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1

2015.03.30

비트코인 아직도 불안해?

환율 걱정 없고, 정부 정책에서 자유로워…글로벌 대기업·국내 기업들도 도입 준비

  • 김주연 전자신문 기자 pillar@etnews.com

    입력2015-03-30 1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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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트코인 아직도 불안해?

    비트코인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한 레플리카 주화.

    가상화폐 ‘비트코인(Bit Coin)’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쪽에선 계속 우려를 제기하고, 다른 한쪽에선 엄청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비트코인을 누구보다 눈여겨보는 건 중국이다. 정부가 규제하고 있지만 ‘눈 가리고 아웅’ 식에 가까워 지난해 말 기준 세계에서 환전되는 전체 비트코인의 80%가 중국 위안화로 이뤄졌다. 이는 연초보다 30% 급증한 수치다. 2위는 미국 달러화가 차지했고 유로화와 일본 엔화로는 극소량만 바뀌었다.

    외신은 중국이 비트코인으로 미국과의 화폐전쟁에서 주도권을 쥐려 한다고 해석했다. 2013년부터 중국 국영방송 중국중앙(CC)TV와 국영신문 ‘런민일보’ 등이 비트코인을 여러 번 대서특필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인 런민은행이 비트코인을 규제하긴 하지만 통화가 아닌 ‘상품’으로 간주하면 돼 실질적인 효력이 있다고 보긴 힘들다.

    대체 비트코인이 뭐기에 화폐전쟁의 도구로까지 쓰이는 걸까. 비트코인은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필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만들어 유통하기 시작한 가상화폐다. 초기엔 인터넷 커뮤니티 서비스 싸이월드의 ‘도토리’처럼 온라인에서만 쓰였지만 최근엔 비트코인 결제를 허용하는 오프라인 매장들이 등장했다.

    비트코인은 우리나라 원이나 미국 달러 등 기존 화폐와 달리 통제하는 중앙기관이 없다. 만드는 것도 유통하는 것도 일반인, 정확히 얘기하면 컴퓨터(PC)가 한다. 비트코인은 수학 문제를 푸는 ‘채굴(mining)’로 얻는다. 광산에서 금을 캐듯 수학 문제를 풀면 그 대가로 비트코인이 나온다. 수학 문제는 금 캐는 것만큼 어렵다. 일반 PC 1대로 5년이 걸려야 풀 수 있을 정도다.

    자금 흐름 추적 어려워



    게다가 풀면 풀수록, 푸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난도가 올라가 현재는 비트코인을 캐는 전용 프로그램을 활용하거나 고성능 PC 등 고급 장비로 중무장한 채굴 전문 업체들이 등장했을 정도다. 화폐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캐낼 수 있는 양도 정해놓았다.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최대 2100만 개까지 캘 수 있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비트코인은 ‘비트코인 월렛’(비트코인 지갑)이란 계정에 넣어 사용한다. 월렛 서비스에 가입하면 알파벳과 영어가 합쳐진 개인 고유 코드를 받게 된다. 은행 계좌와 달리 본인인증 과정 없이 e메일 계정만 넣어 사용하므로 악용되기 쉽다. 자금 흐름을 추적하거나 계정이 누구 것인지 알아내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국내에서 10대 청소년이 비트코인으로 개인정보를 사들여 신용카드를 위조한 뒤 수억여 원을 쓰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건 새 발의 피다. 대규모 비자금 등 일명 ‘검은돈’이 머무르기 쉽다. 마약 판매 등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도 다수고 실제 찰리 슈렘 비트코인 재단 부회장이 마약 밀거래에 연루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킹이나 도난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초 일본 비트코인 환전소 마운트곡스(Mt. Gox)는 해킹으로 문을 닫았고, 캐나다 플렉스코인(Flexcoin) 은행은 비트코인 60만 달러어치를 도난당했다.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해킹 전 1000달러대에서 400달러대로 떨어졌다. 이어 최근에도 슬로베니아 비트코인 거래소 비트스탬프(Bitstamp)가 우리 돈 약 55억 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해킹당하기도 했다. 물론 해킹과 도난은 다른 통화에도 있는 문제다.

    아직 시장에 안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건, 사고로 가격 변동 폭이 큰 것도 단점이다. 이처럼 논란이 계속되면서 한국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가격도 1년 새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비트코인은 하나의 통화라 환율 걱정이 없다. 시스템이 개인 간 수요와 공급 자료를 기반으로 물가를 자동으로 제어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처럼 정부 정책이 주로 만드는 경제적 부작용에서도 훨씬 자유롭다. 비트코인을 만들려면 고성능 기기가 필요하다는 점이 다소 걸리긴 하지만, 적어도 거대 국가 간 권력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인근 국가들의 물가가 요동치는 일이 쉽게 발생하지 않는 건 확실하다.

    지금 세계는 화폐전쟁 상태다. 값싼 위안화로 다른 국가들보다 수출에서 유리했던 중국은 최근 위안화 강세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 미국은 양적완화를 실시해 달러 가치를 낮췄고, 이어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들도 앞다퉈 시장에 돈을 풀고 있다. 중국이 미국과의 화폐전쟁에서 비트코인을 활성화해 달러의 입지를 좁히고, 위안화 절상 및 국제화를 노린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뿐 아니라 비트코인은 거래 시 수수료가 거의 없어 소액결제시장이나 신용카드가 보편화하지 않은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미국에서 고객이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상점 주인은 건당 결제대금의 2.5~3%를 수수료로 낸다. 하지만 비트코인 수수료는 대금의 1%에 불과하다. 이에 국가에서 비트코인 거래를 공식 허용하기도 했다. 영국 정부는 온라인 가상화폐와 관련한 법률안을 마련하고 세계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통화’로 인정했다. 비트코인을 규제해오던 미국도 비트코인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 측에 비트코인의 중개 및 감독 서비스에 대한 면허를 내줬다.

    비트코인 아직도 불안해?

    ‘비트코인으로 임대합니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린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빌딩(왼쪽). 2014년 3월 7일 정혜경 코인플러그 이사가 국내 기술로 처음 개발한 비트코인 전용 현금자동입출금기 '코인플러그 ATM'을 시연하고 있다.

    핀테크 활성화에 기여할 것

    글로벌 대기업들도 비트코인 결제를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의 여행사 익스피디아나 미국 PC 제조업체 델, PC 소프트웨어업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비트코인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애플, 페이팔이나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업체 바이두와 미국 온라인 음식 배달 서비스업체 푸들러 등에서도 비트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다. 최근 일본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라쿠텐도 온라인 쇼핑 서비스를 비트코인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인천 빵집에서 비트코인 결제기를 들였고, 이후 비트코인 거래가 가능한 매장이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게임을 비롯한 가상 콘텐츠를 살 때뿐 아니라 커피전문점이나 음식점, 병원, 심지어 부동산중개사무소에서도 결제 가능하다. CJ E&M도 영화 보기 서비스 ‘빙고’에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 가운데 하나로 더했다.

    비트코인의 핵심 특징 중 하나인 ‘분산성’도 주목받는다. 기존 화폐는 중앙은행 등 중심의 전산망이 무너져버리면 휴지조각이 되지만 비트코인은 각 개인이나 사업장 PC망에 퍼져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최근 ‘비트코인의 진화와 핀테크 산업의 활성화’ 보고서에서 이 기술이 핀테크 산업을 키울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비트코인의 미래를 낙관하긴 힘들다. 비트코인 상당량이 개인이나 거래소 주머니에서 잠자는 이유도 ‘아직 불안해서’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 점이 개선되면 비트코인이란 가상화폐가 기존 통화 중심의 화폐 경제를 바꿀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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