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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판매 5000억, ‘독일 헤리티지DLS’ 피해자들 ‘곡소리’

“오래 거래한 금융기관이라 믿었는데…”

  • 김지영 신동아 기자 kjy@donga.com

국내 판매 5000억, ‘독일 헤리티지DLS’ 피해자들 ‘곡소리’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라임 · 독일헤리티지DLS 등 사모펀드 투자 피해자들이 금융사 징계 및 펀드 계약 취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6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라임 · 독일헤리티지DLS 등 사모펀드 투자 피해자들이 금융사 징계 및 펀드 계약 취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2018년 1월 10억 원을 투자했어요. 상가분양 잔금으로 치를 돈이었는데 잔금까지 2년 정도 남았었거든요. 25개월간 10억 원을 넣어두면 1년 후 수익률이 4.8%, 만기 때는 8.8%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믿고 투자했죠. 독일 정부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 100%를 보장한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어요.”(A씨) 

“저도 비슷한 시기 노후자금으로 모아둔 5억 원을 투자했어요. 담당 PB(프라이빗 뱅커)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독일 건물을 주거용으로 개발하는 사업에 투자하는데, 독일 정부가 세제 혜택까지 줘 인기가 많은 상품이라고 했어요.”(B씨) 

“2018년 12월 막차를 탔어요. 퇴직금 2억 원을 넣었죠. 은행 직원이 처음에는 5억 원 이상만 신탁이 가능하다더니 제가 ‘2억 원밖에 없다’고 하니까 ‘마침 7억 원을 넣으려던 고객이 액수를 5억 원으로 줄이는 바람에 2억 원 넣을 자리가 생겼다’면서 투자를 권했어요. 알고 보니 1억 원부터 신탁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죠.”(C씨)


신한금투 3908억, 하나은행 559억어치 판매

1월 초순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서정 회의실에서 만난 ‘독일헤리티지DLS(파생결합증권)’ 투자자들은 이같이 성토했다. 헤리티지DLS는 독일 정부가 문화재(헤리티지)로 지정한 부동산을 현지 시행사인 저먼프로퍼티그룹(GPG·옛 돌핀트러스트)이 매입해 개발을 진행한 후 수익을 내는 구조다. 이 부동산 프로젝트에서 발행한 전환사채(CB)에 싱가포르 반자란자산운용이 대출펀드를 조성하고, 국내 증권사가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DLS를 발행해 판매했다. 이 펀드가 라임, 옵티머스의 경우처럼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에 봉착하면서 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헤리티지DLS는 2017년 4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2000여 명의 투자자에게 5000억 원어치가 팔렸다. 신한금융투자가 3908억 원으로 가장 많고, 하나은행 559억 원, NH투자증권 243억 원, 우리은행 223억 원이 뒤를 잇는다. 투자자 2000여 명 중 1600여 명이 신한금융투자 고객이고, 연령대로 보면 60대 이상이 70%에 달한다. 



최근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지연된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와 관련해 제재심의위원회를 1월 중 재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지난해 헤리티지DLS 등을 판매한 증권사에 대한 제재심을 열고 제재를 의결한 바 있다. 은행에 대한 제재심도 조만간 열릴 예정이다. 피해자인 투자자들에 대한 구제책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헤리티지DLS 투자자 중 일부는 현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법률 대리를 맡은 이석환 법무법인 서정 대표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불완전판매 수준을 넘은,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 거래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금감원 금융분쟁위원회에 분쟁 조정을 신청하고 사기 등에 의한 특정금전신탁 취소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라며 “필요에 따라 신한금융투자 등 판매사를 대상으로 민사 소송을 진행하면서, 상품 정보를 허위로 설명해 DLS를 판매한 직원 개인에 대해서도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판매 전부터 해외서 투자위험성 경고

이석환 변호사가 1월 5일 ‘독일헤리티지DLS’ 판매 과정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이석환 변호사가 1월 5일 ‘독일헤리티지DLS’ 판매 과정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검사장 출신인 이석환 변호사는 법조계에서 금융사건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1부장,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등을 역임했다. 대검찰청에서 발행한 책 ‘증권거래사범 수사실무’를 직접 쓴 인물로도 유명하다. 과거 그는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법률자문관으로도 활동 한 바 있다. 

헤리티지DLS의 원리금 상환이 지연되기 시작한 건 2019년 7월부터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악화됐다. 급기야 지난해 3월 환매 중단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독일 현지 시행사인 GPG는 파산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운용사인 반자란자산운용이 투자금을 조속히 회수하려는 목적으로 GPG로부터 포괄적 권한위임을 받아 투자자산을 매각하거나 시행사를 교체해 개발을 진행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GPG가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반자란자산운용은 GPG에 대출을 연장해주지 않기로 했다. 

이 일로 국제 금융시장에 파고가 일었다. 지난해 10월 일본 경제지 ‘닛케이아시아’는 “독일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GPG에는 현재 투자자에게 1년 내 돌려줄 수 있는 유동자산이 3억 원도 채 남아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GPG는 2017년 독일 바이에른에 있는 수도원을 100만 유로(약 13억3500억 원)에 매입해 해당 부지에 고급 아파트를 짓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어떤 건물도 세워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에서는 GPG 파산과 관련해 투자 사기 및 배임 혐의에 대한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석환 변호사는 “독일 로펌 관계자에 따르면 GPG 설립자 찰스 스메서스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사적 자금 유용과 사기 정황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며 “시행사의 컴퓨터를 확보해 포렌식을 진행한 결과 회계 부정과 세금 포탈 등의 혐의도 포착됐다”고 말했다.


사실과 다른 설명서 … “고객 기망”

국내 펀드 판매사들은 왜 GPG의 부실을 감지하지 못했을까. 헤리티지DLS를 판매하기 전에도 영국과 싱가포르 당국은 공식적으로 GPG 신용에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영국은 2014년 2월 GPG에 대한 투자 위험성을 경고했고, 독일 현지 매체들도 2016년부터 GPG의 사기 및 횡령 관련 비위를 보도했다. 그럼에도 한국 금융사들은 GPG의 실상을 모른 채 펀드를 판매했다. 

DLS 판매에 앞서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특정금전신탁 운용자산 설명서’(이하 설명서)를 보면 상품 판매가 허술하게 진행됐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석환 변호사는 “판매사들이 사실과 다른 내용의 설명서로 고객을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설명서에는 시행사 GPG에 대해 ‘독일 내 상위 4.4%에 드는 기업으로 재무 상태와 사업성이 좋다’ ‘독일 내 기념물 보존등재 건물 재건 사업의 마켓 리더로서 현지 TOP5 디벨로퍼(부동산 개발업체)’ 등의 문구가 쓰여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이 변호사의 주장이다. 그는 “GPG는 재무 상태로 봤을 때 독일 전체 기업 중 상위 50%에도 들지 못하는 수준이고, 실제 자본금도 10만 유로(약 1억3400만 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헤리티지DLS 환매 중단이 현실화하자 신한금융투자와 하나은행은 지난해 3월과 11월 각각 투자자들에게 원금의 50%를 가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투자금의 절반을 미리 지급해 ‘투자자들이 일단 한숨 돌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일 뿐 피해에 대한 보상금은 아니다. DLS 환급 후 최종 회수한 투자금을 수익률에 따라 고객에게 가지급금에 차액을 더해주거나 돌려받겠다는 게 판매사들의 입장이다. 만약 10억 원을 투자해 최종 펀드 수익률이 -80%로 결정 났다면, 실제 남은 금액은 2억 원밖에 되지 않으므로 가지급금으로 받아간 5억 원에서 3억 원은 판매사 측에 되돌려줘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석환 변호사는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DLS 판매의 위법성과 사기성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며 “독일 현지 법무법인과 긴밀하게 협조한 덕분에 의미 있는 자료를 많이 확보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 등 판매사들은 투자자와 금융업계가 제기하는 의혹에 대해 말을 아꼈다. 신한금융투자 관계자는 “그동안 감독 당국에 성실하게 소명했고, 관련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인 관계로 소상히 답변하지 못하는 점 양해를 부탁드린다”며 “고객의 이익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예정이며, 독일 도산 절차에서 최대한 회수할 수 있도록 발행사 및 해외운용사 등을 종용해 가능한 한 빨리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독일헤리티지DLS를 발행하거나 판매한 금융사에 대한 검사를 2019년 마치고 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금융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에 새로운 문제가 많이 드러난 만큼 추가로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금감원 측은 “검사 내용에 부족한 점은 없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주간동아 1274호 (p34~37)

김지영 신동아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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