기경은 미켈란젤로와 교황청의 해묵은 원한을 떠올린다. 4년 동안 천장만 보며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는 고개가 저절로 치켜지고, 땅을 걷기 힘든 상태가 됐다. 그런데도 교황은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프레스코화에 기독교 교리를 뿌리째 흔들어놓을 저주를 기록해두었다. 옐리넥 추기경은 바티칸 교황청 꼭대기층에 자리한 역대 교황들의 비밀문서 저장고를 뒤진다. 끝도 없는 미로 안에 삼켜진 서류와 양피지들 사이에서 수백년 전 미켈란젤로가 행한 복수극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는데….
추리소설의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것처럼 싱거운 일도 없다. 줄거리는 이쯤 해두고,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을 살펴보자. 저자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를 중심으로 기독교 신학과 르네상스 미술사를 강의한다. 소설에 ‘강의’라는 표현이 적합치 않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 도록을 들고 시스티나 예배당을 찾는 것보다 이 책을 들고 천장화를 감상하는 게 더 지적 만족감을 줄 것이다.
그렇다고 반덴베르크가 제공한 지적 유희에 넋놓을 필요는 없다. 김진명씨의 ‘코리아닷컴’도 그 점에서는 ‘미켈란젤로의 복수’ 못지않은 즐거움을 준다. 이 소설은 인터넷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세력을 파헤치는 추리소설 형식을 띠지만 그 내용을 받쳐주는 것은 인류문명사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다. ‘코리아닷컴’에서 열쇠는 숫자.
컴퓨터 천재 인서는 ‘13의 비밀’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왜 매미는 17년이나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끌린다. 그 뒤 그 사이트를 개설한 수학자 나딘 박사를 만나고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담고 있는 ‘마지막 숫자’에 대해 듣는다. 한편 빌 게이츠와 손정의(등장인물들은 실명이거나 실제 모델을 염두에 두고 쓰였다)를 비롯해 재계 거물들이 배후인물 전시안의 지시에 따라 세계 모든 인터넷 주식을 확보하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그들의 존재를 캐던 ‘뉴욕타임스’의 핼로란 기자는 탄트라 경전과 사라진 대륙 레무리아에 대해 듣게 된다.
‘요한묵시록’에 나타난 숫자 144에 주목하는 나딘 박사는 인서와 함께 고구려 ‘개물교화경’과 환웅시대의 ‘신비지사’에도 144라는 숫자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하고 오시리아 숫자와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드디어 ‘격암유록’에 기록된 ‘천부경’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
“허구의 상상력만으로 소설을 쓰는 것을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한다”고 말하는 김진명씨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사실일지라도 이면에는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 작가는 그것을 읽어내고 해석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작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만큼 일종의 소명의식을 갖고 이 작품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두 작가가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두 편의 추리소설. 어딘가 있을 논리적 허점을 찾아본다면 너무 고약한 독서법일까.
미켈란젤로의 복수/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안인희 옮김/ 364쪽/ 8000원
코리아닷컴/ 김진명 지음/ 해냄 펴냄/ 전 2권 각 296쪽/ 각 7500원
폴란드 출신 작가 필리프 반덴베르크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제작 당시의 원형을 고스란히 되찾은 시스티나 천장화에 ‘미켈란젤로의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가정 아래 한 편의 추리소설을 썼다.
천장화를 복원하던 중 예언자 요엘이 들고 있는 두루마리 위에서 A자가 발견된다. 요엘 바로 옆 에리트레아의 독서대에서는 I-F-A라는 일련의 글자가 나타난다. 이듬해 예언자 에제키엘을 복원하자 L-U가, 페르시아 예언자에서는 B, 그리고 예레미야에서는 A가 드러났다. A-I-F-A-L-U-B-A. 400년 전에 죽은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프레스코화에 도대체 무엇을 써놓았단 말인가.
이를 추적하던 옐리넥 추기경은 미켈란젤로와 교황청의 해묵은 원한을 떠올린다. 4년 동안 천장만 보며 그림을 그린 미켈란젤로는 고개가 저절로 치켜지고, 땅을 걷기 힘든 상태가 됐다. 그런데도 교황은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고, 이에 분노한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프레스코화에 기독교 교리를 뿌리째 흔들어놓을 저주를 기록해두었다. 옐리넥 추기경은 바티칸 교황청 꼭대기층에 자리한 역대 교황들의 비밀문서 저장고를 뒤진다. 끝도 없는 미로 안에 삼켜진 서류와 양피지들 사이에서 수백년 전 미켈란젤로가 행한 복수극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나는데….
추리소설의 결말을 미리 알려주는 것처럼 싱거운 일도 없다. 줄거리는 이쯤 해두고,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을 살펴보자. 저자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화를 중심으로 기독교 신학과 르네상스 미술사를 강의한다. 소설에 ‘강의’라는 표현이 적합치 않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 도록을 들고 시스티나 예배당을 찾는 것보다 이 책을 들고 천장화를 감상하는 게 더 지적 만족감을 줄 것이다.
그렇다고 반덴베르크가 제공한 지적 유희에 넋놓을 필요는 없다. 김진명씨의 ‘코리아닷컴’도 그 점에서는 ‘미켈란젤로의 복수’ 못지않은 즐거움을 준다. 이 소설은 인터넷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세력을 파헤치는 추리소설 형식을 띠지만 그 내용을 받쳐주는 것은 인류문명사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다. ‘코리아닷컴’에서 열쇠는 숫자.
컴퓨터 천재 인서는 ‘13의 비밀’이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왜 매미는 17년이나 땅속에서 애벌레로 지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끌린다. 그 뒤 그 사이트를 개설한 수학자 나딘 박사를 만나고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담고 있는 ‘마지막 숫자’에 대해 듣는다. 한편 빌 게이츠와 손정의(등장인물들은 실명이거나 실제 모델을 염두에 두고 쓰였다)를 비롯해 재계 거물들이 배후인물 전시안의 지시에 따라 세계 모든 인터넷 주식을 확보하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그들의 존재를 캐던 ‘뉴욕타임스’의 핼로란 기자는 탄트라 경전과 사라진 대륙 레무리아에 대해 듣게 된다.
‘요한묵시록’에 나타난 숫자 144에 주목하는 나딘 박사는 인서와 함께 고구려 ‘개물교화경’과 환웅시대의 ‘신비지사’에도 144라는 숫자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하고 오시리아 숫자와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그리고 드디어 ‘격암유록’에 기록된 ‘천부경’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
“허구의 상상력만으로 소설을 쓰는 것을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한다”고 말하는 김진명씨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사실일지라도 이면에는 다른 의도가 숨어 있다. 작가는 그것을 읽어내고 해석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작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만큼 일종의 소명의식을 갖고 이 작품을 썼음을 알 수 있다.
두 작가가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두 편의 추리소설. 어딘가 있을 논리적 허점을 찾아본다면 너무 고약한 독서법일까.
미켈란젤로의 복수/ 필리프 반덴베르크 지음/ 안인희 옮김/ 364쪽/ 8000원
코리아닷컴/ 김진명 지음/ 해냄 펴냄/ 전 2권 각 296쪽/ 각 7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