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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한의 세상 관심법

전남편은 엄청난 불행 초래할 방해물

‘모든 것 남편 탓’으로 돌린 고유정의 사고가 ‘악마의 행동’ 불러

  •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전남편은 엄청난 불행 초래할 방해물

[사진 제공 · 제주동부경찰서]

[사진 제공 · 제주동부경찰서]

제주에서 전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피의자 고유정(36·사진)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가 결정돼 그의 얼굴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람들은 고유정의 끔찍하고도 엽기적인 행각에 공포와 분노를 느끼고 있다. 전남편이 아들에 대한 면접교섭권을 행사하자 불만이 생겼고, 전남편의 존재가 자신의 재혼 생활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살인의 이유가 될 수 있을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유가 무엇이든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결코 합리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필자 역시 보통 사람이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고유정의 심리를 추정, 분석해보고자 한다. 그를 옹호하거나 대변할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그는 왜 전남편을 죽였을까. 어떤 마음이 그에게 스며들어 있었을까


‘치워야 할 물건’

6월 5일 제주경찰이 인천 소재 재활용업체에서 고유정 사건 피해자인 전남편의 시신을 수색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제주동부경찰서]

6월 5일 제주경찰이 인천 소재 재활용업체에서 고유정 사건 피해자인 전남편의 시신을 수색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제주동부경찰서]

첫째, 피해자를 방해물로 인식했을 것이다. 

고유정은 2년 전 피해자와 협의이혼했다. 그리고 현 남편과 재혼해 새 가정을 꾸렸다. 지난 2년간 전남편에게 아들을 보여주지 않았고, 이에 피해자가 법원에 면접교섭권 소송을 내 승소했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보여줘야 했던 고유정은 아들과 아버지가 만나는 날, 아버지를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버렸다. 

고유정은 ‘전남편은 내 인생의 방해물일 뿐이다. 그가 아들을 만나는 것은 다시 내 인생에 개입하는 행위고, 아들의 앞날에 대한 결정 역시 나 혼자서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여겼을 테다. 만일 피해자가 재판에서 패소했다면 어땠을까. 고유정은 더욱 의기양양해져 사회가 공식적으로 자신만을 아들의 부모로 인정했고, 이제 자신과 아들의 인생에서 전남편은 완전히 빠져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들을 보게 해준 재판 결과는 아버지에게 최악의 불행이 됐다. 전처가 아들을 보여주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 머뭇거리거나,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회피하거나, 혹은 감정적으로 화가 난 언행을 보일 수도 있으리라는 정도는 예상했을 테다. 하지만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처가 아들을 보여주기 싫어 자신을 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유정은 전남편을 사람이 아닌 치워야 할 물건으로 여겼던 것 같다. 물건을 깔끔하게 치우면 흔적이 남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시신 훼손 및 유기다. 그는 훼손된 남편 시신을 꽤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는 확실한 방법은 자신이 갖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버리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갖고 있다 바다와 쓰레기장에 버리면 아무도 못 찾을 것이다. 범행에 쓰다 남은 물품은 마트에서 환불받으면 된다.’ 고유정에게 전남편의 시신은 버려야 할 쓰레기에 불과했다. 

둘째, 피해자를 아들의 아버지로서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피해자는 제주대 박사과정의 학생으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아들 양육비로 매달 40만 원씩 보냈다고 한다. 경제적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아도 아들을 위해 일정 액수의 돈을 보내주면 적어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버지 자격을 인정해준다. 그런데 고유정은 양육비를 받았음에도 아들을 보여주지 않고 만나지도 못하게 했다. 고유정과 피해자는 캠퍼스 커플로 만났지만, 고유정의 폭력적인 성격 탓에 이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유정은 ‘나를 감당하지 못하고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네가 내 아들의 아버지가 될 수는 없다’고 여겼을 개연성이 높다. 아버지와 아들의 ‘양자관계(dyad)’가 성립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포함된 ‘삼자관계(triad)’에서만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가 성립된다고 봤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당신을 더는 남편으로 여기지 않는데, 네가 어찌 내 아들의 아버지가 될 수 있느냐’라는 자기중심적인 관점에 사로잡혔을 개연성이 크다.


‘더 이상 너의 아버지는 없다’

5월 제주시 한 마트에서 고유정이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물품을 구매하고(왼쪽) 며칠 뒤 환불하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 장면. [사진 제공 · 제주동부경찰서]

5월 제주시 한 마트에서 고유정이 범행도구로 추정되는 물품을 구매하고(왼쪽) 며칠 뒤 환불하는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 장면. [사진 제공 · 제주동부경찰서]

고유정은 ‘공권력의 힘을 빌려 현재의 평화로운 상태를 깨려는 당신은 여전히 아들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잘 봐라. 당신이 그토록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아들은 혼자 게임에 몰두하고 있을 테고, 그 사이 당신은 파괴돼 소멸되리라.’ ‘아들을 2년 만에 만났음에도 당신은 내 손에 의해 결코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없을 게다.’ 남편에 대한 깊은 원한과 적개심이 느껴진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잔인한 악마로 만들었을까. 고유정은 복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부분은 필자로서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비록 아들이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아들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아버지를 소멸시켰다는 것은 아들에게도 ‘더 이상 너의 아버지는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셋째, ‘파국적 사고방식(catastrophic thinking)’을 갖고 있다고 본다. 

만일 전남편이 앞으로 아들을 자유롭게 만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면? 전남편과 아들이 가까워진다면? 비록 이혼했어도 친부가 아들에게 관심을 갖고 잘해준다면 아들의 인생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다. 그러나 고유정은 이런 일이 벌어지면 자신의 인생이 파탄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새로 이룬 가정의 행복이 깨지는 것은 물론, 아들도 결국 자신을 버리고 전남편을 택할 것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3월 고유정의 의붓아들이 질식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경찰은 이 사건에 대해서도 추가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일 고유정이 의붓아들의 죽음에도 연관돼 있다면 최악의 살인마로 불릴 것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느냐고 간주한다면, 고유정은 의붓아들의 상실에 이어 친아들의 떠남 혹은 멀어짐에서 오는 고통을 예상했을 수 있다. 게다가 그간 아들에게 해준 얘기가 부정되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기 싫다. 

실제로 진료 현장에서 이혼한 부부를 상담할 때 자기 자녀를 전남편(혹은 전처)과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곤 한다. “아이가 친부(혹은 친모)와 만나면 매우 불행해질 겁니다. 저는 아이의 불행을 원하지 않아요. 그건 나의 또 다른 불행이기도 하고요. 고통을 겪는 것은 저 한 사람만으로 충분합니다.” 이는 그들 사이에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고유정은 친부의 재등장이 아들과 자신에게 엄청난 불행을 초래할 것이라 믿고 몹시 불안했을 테다. 그래서 그 가능성을 잠재우기 위한 ‘원천적인 차단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대중의 정신건강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 미쳐

넷째, 고유정은 ‘투사(projection)’의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다. 

투사란 쉽게 말해 누군가를 탓하는 행위다. 고유정에게는 전남편이 그 대상이었다. ‘당신 때문에 삶의 평형 상태가 깨졌어. 당신이 재판을 제기해 나를 이겼으니, 이제 내가 내 방식대로 당신을 이기고자 해’라는 억지 논리가 작동했다. 

고유정은 결코 감정적인 흥분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해 실행했다. 자신보다 체격이 훨씬 크고 힘이 센 전남편을 제압하고자 수면제 성분을 이용했고, 흉기도 사용했다. 피해자가 마음을 놓게 한 뒤 기습적으로 공격했을 개연성도 크다. 고유정은 경찰에서 성폭행을 피하려다 살인에 이르렀노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형량을 줄이기 위한 거짓말일 개연성이 가장 크지만, 피해자가 죽어야 할 이유를 한 가지 더 추가해 투사를 강화하는 사고방식일 수도 있다. 

고유정은 “아들을 위해 얼굴이 공개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기자들의 카메라 앞에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묵묵부답했다. 혹시 마음속으로 ‘당신 때문에 아들의 앞날을 망치게 됐어. 당신이 소송 따위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라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주간동아 2019.06.14 1193호 (p68~70)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psysoh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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