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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Ⅰ장성택 실각 미스터리

“이권싸움서 내각 패배 주도권은 강경 군부로”

“이권싸움서 내각 패배 주도권은 강경 군부로”

그야말로 폭탄이었다. 12월 3일 갑작스레 전해진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 소식. 정권의 명실상부한 2인자이자 ‘섭정왕’으로까지 불리던 그의 실각설은 북한 향방을 지켜보는 모든 이에게 충격과 혼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김정은 체제가 과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가까운 시일 안에 붕괴되는 것은 아닌지 다양한 관측이 쏟아져 나왔다.

충분한 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만큼 전문가의 시각도 크게 엇갈린다. 장성택의 실각이 평양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 산물이며 군부와 당 관료 간 갈등이 극대화된 결과라는 시각이 한 축이라면, 거꾸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1인 권력의 절대지배체제가 공고해지는 과정이므로 체제 안정성은 오히려 증가하리라는 시각이 다른 한 축이다. ‘주간동아’는 각 견해를 대표하는 두 전문가의 분석을 함께 싣는다. <편집자 주>


먼저 알려진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보자. 장성택이 실각한 것으로 전해진 시점은 2013년 11월 중순 무렵이다. 그가 이끌던 조선노동당 행정부의 이용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공개 처형됐다는 게 정보당국이 확인했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다. 장성택 본인과 부인인 김경희 조선노동당 비서의 ‘신변’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갈등 극대화하다 결국 폭발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그간 장성택이 주도하는 민간당료 계열과 군부 사이에 권력과 이권 배분을 놓고 치열한 투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장성택의 실각은 2009년부터 본격화한 이 투쟁에서 그가 종국적으로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4년여 기간에 두 세력은 권력과 이권 배분을 놓고 주도권을 잡기도 하고 놓치기도 했다. 이를 크게 네 시기로 나눠 관찰할 수 있다.



첫째 시기는 2009년 초~11월이다. 이영호 조선인민군 총참모장과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권력이 현저히 강화되고 아울러 군부에 이권이 몰리던 시기다. 두 번째 시기는 2009년 11월~2010년 11월이다. 2009년 11월 화폐교환조치를 전후해 군부의 무역활동이 대대적으로 제한당하고 아울러 군부가 이에 저항하던 시기다. 세 번째 시기는 2010년 11월~2011년 말이다. 이 시기 군부와 정찰총국이 북한 광물자원을 ‘싹쓸이’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무역활동이 증대했다. 그와 동시에 군부 기관들끼리, 혹은 군부와 다른 기관들 사이에 수출 원천 탈취 경쟁이 격화됐다.

마지막으로 넷째 시기는 이 글에서 자세히 들여다볼 2011년 말부터 현재까지다. 그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군부의 패퇴와 반격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군부의 무역활동이 현격히 제한당하는 한편, 각종 경제이권이 장성택에 집중했다. 이러한 흐름은 결국 군부뿐 아니라 민간 내부에서도 장성택 반대세력을 결집시킨 원인으로 작동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2011년 11월 말 장성택이 장악한 합영투자위원회는 그간 군부 산하 강성무역회사가 차지하고 있던 나진항 개발사업 이권을 넘겨받았다. 김정은의 2012년 1월 1일 방침을 통해 북한 전역에서 어로작업이 중단됐고, 양어·양식사업 강화 방안이 하달됐다. 수산물 수출은 전통적으로 군부가 장악하던 분야였다. 아울러 2012년 초 장성택이 지휘하는 조선노동당 행정부의 감독을 받는 인민보안부는 군부가 관장하던 금광 개발권과 대동강 과수농장을 차지했다.

“이권싸움서 내각 패배 주도권은 강경 군부로”
양측 권력투쟁의 2차 변곡점

김정은은 2012년 4월 6일 당 중앙위원회 연설에서 “내각을 경제사령부로 할 것”을 요구했다. 5월 초에는 군부가 주도하던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 해체되고, 그 대신 내각 소속이면서 장성택이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외자 유치기구 합영투자위원회가 확대 개편됐다. 김정은은 5월 14일 내린 방침을 통해 “향후 경제개혁은 당이 주도하고 군부는 외화벌이 등에 관여하지 마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침에 입각해 군 외화벌이 계통을 전부 내각에 넘기는 조치가 시작됐다. 6월 28일에는 ‘우리식의 새로운 경제관리방법’, 이름 하여 ‘6·28방침’이 나왔으며, 관련 조치가 빠른 속도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 15일, 당 정치국회의를 통해 이영호 총참모장이 전격 해임됐다. 해임 사유 가운데 하나는 ‘군부의 외화벌이 사업을 내각으로 이전한 것에 대한 불만 표출과 개인비리’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렵부터 무역권한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군부 측 반발과 이에 대한 제압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가 양측 갈등의 1차 변곡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2013년 중반까지는 극히 이례적일 정도로 강도 높은 군부재편 작업이 진행됐다. 2012년 8월부터 2013년 중반까지 군부 핵심 보직이 빈번히 교체됐고, 군 장성들의 잦은 강등(8명)과 복권(4명)이 발생했다. 또한 2013년 상반기 군부 내에서 70대 노장파가 전원 교체됐으며, 5월에는 50대인 장정남이 인민무력부장으로 임명됐다.

2013년 2월 무렵에는 ‘당생활지도소조’가 전군에 파견돼 군 내부의 외화벌이 관련 이권남용을 중점적으로 살피는 전면 감찰을 벌였다. 각 지방군뿐 아니라 총참모부,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내부의 외화벌이 사업 관련 파벌과 족벌이 줄줄이 징계를 당했고, 이에 따라 상당한 폭의 간부 교체작업이 진행됐다. 군부의 패퇴가 명확해 보이던 시기다.

2012년 12월 장거리미사일 발사 시험, 2013년 2월 3차 핵실험, 그 후 4월까지의 이례적인 긴장고조 정책은 이러한 군부 교체작업의 와중에 이뤄진 것이었다. 특히 3월 무렵부터는 군량미(전시비축미)가 방출돼 2013년 북한 전역의 쌀값 하향안정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9년 11월 화폐개혁 직후 군부가 군량미 방출을 비토했던 것과 대비되는 사건이다. 군부로서는 수모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할 만큼 극적인 사건이었다.

장성택의 갑작스러운 실각 소식은 이렇듯 민간당료 계열의 권력 강화와 군부세력 약화가 자못 명확해 보이던 와중에 튀어나왔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의 실각 자체가 매우 드라마틱한 반전에 의한 것일 개연성이 높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는 그전까지 장성택이 주도했던 갖가지 정책이 지지자만큼이나 많은 반대파를 만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장성택이 고립되고 궁극적으로 축출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장성택과 그의 측근 세력으로 이권이 집중하는 것에 대한 평양 권력 엘리트들의 경계와 반발, 둘째 설익은 정책으로 관료와 주민을 이반했다는 의구심, 가장 결정적 이유는 군부 이권을 조직적으로 침해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이렇게 보면 장성택의 실각은 2012년 7월 이영호의 갑작스러운 해임과 완전한 대칭점에 서 있는 사건이고, 2011년 말 이후 양측 권력투쟁의 2차 변곡점에 해당한다. 앞으로의 파장이 염려스러운 이유다.



주간동아 2013.12.09 916호 (p40~41)

  • 박형중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 dpblue@kin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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