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누룩으로 발효시킨 음식에는 소화효소가 풍부해요. 이 소화효소가 음식의 영양성분을 빠르게 분해해 몸에 효과적으로 흡수시켜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면역력도 높이죠. 발효되면서 생성된 유익균은 장을 건강하게 만들고요.”
일본에서 전수받은 쌀누룩 비법
쌀누룩 명인 이인자 씨. 쌀누룩은 쌀은 찐 지에밥에 누룩균을 배양한 뒤 발효시켜 만든다. [사진 제공 · 네오이마주]
쌀누룩에는 탄수화물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아밀라아제,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프로테아제, 지방을 분해하는 리파아제 등 3대 소화효소 외에 100여 종의 효소가 들어 있다. 이 효소들은 소화를 도울 뿐 아니라 영양분을 몸속으로 빠르게 전달해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피로 해소도 돕는다. 이렇게 흡수된 영양분은 장에 부담을 주지 않고 장내 환경을 건강하게 만든다. 면역세포의 70%가 집중된 최대 면역기관인 장이 건강하면 면역력도 덩달아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명인은 쌀누룩의 효능에 대해 “쌀누룩은 비타민 B1·B2·B3·B5·B6·B9(엽산), 비타민E, 미네랄,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내 유익균을 증가시킨다. 발효식품에 들어 있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가바(GABA)는 뇌를 진정시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 명인은 2019년 12월 ‘쌀누룩 발효조미료 및 발효장 부문’에서 한국 명인으로 지정됐다. 그해 10월에는 그동안의 업적과 실적을 바탕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장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이력만 보면 평생을 쌀누룩과 함께했을 것 같지만, 그는 쉰여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쌀누룩과 인연이 닿아 인생 2모작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강의하다 쉰여섯 살에 자연 장수식으로 알려진 ‘매크로바이오틱’ 요리를 배우고자 일본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 무렵 일본은 원전 사고 이후 한국 발효음식에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 김치와 된장, 고추장 등 한국 발효식품에 대해 강의했죠. 제 강의를 듣던 수강생의 소개로 일본 쌀누룩 발효 명장 마사토조 시노즈카 선생을 만나 쌀누룩 발효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누룩이란 쌀이나 보리, 콩 등 곡물에 열을 가한 뒤 누룩균을 배양해 번식시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누룩 하면 보통 전통 술의 재료쯤으로 여기지만 일본은 누룩으로 다양한 천연조미료를 만들어 음식에 활용하고 있다. 두 나라 누룩의 차이점은 우리나라는 곡물 전체에 자연균을 배양해 발효시키는 반면, 고지(Koji)로 불리는 일본 누룩은 쌀이나 보리, 현미, 콩 등 곡물 한 알 한 알에 누룩균만 번식시켜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통 방식으로 재래된장을 만들면 메주를 띄워 발효시킬 때 심한 냄새가 나는데, 이는 자연 속 각종 균이 배양되기 때문입니다. 일본식으로 만든 쌀누룩만 넣어 된장을 발효시키면 부패할 염려가 없어요. 발효 과정에서 냄새가 나지 않고 발효 시간도 줄일 수 있죠. 아파트에서도 냄새 걱정 없이 사계절 내내 된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재래식 된장은 메주를 소금물에 6개월가량 띄워 발효시켜야 만들어지는데, 쌀누룩을 넣으면 약 20일만 발효시키면 된다. 발효 시간이 6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메주를 띄울 때 부패를 막고자 많은 양의 소금을 넣는데, 쌀누룩을 넣어 발효시키면 부패될 염려가 없어 소금을 적게 넣어도 된다.
감칠맛 더하는 효소 작용
소금누룩을 생선에 바르면 비린내가 없어진다. [사진 제공 · 네오이마주]
“쌀누룩이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이 200% 이상 늘었어요. ‘집콕’으로 삼시 세끼를 집에서 요리해 먹다 보니 설탕이나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감칠맛을 내는 소금누룩, 간자누룩 등 쌀누룩 천연조미료가 인기 있는 것 같습니다.”
미각에는 다섯 가지 맛, 즉 단맛, 신맛, 매운맛, 짠맛, 쓴맛 외에 제6의 미각이라고 하는 ‘감칠맛’이 있다. 누룩으로 만든 음식은 독특한 풍미가 있는데, 이 명인은 이 풍미를 감칠맛이라고 말한다. 그는 “쌀누룩 천연조미료를 요리에 넣으면 효소 작용으로 재료 본래의 맛이 나고 풍미가 더해진다. 설탕이나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돼 건강한 요리를 만들 수 있고 감칠맛까지 나니 특히 요리 초보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소금누룩의 나트륨, 일반 소금의 4분의 1 이하
‘소금누룩 익는 마을’에서 출시한 제품들. [사진 제공 · 네오이마주]
이 소금누룩을 사용하면 모든 요리를 저염으로 만들 수 있어 건강에 도움이 된다. 특히 육류나 생선에 소금누룩을 발라두면 누린내나 비린내가 없어지고, 누룩이 발효 작용을 해 육질이 부드러워지면서 풍미가 더해진다. 소금누룩을 발라둔 육류나 생선으로 만든 요리는 그 어떤 조미료를 넣은 것보다 깊은 감칠맛이 난다.
“밥을 지을 때도 소금누룩을 넣어보세요. 밥 3인분에 소금누룩 1큰술을 넣으면 식감이 한층 부드러워지고 밥에서도 감칠맛이 나요. 건강한 요리란 식재료 고유의 풍미와 맛이 살아 있고 몸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소금누룩이 그런 건강한 요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그는 국내외 기술 보급에도 힘을 기울여 예비창업자들을 위해 발효 기술 멘토링과 관련 저서를 출간하고, 공개 강좌를 진행하며, 여러 방송매체를 통해 ‘쌀누룩 발효식품’의 우수한 효능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많은 사람이 쌀누룩, 소금누룩, 간장누룩 등을 요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책 ‘쌀누룩 소금누룩 감칠맛!’도 펴냈다. 책에는 쌀누룩으로 만든 천연조미료 소금누룩과 저염된장, 저염고추장, 간장누룩, 생선누룩, 맛간장 등이 소개돼 있으며, 이런 누룩 조미료를 활용한 100가지 요리 레시피도 실려 있다.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입맛을 돋우고 매일 먹어도 싫증나지 않는 요리는 바로 감칠맛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명인은 “긴 숙성 시간을 거쳐 서서히 몸에 이로운 음식으로 변하는 발효음식이 바로 감칠맛 나는 음식”이라며 “발효음식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쌀누룩을 널리 홍보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사람들이 마음껏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건강까지 챙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을 전했다.
쌀누룩 명인이 되기까지 온갖 정성으로 연구개발에 매진해온 지난 10년, 앞으로 10년은 그의 바람처럼 많은 사람이 쌀누룩으로 맛있게 건강을 챙길 수 있길 기대해본다.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안녕하세요. 한여진 기자입니다. 주식 및 암호화폐 시장, 국내외 주요 기업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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