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5

2013.04.29

브라질 빈민가 ‘벽화 운동’ 살가운 관광명소로 탈바꿈

네덜란드 그래픽디자이너 쿨하스와 유한

  • 고영 소셜컨설팅그룹 대표 purist0@empas.com

    입력2013-04-29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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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보기 싫고 지저분한 곳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발도 대고 싶어 하지 않은 강한 거부감. 그렇게 여기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곳은 영원히 바뀔 수 없는 장소가 되고 만다. 정부가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골칫덩어리로 남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곳을 사랑과 영혼으로 채운 두 예술가가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는 빈부 격차가 심한 도시였다. 각계각층의 시민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부자들이 사는 앙그라(Angra)와 빈민들이 거주하는 파벨라(Favela)는 물과 기름과도 같은 곳이었다. 특히 파벨라는 미로 같은 복잡한 구조 때문에 세계 수많은 범죄자가 은둔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영화에서 한 번쯤 봤음직한 이곳은 갱단을 소재로 한 영화의 단골 무대였다. 놀랍게도 리우데자네이루에는 이런 파벨라 지역이 수백 개나 됐다.

    마을청년들 모아 10㎢ 넘게 그려

    2005년 브라질을 여행하던 두 친구는 네덜란드의 청년 아티스트였다. 예룬 쿨하스와 드레 유한. 이들은 파벨라에 사는 수많은 거주자가 불안과 공포에 노출됐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식사 도중에 터지는 총성과 옆집에서 날아온 수류탄은 공포를 넘어 지옥 그 자체였다.” 무장 조직이 촘촘히 은둔해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데다, 함부로 총격전을 벌였다간 민간인만 살해되는 상황이라 시정부조차 어찌할 수 없었다. 이런 파벨라가 관광도시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두 친구는 용기를 내 판자촌인 그 지역을 걸어 다니며 변화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배우지도, 일하지도 못하는구나. 늘 범죄를 보고 살면서 어른들과 비슷한 인생을 사는구나.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 눈에 비친 집들은 마치 거미줄처럼 얽히고, 담쟁이처럼 경계가 불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집과 벽을 보자 이것으로 모자이크를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화다, 벽화! 뭔가 하나로 느끼게 만들 수 있는 벽화.”

    쿨하스와 유한은 자신들이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들은 참조할 만한 세상의 많은 벽화를 인터넷에서 훑어봤다. 그리고 영감을 얻었다. 미국의 여러 벽화를 보면서 벽화예술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머릿속에 수많은 이미지를 잡아가면서 페인팅 도구와 작업복을 챙겼다. 하지만 파벨라의 넓이는 10km2가 넘었기에 청년 두 명이 감당하기엔 어려웠다. “모여야 한다. 외부인인 우리가 변화시키기보다 이곳에 사는 이들의 손으로 변화를 이뤄야 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변화가 가능하다.” 그러곤 페인팅에 관심 있는 마을 청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문화의 힘으로 확대, 연 10만 명 발길

    브라질 빈민가 ‘벽화 운동’ 살가운 관광명소로 탈바꿈

    빈민가 ‘파벨라’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쿨하스와 유한은 마을 청년들에게 페인팅 교육을 시작했다. 무턱대고 그들이 먼저 그리면서 따라하라는 식이거나 이것저것 마음 내키는 대로 해보라는 식이 아닌, 체계적인 교육으로 마을 전체 그림을 함께 그렸다. 모두에게 비전을 제시했던 것이다. 그렇게 교육에 참가한 청년들은 무지갯빛 마을을 꿈꾸기 시작했다. 사람 얼굴이 있는 벽, 나무와 숲을 그린 벽, 서로 악수하는 벽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품은 벽들이 생겨났다. “벽과 벽이 교감하게 만들어야 하나의 스토리가 완성된다. 우리는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으려 모인 것이지, 단지 벽에 페인팅을 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다.”

    벽이 바뀌면서 후원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인 청년 예술가 두 명의 활동에 브라질 부자들이 관심을 내비쳤다. 특히 방향을 잃고 있던 파벨라 지자체의 지원이 이어졌다. 더 많은 붓과 페인트, 더 많은 음료와 작업복, 더 많은 구조물과 안전장치, 더 많은 기자의 취재와 보도가 이어지면서 꿈에 그리던 캠페인이 됐다. 놀라운 것은 범죄율이 급격히 줄었다는 점이다. 범죄에 빠져들었던 청년들이 총이 아닌 붓을 들고, 군복이 아닌 작업복을 입었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총성이 울리던 곳은 어느덧 안정을 찾아갔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 쿨하스와 유한은 단지 비어 있는 공간에 집중했고, 자본의 힘이나 권력의 힘보다 문화의 힘이 더 위대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그들의 철학은 범죄율을 25% 수준으로 떨어뜨리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낙담했던 현지인들도 더는 ‘안 된다’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 경험하며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법을 알게 됐다. 2009년부터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와 벽화를 카메라에 담았고, 지금은 한 해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외지인들은 이곳이 살벌한 범죄 소굴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무지개는 따로 떨어져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한데 뭉쳐 떨어져 있는 곳을 연결할 때 눈부신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

    파벨라가 변하면서 리우데자네이루 외 도시들에 있는 슬럼가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두 아티스트는 자신들이 가진 페인팅 기술을 통해 좀 더 많은 사람과 하나의 느낌으로 브라질 전역과 전 세계 수많은 슬럼가에 벽화를 그리고 나누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좀 더 찾아보기 힘들고 좀 더 의미 있고 좀 더 다르게 마을을 꾸몄을 뿐이다. 그래야 놀라운 다른 마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미력하게나마 더 많은 아름다운 마을을 브라질을 넘어 전 세계로 펼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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