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6

2014.12.08

“한국살이 만족하지만 빡빡해요”

외국인 전문 인력 발전 가능성 중시…영어 표기 부족 등 언어 불편함 호소

  •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hjeon@hri.co.kr

    입력2014-12-05 17: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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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 진출 기업이 늘고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우리 주변에서도 외국인 전문 인력을 영입하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게 됐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전문 인력을 들여오는 목적은 선진 지식 확보와 글로벌 감각 획득 등 국가 내부의 지적 자본을 확충하려는 의도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은 물론 주요 선진국에서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경제활동인구 감소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이를 보완하려는 방안으로 외국인 전문 인력을 유치하는 작업이 활성화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외국인 전문 인력 유치 성과는 극히 낮은 편이다. 2013년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 전문 인력은 9만 명 수준으로 국내 전체 전문 인력의 2.1% 수준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전체 평균을 보면 전문 인력의 8.6%가 외국인으로 이뤄진 것과는 자못 대조적인 모습이다.

    외국인 전문 인력을 유치한다 해도 이들이 언어 장벽이나 경직된 근로 문화(한국 특유의 조직 문화, 강도 높은 근로, 승진 장벽) 등에 한계를 느껴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한국을 떠나는 현상도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2000년대 후반 국내 한 대기업에서 외국인 전문 인력을 대거 유치했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자 대부분 이탈한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몇몇 기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동아일보’와 함께 외국인 전문 인력의 한국 이주 선택 계기, 체류 중 애로사항 등 주요 현황을 살펴보고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은 교수, 연구, 지도, 전문 직업(의사, 조종사, 선장 등), 기타 대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전문 인력이었고 조사는 2014년 11월 약 2주간 진행됐다. 설문 내용은 크게 한국 입국 전 한국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이고 한국에 대한 기대 수준은 어땠는지, 입국 후 체류 만족도와 애로사항, 향후 계획은 어떠한지 등 세 부문이었다.

    야근 등 ‘일과 삶의 균형’ 불만족



    외국인 전문 인력이 한국 이주를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무엇일까. 이들 전문 인력은 보상이나 업무 내용에 끌려 한국 이주를 결정하기도 했지만, ‘발전 가능성’을 가장 중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한국에서의 취업 경험이 본인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국인 전문 인력의 커리어 구축에 도움이 될 만한,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향후 외국인 전문 인력 유치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는 긍정적인 결과다. 입국 전 한국에 대한 기대 수준도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중 절반 이상(54%)이 한국에 대한 기대 수준이 매우 높거나 높은 편이었다고 답한 대목이 그렇다.

    이주 후에도 다행히 이들은 대부분 한국 생활에 어느 정도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5명 중 1명은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데 ‘매우 만족’했으며, ‘상당히 만족’한다는 응답도 절반에 가까운 48.7%에 달했다. 단, 세부 항목별로는 만족도가 엇갈렸다. ‘보상’ ‘업무 내용’ ‘발전 가능성’ 등에 대한 외국인 전문 인력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지만, ‘기업 문화·가치’ ‘근무처 내 소통’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서는 불만족 비중이 높았다. 경직된 근로 문화와 언어 장벽에 의한 고립, 일상적인 야근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기존 외국인 노동자들의 지적과 일맥상통한다.

    “한국살이 만족하지만 빡빡해요”
    그 가운데서도 외국인 전문 인력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은 ‘일과 삶의 균형’이었다.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고 응답한 사람이 5명 중 1명꼴로 나타났고, ‘상당히 어렵다’는 응답도 다수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언어’ ‘배우자 취업’ ‘자녀교육’ 등도 이들이 큰 어려움을 겪는 항목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정이 있는 외국인 전문 인력은 가족과 함께 살 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자녀가 다닐 만한 국제학교가 부족하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어 사용이 보편적이지 않은 한국 사회의 특성상 다수 응답자가 언어로 인한 불편함을 거론했다. 구체적으로는 공공장소 표지판과 안내판에 영어 표기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고, 외국인 편의를 위한 관공서나 이들 기관의 인터넷 웹사이트마저 영문 정보 제공이 부족하고 안내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불만도 나왔다. 한 예로 국내 최대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아직 영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외국인이 한국 생활과 관련한 정보를 얻는 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외국인 전문 인력은 여러 지원 제도 가운데 ‘언어 훈련’이 한국 생활에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응답했다.

    외국인 전문 인력의 향후 체류 계획을 보면 대부분 3년 이상 한국에 체류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10년 이상 체류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도 5명 중 1명꼴로 적잖은 편. 하지만 체류 기간 종료 후에는 절반 가까운 수가 출국을 계획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러한 경향은 나이가 젊을수록, 특정 활동 자격(E-7 비자 : 일반적으로 전문 학사 학위 이상이나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외국인 전문 인력으로 국내 공사 기관과 근로 계약을 맺고 취업하려는 자에게 주어지는 체류 자격) 소지자일수록 높았다.

    외국인 대상 서비스 개선 노력 필요

    외국인 전문 인력이 출국을 결심하는 계기는 다양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기업 문화·가치’가 단연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다. 상하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발언권과 의사결정권이 제한적인 국내 근로 문화에 적응하기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 ‘평가 및 승진’ ‘근무처 내 소통’ ‘상사 및 동료’ 등 근무지 관련 문제로 출국을 결정하게 됐다는 응답도 많았다. 한국 특유의 근로 문화가 외국인 전문 인력에게 얼마나 친화적인지 돌아보게 하는 데이터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향후 10년간 신규 인력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2023년에는 고졸자 210만 명, 대졸자 30만 명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러한 인력 부족 사태에 대비하려면 지금부터라도 외국인의 체류 여건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들 전문 인력이 한국에 쉽게 적응해 체류할 수 있도록 정부의 사회통합교육(언어 훈련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및 활성화하는 한편, 전문 인력과 그 가족을 위한 합리적인 거주지 마련이나 배우자의 취업 기회 알선, 자녀교육 등을 지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근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한국을 떠나기로 결정하는 사례를 줄이려면,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해줄 수 있는 업무 환경 개선과 유연한 기업 문화 구축이 선결돼야 할 것이다. 각 정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외국인 대상 서비스의 양적, 질적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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