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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박원순 시장의 조급증

지역 주민과 시장 상인들 반발에도 일사천리 강행…대권 디딤돌 의심도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박원순 시장의 조급증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박원순 시장의 조급증
서울역 고가도로를 녹지공간으로 바꾸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사업 계획을 발표한 이후 관할 구청과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 평소 시민들과 소통을 강조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사업이 시작된 이후 ‘불통(不通) 시장’ ‘불통 행정’이란 꼬리표를 달았다. 박 시장이 거센 역풍에도 이 사업을 밀어붙이는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의 시작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시장은 당시 미국 순방 중 뉴욕의 대표적인 공원인 ‘하이라인 파크’를 찾은 자리에서 서울역 고가도로(높이 17m, 길이 938m)를 녹지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도로는 도시 인프라 이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갖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라며 “하이라인 파크를 뛰어넘는 녹지공간으로 재생케 하겠다”고 밝혔다.

하이라인 파크는 1930년 설치된 지상 9m 높이, 길이 2.5km의 공중 철로다. 물자 수송을 담당했지만 도로 발달로 물량이 줄자 80년 폐쇄된 뒤 20년 가까이 흉물로 있다 2009년 ‘공중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시는 이를 벤치마킹해 서울역 고가도로를 관광 명소로 만들겠다는 것.

서울시는 이런 계획을 지역 주민들과 충분한 협의 없이 발표했고, 이 사실이 알려지자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하이라인은 제 기능을 잃은 폐선로를 재생한 것이지만 서울역 고가도로는 지금도 남대문시장, 용산, 공덕 등을 잇는 보조간선도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까지 낙후한 고가를 철거하고 대체 도로를 건설할 것이라 기대했던 지역민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서울시는 뒤늦게 지역민들과 상의해 합의점을 찾겠다고 했지만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산업화 시대의 유산



처음에는 인근 남대문시장 상인 중심으로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후에는 중구 중림동과 회현동, 용산구 주민까지 고가 공원화 계획을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11월 24일 지역 주민 800여 명은 남대문시장에서 시청까지 항의 행진을 했고, 올해 1월 12일 열린 종합토론회는 주민과 상인들의 반발에 부딪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들은 “대체 도로 마련 등 교통대책 없이 고가가 없어지면 지역 경제가 죽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요지부동이었다. 1월 9일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담은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직접 브리핑하며 사업 강행 의사를 밝혔다. 같은 사업에 시장이 두 번 나서서 사업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5월 초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 설계안 국제 현상 당선작이 나온다. 5월 10일에는 서울역 고가도로의 차량 통행을 막고 시민 개방 행사를 연다. 지난해 10월에 이은 두 번째 고가도로 개방 행사다. 이번 행사 주제는 ‘고가에서 머물다:봄소풍’으로 고가도로 위에 임시 잔디밭을 조성해 야외에서 도시락과 음료를 즐길 수 있게 했다. 고가도로 공원화를 반대하는 상인과 주민들 바로 옆에서 ‘봄소풍을 즐기라’는 것이다.

중구와 지역 주민들이 본질적으로 고가도로 공원화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가 대체 도로 마련 등 제대로 된 교통대책을 마련하면 합의점도 나올 수 있다. 서울시는 4월 16일 교통대책을 공개했다. 당분간 대체 도로 설치가 어려운 만큼 우회도로를 넓히고, 신호체계를 바꿔 교통 정체를 최소화하겠다는 것. 하지만 주민들은 “신호체계를 바꾸는 정도로는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박 시장은 최근 서울역 주변에서 현장 시장실을 잇따라 열고 “소통하겠다”고 했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김재용 남대문시장 상인회장은 “소통이라는 것은 대화 과정에서 서울시가 양보한다든가 생각을 바꾼다든가 등 그런 타협이나 양보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는데 시는 그렇지 않다. 대화만 한다는 것이지 자기들 계획대로 밀고나가는 것은 변함이 없다. 소통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설득하고 회유하려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관할 기초자치단체 측 주장도 비슷하다. 중구 관계자는 “서울시가 ‘협의하자’ ‘다음에 하자’는 말만 하고 당초 스케줄대로 다 하고 있다. 소통하자고 하면 모든 것을 일단 대기해놓고 얘기를 해야지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중구는 서울시가 마련한 현장 시장실 행사에 불참하며 공식적으로 항의를 표출하기도 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박 시장은 2011년 10·26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뒤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시민’과 ‘소통’을 강조한 박 시장은 서울시청 신청사 지하에 복합문화공간인 시민청을 만들어 시민이 시청을 좀 더 친숙하게 찾도록 했다. 시민청 로고는 사람 귀를 형상화했다. 시민의 말을 경청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에서만큼은 ‘귀’를 닫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박원순 시장의 조급증

서울 청계천 복원사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권가도에 디딤돌 구실을 했다.

2017 대선 의식한 밀어붙이기 행정?

사실 박 시장은 그동안 소통을 강조하며 ‘양보’도 여러 번 했다. 지난해 말 서울시민인권헌장이 동성애 논란을 빚자 박 시장은 인권단체들의 반발에도 헌장 공표를 포기했다. 개발 방식을 두고 수년째 강남구와 갈등을 빚었던 구룡마을도 결국 강남구가 원하는 방식으로 개발할 수 있게끔 길을 터줬다. 하지만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에서는 이런 양보를 찾기 힘들다. 이런 박 시장의 ‘변화’를 두고 서울시 내부에서도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모아지는 말은 박 시장이 본격적으로 2017년 대통령선거(대선)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종종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시장이 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치적이 될 수 있는, 혹은 대권으로 향하는 ‘디딤돌’ 같은 상징물을 만들지 않겠다는 말로 해석된다. 실제로 박 시장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상징물이 별로 없다는 말이 많다. 지난해 대박을 친 타요버스는 ‘임팩트’가 약할뿐더러 그 모태인 애니메이션 ‘꼬마버스 타요’는 오세훈 전 시장 시절 서울시가 제작에 참여해 만든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남긴 청계천이나 대중교통 환승체계, 오 전 시장이 계획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나 세빛섬 같은 상징물이 박 시장에게는 없다. 박 시장은 그동안 “아무것도 만들지 않겠다”는 말과 행동으로 개발, 성장 패러다임과 대척점을 이루며 표를 얻었다. 하지만 만약 대선에 나간다면 ‘아무것도 안 한 시장’으로 역공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가 아닌 전국 단위 선거에 나선다면 상징물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도 대선이 있는 2017년에는 서울 곳곳의 모습이 많이 바뀔 전망이다. 서울시는 그때까지 광화문광장을 확대하고,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화하며, 세운상가에 공중보행교를 놓는 등 일대를 정비한다. 하지면 좀 더 면밀하게 볼 필요가 있다. 광화문광장은 ‘국가의 상징 광장’인 만큼 서울시가 독단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다. 세운상가 정비는 새로 보행데크 등을 설치해 접근성을 높이는 환경정비 성격이 짙다. 사업 가능성과 화제성, 파급력 등을 감안하면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가 대선 전까지 박 시장이 마칠 수 있는 유일한 ‘박원순표 랜드마크’로 보인다. 서울시 한 관계자도 “대선 전까지 마칠 수 있는 것은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 정도로 보인다. 박 시장에게 이 사업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청계천 복원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대권을 거머쥐었다.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을 앞두고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박 시장은 2017년 대선의 유력한 야권 주자로 거론될 때마다 “시정(市政)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 시장이 앞으로 고가 공원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대선을 대하는 그의 진심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사업 박원순 시장의 조급증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왼쪽)와 세빛섬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대표적 치적으로 꼽힌다.





주간동아 2015.05.04 986호 (p34~36)

  • 황인찬 동아일보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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