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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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 혈통 떠난 자리에 전문관료

김정은 체제 권력 엘리트 대이동…이전과는 다른 출신성분 어떤 영향 미칠까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3-12-30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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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치산 혈통 떠난 자리에 전문관료

    2006년 한 민간 방북단이 촬영한 만경대혁명학원.

    #1 2013년 12월 24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고(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취임 2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 뒤로 북한군의 ‘떠오르는 실력자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한 명단은 조선인민군 최룡해 총정치국장과 이영길 총참모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수길 총정치국 조직부국장, 염철성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순이었다. 처형당한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은 물론 2012년 같은 날 대거 동행했던 군 원로나 당 중앙군사위·국방위 소속 인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2 2013년 12월 8일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주석단에는 김정은 제1비서를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최룡해 총정치국장,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문경덕 평양시 당 책임비서, 김평해 당 간부부장, 김영일 당 국제부장, 곽범기 당 비서 겸 계획재정부장, 조연준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박도춘 당 군수담당 비서, 김기남 당 선전담당 비서, 박봉주 내각총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자리를 차지했다. 김정은 제1비서를 제외하고 총 14명이었다.

    이 사진 두 장은 치열한 권력투쟁을 겪은 뒤 북한을 움직이게 될 파워 엘리트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다. ‘장성택 일파’의 제거를 반영한 당 중앙위나 국방위 구성원 명단이 공식 발표되지 않은 현재로서는 이 사진들이야말로 ‘뒤바뀐 세상’의 군과 당·내각을 누가 이끌어갈지 엿볼 유일한 틈새라는 뜻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들 인물의 출신성분이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 꼼꼼히 분석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이 비밀을 푸는 키워드는 바로 ‘만경대혁명학원’이다.

    김일성-김정일 시대, ‘출신성분’은 권력 핵심에 진출하는 가장 중요한 자격요건이었다. 일제강점기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와 그 후손, 북한에서는 ‘혁명 1~3세대’로 부르는 이들은 그 선두에 자리했다. ‘혁명 유공자’ 자녀를 위해 1947년 설립한 중등교육기관 만경대혁명학원은 출세의 지름길로 불렸고, 이 학교 출신 인사 다수가 소련과 체코, 루마니아 등으로 유학을 다녀온 뒤 김일성-김정일의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김정일 위원장 본인이 포함된 이 학교의 동창생 명부가 곧 북한 지배세력의 핵심 인맥이었다.

    저무는 ‘만경대혁명학원’



    김옥자 북한학 박사의 학위논문에 따르면, 당 중앙위 비서국 구성원 중에서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은 1980년 10월 40%, 1994년 12월 45%, 2000년 12월 67%, 2010년 8월 80%를 차지했다. 군사 분야에서의 비중은 더했다. 90년 이후 국방위원회 위원 중 이 학교 출신이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100%에 이르렀다는 것. 그나마 초기 비중이 낮았던 것은 빨치산 활동에 가담했던 이들이 나머지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시기에는 국방위 전원이 혁명 1~2세대로만 구성돼 있었다는 뜻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와병 이전 북한 체제가 상대적으로 안정돼 있던 2006~2007년 무렵의 인민군 수뇌부 명단을 살펴보자. 조명록 총정치국장, 오극렬 당 작전부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총참모장, 박기서 평양방어사령관, 김원홍 보위사령관, 이명수 작전국장, 현철해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박재경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국장까지 총 9명 가운데 본인이 빨치산 출신이거나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은 6명이었다.

    1928년생인 조명록은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에서 소년 전령병으로 일했으며 해방 후에는 유아였던 김정일을 ‘모시고’ 귀국했던 혁명 1세대의 상징적 존재다. 오극렬은 북한군이 귀감으로 내세우는 빨치산 영웅 오중흡의 5촌 조카로,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오극렬의 부친 오중성이 빨치산 부대에서 벌인 활약상을 상당한 분량으로 묘사한 바 있다. 만경대혁명학원 1기 출신인 그는 이후 북한군 내 혁명 2세대 인맥의 구심점 노릇을 하며 김일철, 김영춘, 박기서, 현철해 등 혁명 2~3세대 출신인 다른 주요 군 지휘관들을 아우르며 긴 시간 권력을 누렸다. 그야말로 ‘만경대 전성시대’였다.

    빨치산 혈통 떠난 자리에 전문관료

    2013년 12월 24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군 주요 지휘관들과 함께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왼쪽). 2013년 12월 8일 열린 조선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김정은 제1비서를 중심으로 14명의 권력 핵심 인사가 자리했다.

    반면 앞서 두 사진에서 확인되는 현재 북한 권력 엘리트의 출신성분은 전혀 다르다. 역시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당에서 혁명 2세대의 구심점 구실을 했던 장성택의 제거야말로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그를 제거한 2013년 12월 8일 정치국 확대회의 주석단에 앉은 이들 가운데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은 김기남, 최태복, 최룡해 세 사람뿐으로, 그나마 고령인 김기남 비서와 최태복 의장은 상징적 위치에 불과하다는 게 정설이다.

    김원홍, 조연준, 황병서 등 장성택 제거를 전후해 김정은 주변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낸 신진 인물들 역시 모두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이 아니다. 이들은 지방에서 태어나 우수한 두뇌를 무기로 김일성정치군사대나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한 뒤 특별한 출신성분 배경 없이 당과 군에서 성장해온 테크노크라트로 분류된다. 장성택 제거 이후 김정은 제1비서의 팔과 다리는 모두 ‘혁명 유가족’과는 거리가 먼 전문관료 출신이라는 뜻이다.

    충성과 의리, 논리 확산 작업

    군도 마찬가지다. 2013년 12월 24일 참배에 동행한 최고지휘관 7명 가운데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은 최룡해 한 사람이다. 거명되지는 않았으나 TV 화면에 포착된 이들 가운데는 김영철 정찰총국장 정도만이 이 학교 출신이다.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최룡해는 자타가 공인하는 혁명 2세대지만, 이영길 총참모장이나 장정남 인민무력부장은 김정일 시대에는 2선에 있던 인물들로 2012년 들어서야 비로소 남측 정보당국의 주목을 받았을 정도다.

    권력층 출신성분의 이러한 변화와 관련해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빨치산 3세대 다수는 언제 숙청될지 모르는 직위나 권력보다 달러를 택했고, 부모의 힘을 이용해 무역권을 차지하는 길로 나섰다”고 전했다. 같은 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인맥을 형성했던 2세대와 달리 외국 유학파가 많은 3세대는 결속력이 약해 권력 네트워크를 독점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 김 전 위원장은 만경대혁명학원을 다녔지만 김정은 제1비서는 스위스에서 유학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그간 진행돼온 권력과 이권투쟁 와중에 혁명 2~3세대들이 당과 군으로 갈려 서로를 숙청하는 바람에 ‘자원’이 고갈된 탓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1998년 출간된 ‘세기와 더불어’ 8권은 9장 ‘혁명의 뿌리를 가꾸며’ 전체를 할애해 빨치산 1세대와 그 자녀들의 충성심과 의리를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최룡해의 아버지 최현에 대해 북한 관영매체들이 대대적인 홍보작업에 돌입한 것이나, 김책 전 부수상의 아들 김국태 전 국가검열위원장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른 것 역시 이러한 논리를 확산하려는 선전 작업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김정은 체제가 이러한 논리와는 상관없이 발탁인사로 만들어졌다는 점이고, 장성택 제거와 함께 그 흐름은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단단한 결속력과 동질감을 공유했던 김정일 시대 엘리트들과는 전혀 다른 ‘김정은 2기’ 권력층의 출신성분이 북한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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