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1

2014.01.13

피해자 상대 소멸시효 주장 기가 막혀

국가의 불법행위

  • 남성원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4-01-13 11:4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피해자 상대 소멸시효 주장 기가 막혀

    법원은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국민의 손해배상 청구에 소멸시효를 주장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수십 년 전 군대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뒤 정신병에 시달려온 50대 남성에게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군대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다면 이로 인한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법리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안의 경우 이미 수십 년 전 가혹행위가 벌어졌고, 법률에는 소멸시효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정상적이라면 원고의 피해배상 청구를 배척하는 것이 원칙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 재판부는 소멸시효 주장을 배척하고 피해 남성에게 국가가 2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1980년 4월 입대한 박씨는 부대에 배치된 후 동작이 느리다며 선임병에게 자주 맞았다. 수시로 가혹행위를 당한 박씨는 이후 말을 못하는 이상증세를 보였고 조울증, 다중인격장애, 간질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입대 5개월 만에 의병 전역하고 정신분열 진단을 받았으며, 일상생활을 전혀 하지 못한 채 병원과 요양원을 전전했다. 박씨는 지금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받고 있다고 한다.

    권리가 발생했다 해도 10년 동안 이를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한다는 것이 소멸시효 제도의 원칙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법언에 따라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오래되면 기성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 사회질서 유지에 바람직하다는 취지에서 만든 제도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의 경우 불법행위가 있은 뒤 10년, 피해자가 불법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이를 청구하지 않으면 권리가 소멸한다. 특히 국가를 상대로 한 권리 주장에는 5년이라는 단기 시효가 적용된다.

    그러나 그동안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불법행위를 저질러놓고, 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에게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 재판부도 이러한 취지로 박씨가 정신병 증세 때문에 소송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봤고, 군대 사고를 방지할 책임이 있는 국가가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배상하지 않는 것은 신뢰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결론적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상 국가가 박씨에게 충실한 배상을 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는 오랫동안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을 통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국가에 의한 피해 진상을 일부 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진상이 규명되었음에도, 이미 오래된 일이라는 이유로 소멸시효 제도에 막혀 피해자가 실제로 배상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 왔다. 진상규명의 증거가 되는 자료들을 국가가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등 피해자가 배상청구를 하지 못할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고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도 있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였다.

    군대와 같이 권력을 가진 국가조직으로부터 불법행위를 당한 국민이 관련 증거를 확보해 승소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가가 잘못했다면 피해자에게 응당 사죄해야 한다. 사죄는 하겠지만 오래된 일이라 배상은 해주지 못하겠다는 태도는 국가가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배상청구에 대해 국가가 소멸시효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입법안까지 나왔으나 성사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국가가 권력기관으로부터 피해를 입고 소송을 낸 사람을 상대로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지금의 태도는 시정돼야 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