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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독일 너마저도…” 유럽의 장탄식

EU 재정위기 우등국가 독일·프랑스까지 번질 조짐

“독일 너마저도…” 유럽의 장탄식

2004년 인구 약 5억 명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27개국은 유럽연합(EU)을 출범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5%가 넘는 거대 경제권이 출범했을 때만 해도 EU 앞날은 더없이 밝았다. EU가 조만간 미국을 제치고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 되리라는 전망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올해도 마이너스 성장 불가피

하지만 출범 9년이 지난 2013년 현재 유럽 분위기는 좋지 않다. 바로 잦아들 줄 모르는 재정위기 후폭풍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여진이 가시기도 전인 2010년 4월 그리스의 구제금융 신청에서 비롯된 유로존(EU 가입국 중 유로화를 사용하는 17개국) 재정위기, 즉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의 막대한 국가부채와 높은 실업률에 따른 혼란 상황이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재정적자가 남유럽 일부 국가의 일시적 위기일 것이라는 초기 전망과 달리 유럽 재정위기는 독일, 프랑스 등 EU 내 우등생 국가로도 서서히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세계경제의 성장 동력을 끌어내리고 있다.

2012년 4분기 유로존 GDP 증가율은 -0.6%였다. 세계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 1분기 -2.8%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다. 경제계에서는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이어지면 ‘경기침체(recession)’로 평가한다. 즉, 올해 1분기에도 유로존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유럽은 금융위기 이후 다시 경기침체에 빠져드는 셈이다.



상황은 좋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월 말 ‘2013년 세계경제전망 수정 보고서’를 통해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0.2%보다 낮은 -0.2%로 대폭 낮췄다. 개별국 및 EU 차원의 정책 대응 강화로 그리스의 국가부도(디폴트) 같은 극단적 위험이 발생할 개연성은 줄었지만 실업률 증가, 유럽 각국의 더딘 구조조정 속도, 유로존 국가 가운데 경제 상황이 가장 좋은 독일의 성장률 둔화 우려 등이 악재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독일 너마저도…” 유럽의 장탄식
IMF는 올해 독일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9%에서 0.6%로 낮췄고, 프랑스와 영국 성장률 전망치도 각각 0.1%p씩 하향했다. 재정위기 진앙지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마이너스 성장이 심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IMF는 올해 이탈리아 경제가 -1.0%, 스페인 경제가 -1.5%씩 성장하리라고 예상했다. 기존보다 각각 0.3%p, 0.2%p씩 악화한 수치다.

2월 14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도 올해 유로존 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0.3%에서 ‘제로(0)’로 낮췄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유로존 재정위기 여파에서 벗어난 듯하던 독일도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면서 “유로존의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당분간 취약한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사람, 포르투갈 사람, 그리스 사람이 술집에 갔다. 과연 누가 술값을 냈을까. 정답은 바로 독일 사람이다. 유럽 재정위기 이후 유행한 이 농담은 유럽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돈 내는 사람 따로, 쓰는 사람 따로’

재정위기가 닥친 후 유럽 각국 정상들은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라는 구제기금을 마련해 부도 위기에 놓인 국가에 돈을 빌려주는 식으로 급한 불을 꺼왔다. 문제는 이 기금 마련이 독일, 프랑스 주도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약 7500억 유로(1092조 원)에 달하는 두 기금의 최대 출연국인 독일에서는 “일도 안 하고 놀기만 하다 부도 위기를 맞은 그리스 사람을 위해 왜 우리 세금을 써야 하느냐”는 불만이 높다.

유럽 재정위기의 또 다른 해결 수단으로 평가받는 유로본드(유로존 국가가 공동 발행하는 국채)에 대해 독일이 떨떠름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 규모 및 재정수지가 판이한 독일과 그리스가 발행한 국채가 동일한 금리를 지닌다는 것은 경제학 논리 측면에서 맞지 않을뿐더러, 각 나라가 같이 유로본드를 발행해도 결국 궁극적인 상환 위험은 독일이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유로존 내 경제 격차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탈리아 GDP는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까지 6%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독일 경제 규모는 8% 커졌다. 실업률 차이도 극명하다. 지난해 말 현재 그리스와 스페인 실업률은 각각 26.8%, 26.6%에 달한다. 반면, 독일 실업률은 5.4%다.

이처럼 EU 각국의 경제 상황과 재정위기 타결 방식이 판이한 데다, EU 자체가 화폐만 같이 쓰는 느슨한 경제공동체이다 보니 위기를 타개할 만한 강력한 리더십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많은 경제전문가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로존 재정위기가 이어지리라고 예측하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남유럽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독일, 프랑스 등은 구제기금을 출연하면서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재정, 금융, 복지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최근 남유럽 각국에서는 어려운 경제상황에 불만을 품은 국민을 등에 업고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만 남발하는 정치인이 득세한다.

2월 24~25일 총선을 치른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이탈리아 우파 정당 자유국민당을 이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재산세를 즉각 폐지하고, 지난해 걷은 재산세 40억 유로(약 5조8000억 원)를 즉시 돌려주며, 어떠한 부유세도 도입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약진하고 있다. 이는 마리오 몬티 총리가 추진해온 긴축정책과 완전히 대치된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은 “베를루스코니의 공약은 일종의 복권 수준”이라고 꼬집었지만, 자유국민당은 선거 막판 돌풍을 일으키며 몬티 총리가 이끄는 중도 연합과의 지지율 격차를 2~3% 내로 줄였다.

스페인에서는 개혁 작업을 진두지휘하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와 집권당이 수십 년간 불법 정치자금을 모금한 의혹이 제기돼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상태다. 만일 비자금 스캔들로 라호이 총리가 실각하면 개혁 동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고, 현재 스페인 정가에 마땅히 그를 대신할 만한 인물도 없어 세계 금융시장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 와중에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선진국에서는 높은 세금, 지지부진한 경제 상황에 실망해 자발적으로 이민을 가는 고급 두뇌가 늘고 있다.

개혁 느린 남유럽, 포퓰리즘까지 득세

최근 영국 내무부는 영국에서 태어난 사람 가운데 현재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이 총 470만 명이라는 이민 통계를 내놨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470만 명에서 절대다수인 93%가 노동가능 인구인 64세 이하라는 점. 즉 은퇴 후 싼 생활비를 찾아 해외로 가는 게 아니라,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영국을 떠나는 사람이 대부분인 셈이다.

프랑스에서는 세계 4위 부호인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뷔통 모에 에네시(LVMH) 회장, 유명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 등 부자를 중심으로 ‘세금 망명’이 유행이다. 두 사람은 각각 벨기에, 러시아로 국적을 변경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고소득자에게 소득세 최대 75%를 부과하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부자 증세 정책에 반발해 지난해 벨기에 국적을 신청한 프랑스인이 2011년보다 2배 늘어난 126명이라고 보도했다.

벨기에 한 금융인은 “과거에는 1000만 유로(약 145억 원) 정도 자산을 보유한 사람이 주로 벨기에로 왔지만, 요즘은 400만~500만 유로 자산가의 문의도 많다”면서 “부유세를 피해 벨기에로 오는 프랑스인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국, EU에서 탈퇴하나

“국민투표로 결정” 캐머런 총리 연이은 강수


“독일 너마저도…” 유럽의 장탄식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가뜩이나 어두운 유로존 경제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드는 요인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하는 신조어 ‘브렉시트(Brexit·Britain+exit)’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1월 23일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면 늦어도 2017년까지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아 있을 것인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겠다”고 공식 밝혔다.

EU에서 섬 같은 존재인 영국은 지리적으로만 유럽 대륙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심정적으로도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유로를 쓰는 다른 EU 국가와 달리 여전히 자국 화폐인 파운드를 고수하는 게 대표적이다. 가뜩이나 EU에 대한 결속력이 느슨한 영국이 유럽 전체가 어려움에 빠진 상황에서 자국만 살자고 EU 탈퇴를 공식화하자 독일과 프랑스를 위시한 EU 국가들은 단단히 화가 났다.

로랑 파비위스 프랑스 외무장관은 “EU라는 축구팀에 참가해 영국 혼자 럭비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그는 캐머런 총리가 부유세 때문에 프랑스를 떠나겠다는 프랑스 부호에게 “영국에 오면 레드카펫을 깔아서 환영하겠다”고 한 표현에 빗대어 “영국이 EU를 떠나면 우리가 레드카펫을 깔아주겠다”고 한 방 날렸다. 기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도 “EU 소속국이 한 배를 탄 상황에서 좋은 것만 골라먹겠다는 영국의 ‘체리피킹(Cherry picking)’ 행위는 적절치 못하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급기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캐머런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은 EU 안에서의 강력한 영국을 높이 평가한다”며 브렉시트를 말렸다. 해외 직접투자 축소, 수출시장 감소 등을 우려한 영국 재계 반발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캐머런 총리가 강수를 들고 나온 이유는 재집권 때문이다. 그가 소속된 영국 보수당은 2011년 13년 만에 정권을 잡는 데 성공했고 4년 만에 이를 넘겨줄 수 없다는 절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보수당 주류 세력은 “유럽 재정위기로 유로화가 아니라 파운드화를 쓰는 게 낫다는 점이 증명됐다. EU 가입이 장기적으로 회원국 간 정치적, 경제적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한다는 믿음도 희박해지고 있다”는 논리를 들어 브렉시트를 강하게 지지한다.

영국 국민의 EU 탈퇴 여론도 높아지고 있다. 영국 유명 일간지 ‘가디언’과 여론조사업체 ICM 폴이 올해 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51%가 EU 탈퇴에 찬성했다. 반대 응답자 40%보다 많다.

전문가들은 국가 대 국가 간 정치외교 협상이 아니라, 여론에 휘둘리기 쉬운 일반 국민의 찬반투표를 통해 브렉시트 여부를 결정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영국 행보에 우려를 나타낸다. 재집권하려고 초강수를 던진 캐머런 총리가 진짜 국민투표를 실시할지, 영국인이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전 세계가 주시하는 이유다.




주간동아 2013.02.25 876호 (p58~60)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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