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0

2013.03.25

특명! 북핵 중간고리 타격하라

김정은-핵미사일 격리시켜야 군사전략 무력화 별개 편제 전략로케트군 김락겸에 특히 주목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3-03-25 11: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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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핵 공격이 임박했다는 시그널이 주변국 정보당국 모든 감시체계에서 일제히 울리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대상이 서울이 될지, 미국 워싱턴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발사 가능 예상시점까지 주어진 시간은 70분. 평양이 대규모 핵 보복을 감수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낙관론과 최악의 시나리오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현실론이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에서 난무한다. 이런 상황이 닥치면 한국군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차 핵실험 이후 ‘기정사실화’ 단계에 접어든 북한의 핵 능력을 제압하는 일은 분명 간단치 않다. 주요 부대 간 통신 감청과 핵심 무기체계 이동 상황 파악 등을 통해 사전에 징후를 파악하는 일은 일정 부분 가능하지만, 이를 곧장 선제타격으로 연결하기엔 여러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물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공격하는 일이다. 하지만 일촉즉발 상황에서 김정은이 있는 위치를 정밀히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데다, 개마고원 지하 깊이 건설한 특각에 은신할 경우 뚫고 들어갈 무기체계 또한 마땅치 않다.

    효과기반작전의 위력

    미사일 발사시설을 타격하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지하에 사일로(Silo) 형태의 비밀기지를 마련해놓았을 개연성이 있는 데다, 남한을 사거리 안에 두는 스커드 계열이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은 이미 이동식 발사대에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모두를 실시간으로 추적해 동시에 파괴하는 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불어 아무리 징후가 임박했다고 해도 이러한 타격이 선제공격에 대한 국제법적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도 고스란히 남는다. 물론 북한의 핵 도발이 실제로 임박했다는 징후가 명확하다면 한미 양국이 이에 구애할 공산은 적지만, 여전히 좀 더 ‘스마트한 대안’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극단적 상황이 임박했다고 판단할 경우 한국군이 택할 현실적 카드는 과연 무엇일까. 이를 따져보는 데 필요한 개념이 이른바 효과기반작전(Effect Based Operation·EBO)이다. 목표물부터 정하는 기존 작전개념과 달리, 해당 타깃이 실제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에 중점을 두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상대 무선통신시설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계획에서, 실제 무전기를 파괴하는 대신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설비나 전신주 같은 연결고리를 타격해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개념이다. 1990년대 미군 합동전력사령부(JFCOM)를 중심으로 시작된 이러한 작전 설계는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 군에서도 적극적으로 차용하기 시작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군 당국 내부에서는 EBO 개념을 활용해 북한 핵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심도 깊게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 서두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북한 핵무기의 경우 ‘가장 결정적인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EBO 작전에서 흔히 ‘노드(node·결절점)’라고 부르는 연결고리에는 많은 요소가 포함된다. 최고수뇌부와 발사시설을 잇는 명령체계 선상의 조직이나 인원은 모두 노드가 될 수 있다. 핵 발사명령 체계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확인하고, 이를 담당하는 조직과 인원을 식별한 다음, 이들이 사용하는 통신체계 회선이나 전기공급시설의 물리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면 북핵에 대한 EBO 작전 준비는 마무리되는 셈이다. 김정은 제1비서가 아무리 발사명령을 내려도 실제 발사부대에서 이를 전달받을 수 없게 만드는 게 ‘연결고리 끊기’의 최종 목적이다.

    문제는 첫 단계인 북한의 핵 발사명령 전달체계를 파악하는 일부터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발사명령을 내릴지 말지를 논의하고 결정해 발효하는 단위가 어디인지부터 정확하게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기존 핵보유국의 경우, 지도자 1인이 착각이나 정신이상에 의해 잘못된 발사명령을 내리는 것을 막으려고 많은 안전장치를 구비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2인 원칙(Two-man Rule)’이다. 대통령의 발사명령이 국방부 장관 확인을 거친 후에야 발사부대에 하달되는 형식이다. 러시아 경우는 국방부 장관과 총참모장 두 사람의 확인을 통해 발사명령이 발효된다.

    더욱이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는 발사 여부를 결정하는 논의체계 자체를 매우 엄격히 구성해놓고 있다. 옛 소련의 경우는 공산당 정치국, 중국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인도는 총리가 주재하는 내각안보위원회 정치회의가 논의 주체가 된다. 집단지도나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강조하는 해당 국가의 정치적 특성이 고스란히 투영된 구조다. 이렇듯 결정 과정 자체가 까다롭다면 여기에 참여하는 고위인사 1~2인을 제거하거나 통신을 어렵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핵무기 발사를 늦출 수 있다. 협의체를 통해 결정되는 구조라면 아예 회의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드는 것도 EBO 목표가 된다.

    그러나 ‘수령 유일영도체제’를 강조하는 북한 경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비공식적 논의는 역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나 산하 실무협의회 등을 통해 진행할 개연성이 높지만, 공식 결정 자체는 김정은 제1비서에게 전적으로 위임해놓았을 공산이 크다. 인민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은 한 사람만 결심하면 곧바로 발사명령이 발효될 수 있으리라는 의미다. 최고지도자의 실수나 정신이상을 의심해 다른 누군가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 서방 시스템은 평양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발사명령 지휘계통 파악

    특명! 북핵 중간고리 타격하라

    주한미군이 대북 감시 임무에 활용하는 고공정찰기 U2가 3월 15일 오후 경기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 착륙하고 있다.

    다음으로 살펴봐야 할 부분은 김정은 제1비서의 명령이 발사부대에 전달되는 지휘계통이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의 발사명령은 워싱턴 국방부청사(펜타곤) 지하에 있는 지휘통제센터(NMCC)로 날아가고, 여기서 다시 국내외 미사일 기지와 공군기지, 오대양 곳곳의 핵잠수함 등으로 전달된다. 러시아도 대통령의 최종 명령이 총사령부를 거쳐 발사부대로 하달되는 구조. 반면 중국은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발사 결정을 전략미사일을 담당하는 제2포병 사령부로 곧바로 연결하는 단순한 체제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선을 줄임으로써 발사시간을 단축하고 취약점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이렇게 볼 때 북핵을 제압할 EBO가 주목할 첫 연결고리는 미사일 발사를 관장하는 조직의 사령관이다. 중국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북한의 핵전략 특성상 중국 모델을 벤치마킹했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 예를 들어,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012년 임명된 것으로 전해진 김락겸 전략로케트군 사령관이 이 구실을 맡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기존의 미사일 지도국을 재편해 창설했다는 이 사령부는 형식상으로는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지만, 실제로는 별개 편제로 구성된 최고사령관 직할부대일 것이라고 정 위원은 관측했다. 비록 총참모부가 전시에 최고사령부 구실을 맡게 되고 핵 발사명령 또한 최고사령관 명의로 나오겠지만, 현영철 총참모장이나 최부일 작전국장 등을 거칠 개연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의 발사명령이 김락겸에게 직접 하달된다고 가정하면, 이 두 사람을 연결하는 비상통신망 구성이 다음 관심사다. 다시 기존 핵보유국 사례를 보면, 미국이나 러시아는 각각 ‘풋볼(Football)’과 ‘체겟(Cheget)’이라고 부르는 발사통제장치를 서류가방 형태로 만들어 대통령 주변에서 24시간 동행케 하는 체제를 만들어놓았다. 발사버튼과 암호, 주요 핵무기 내역 등으로 이뤄진 이 장치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에도 대통령전용기 통신설비와 인공위성을 통해 NMCC나 총사령부에 발사명령을 보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반면 북한의 경우 이렇듯 정교한 시스템을 구축하지는 못했으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만 해도 1990년대 후반까지 핵무기를 통제하는 통신 네트워크가 초보적 수준이었다는 게 서방 측 전문가들의 분석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까지 중국은 군용 통신선과 민간 통신선을 동시에 활용하고 무선과 유선을 혼용하는 방식으로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발사명령을 제2포병 사령부로 연결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김정은과 김락겸을 잇는 통신선 역시 기존의 군용 통신망을 활용하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민간 통신망 동원 방안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구축됐으리라 보는 이유다.

    따라서 이들 통신선을 잇는 중간 기지국과 주요 케이블의 전신주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진다. 이들 전선을 동시에 끊을 수 있다면 발사명령을 상당 기간 차단할 수 있는 까닭이다. 또한 이러한 설비를 관리하는 책임을 어느 조직에서 맡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만일 이를 김정은 일가의 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사령부가 담당한다면 이들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핵 발사명령의 전달을 어렵게 할 수 있다. 해당 부대의 전력공급설비나 주요 구성원이 핵심 노드가 되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 전략로케트군 사령부와 최종 발사부대를 잇는 네트워크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극저주파 통신을 이용해 NMCC에서 핵잠수함으로 발사명령을 전달하는데, 역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기지국 여러 개를 세계 곳곳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감안한다면 북한 또한 군용 망과 민간 망을 가리지 않고 복수의 경로를 통해 전략로케트군 사령부와 각급 발사부대를 연결해놓았을 개연성이 크다. 위성 등으로 이들 통신망의 구체적 위치를 식별하고 교신량을 꾸준히 모니터링하면 3월 키리졸브 훈련 같은 ‘비상상황’에서 어느 통신선이 주로 가동되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을 버는 싸움

    한미연합사령부(연합사)는 이렇듯 핵을 포함해 북한 군사전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다양한 노드를 선정하고 그 좌표를 확인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도합 수만 개 규모로 알려진 이들 표적 목록은 주로 주한 미7공군 사령관이 겸임하는 공군구성군사령관과 한국군 장성이 맡는 부사령관이 주도하는 연합사 내부 회의체를 통해 결정된 후 연합사령관에게 최종 승인을 받는다. 특정 기지 사령부 건물에서 보강공사를 진행했다는 영상이 확인되면 그만큼 두터워졌을 방호벽을 감안해 타격할 무기체계 종류와 위력도 상향 조정하는 식으로 계속 업데이트된다.

    주로 항공 전력이 담당할 이러한 작전이 실제 전개될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EBO는 대부분 완전히 파괴하기보다 길게는 수일, 짧게는 수십 초 남짓 ‘시간을 버는’ 작전이다. 물론 그 짧은 순간의 차이가 한반도 운명을 가르게 되리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북한 핵 문제가 드리운 긴장의 그림자가 압도적이긴 해도 생각보다 많은 약점이 숨어 있는 것 역시 사실이며, 한미 군 당국이 이를 목표로 다양한 대응책을 준비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핵 위협에 대응할 카드가 우리라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핵 보유만으로 평양이 ‘절대 안보’를 구가할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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