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 첫 해 한국 대중문화계를 달구는 화두는 다름아닌 ‘섹스 어필’이다. 모든 문화가 육체의 코드 아래 신음하고 있다. 도심의 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관의 스크린과 온라인의 모니터 안에서도, 온갖 지면의 선정적인 광고에서도, 하물며 무차별적인 대중을 관객으로 하는 텔레비전에서도 그렇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이미 보여주는 것이 들려주는 것을 압도해버린 대중음악이라고 어찌 예외가 될 수 있으랴. 여름 시즌에 돌입하자 작년의 영광을 이어가야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백지영과 이정현이 속살 드러내기 경쟁을 펼친다. 또 이들을 벤치마킹하려는 수많은 소녀그룹들이 어떻게 하면 성적 욕망으로 불타오르는 10대 혹은 20대와 사라져가는 젊음을 한탄하는 386 ‘오빠’들의 은근한 시선을 붙잡을 수 있을까 몸부림치고 있다.
제목조차 자극적인 ‘대쉬’(dash)를 앞세워 단독 선두에 나선 백지영. ‘대쉬’는 이번 시즌의 하이라이트다. 그는 고작 두번째 앨범에서 정상을 정복했고, 우리에게 익숙한 유로 디스코 리듬과 라틴아메리카의 관능적인 살사 리듬을 통해 육체성의 마력을 맘껏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초대 댄싱 퀸은 역시 80년대 중반 인순이의 백댄서 출신 김완선이었다. 물론 훨씬 전 60년대 후반 ‘미스 다이너마이트’라고 불렸던 트위스트의 여왕 이금희가 있었고, 70년대 초반엔 김추자가, 그리고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전반엔 이은하가 분전했지만, 약간의 백치미를 동반한 김완선은 컬러TV 시대에 걸맞은 시원한 관능의 쾌락을 한국 대중음악사에 선사했다.
김완선의 등장은 80년 음악사의 작은 분수령이다. 그는 이전 댄스 선각자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초라하고도 위태로운 보컬의 한계를 천성적으로 안고 있었지만 패션과 안무만으로도 뮤지션의 성채를 장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단숨에 증명시켰다.
86년의 데뷔작인 ‘오늘밤’과 이듬해의 후속작 ‘리듬속에 그 춤을’은 놀랍게도 70년대 한국 록의 전설적인 밴드인 산울림의 베이시스트 김창훈과 한국 록음악의 영원한 대부인 신중현으로부터 제공받은 곡이다. 일렉트릭 기타가 아닌 신시사이저로부터 흘러나오는 단조로운 8비트의 디스코 리듬 패턴은 힙합이 점령한(혹은 점령했다고 생각하는) 90년대 이후의 댄스홀과 TV공개 스튜디오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바로 그것이다.
김완선은 디스코를 기반으로 허슬과 람바다에 이르기까지 전율적인 육체의 라인을 본능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파괴력으로 무장돼 있었다. 이에 비하면 요즘의 어린 여성 댄스뮤지션 혹은 그룹은 마치 태엽을 감아 춤추는 인형처럼 보인다.
김완선은 컴백하라. 아니 이금희도 김추자도 이은하도 인순이도 다시 한번 영광의 두레박을 길어올렸으면 좋겠다. 80년대 50대의 나이로 기적처럼 컴백에 성공한 티나 터너의 전설을 이 땅에서도 목격하는 행운을 누릴 순 없을까.
그리하여 지하의 화려하고 은밀한 공간에서 타락해가는 장년과 중년과 초로의 신사들이 넥타이를 머리에 두르고 화끈하게 몸을 부딪치며 공개적으로 젊음을 되찾는 그런 풍경이 펼쳐질 때 우리의 댄스뮤직 문화도 더욱 풍요로워질 텐데….
사정이 이러할진대 이미 보여주는 것이 들려주는 것을 압도해버린 대중음악이라고 어찌 예외가 될 수 있으랴. 여름 시즌에 돌입하자 작년의 영광을 이어가야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백지영과 이정현이 속살 드러내기 경쟁을 펼친다. 또 이들을 벤치마킹하려는 수많은 소녀그룹들이 어떻게 하면 성적 욕망으로 불타오르는 10대 혹은 20대와 사라져가는 젊음을 한탄하는 386 ‘오빠’들의 은근한 시선을 붙잡을 수 있을까 몸부림치고 있다.
제목조차 자극적인 ‘대쉬’(dash)를 앞세워 단독 선두에 나선 백지영. ‘대쉬’는 이번 시즌의 하이라이트다. 그는 고작 두번째 앨범에서 정상을 정복했고, 우리에게 익숙한 유로 디스코 리듬과 라틴아메리카의 관능적인 살사 리듬을 통해 육체성의 마력을 맘껏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의 초대 댄싱 퀸은 역시 80년대 중반 인순이의 백댄서 출신 김완선이었다. 물론 훨씬 전 60년대 후반 ‘미스 다이너마이트’라고 불렸던 트위스트의 여왕 이금희가 있었고, 70년대 초반엔 김추자가, 그리고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전반엔 이은하가 분전했지만, 약간의 백치미를 동반한 김완선은 컬러TV 시대에 걸맞은 시원한 관능의 쾌락을 한국 대중음악사에 선사했다.
김완선의 등장은 80년 음악사의 작은 분수령이다. 그는 이전 댄스 선각자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초라하고도 위태로운 보컬의 한계를 천성적으로 안고 있었지만 패션과 안무만으로도 뮤지션의 성채를 장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단숨에 증명시켰다.
86년의 데뷔작인 ‘오늘밤’과 이듬해의 후속작 ‘리듬속에 그 춤을’은 놀랍게도 70년대 한국 록의 전설적인 밴드인 산울림의 베이시스트 김창훈과 한국 록음악의 영원한 대부인 신중현으로부터 제공받은 곡이다. 일렉트릭 기타가 아닌 신시사이저로부터 흘러나오는 단조로운 8비트의 디스코 리듬 패턴은 힙합이 점령한(혹은 점령했다고 생각하는) 90년대 이후의 댄스홀과 TV공개 스튜디오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바로 그것이다.
김완선은 디스코를 기반으로 허슬과 람바다에 이르기까지 전율적인 육체의 라인을 본능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파괴력으로 무장돼 있었다. 이에 비하면 요즘의 어린 여성 댄스뮤지션 혹은 그룹은 마치 태엽을 감아 춤추는 인형처럼 보인다.
김완선은 컴백하라. 아니 이금희도 김추자도 이은하도 인순이도 다시 한번 영광의 두레박을 길어올렸으면 좋겠다. 80년대 50대의 나이로 기적처럼 컴백에 성공한 티나 터너의 전설을 이 땅에서도 목격하는 행운을 누릴 순 없을까.
그리하여 지하의 화려하고 은밀한 공간에서 타락해가는 장년과 중년과 초로의 신사들이 넥타이를 머리에 두르고 화끈하게 몸을 부딪치며 공개적으로 젊음을 되찾는 그런 풍경이 펼쳐질 때 우리의 댄스뮤직 문화도 더욱 풍요로워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