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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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진 불씨에 미련 두지 말라

현직과 이직

  • 노양희 커리어케어 전무

    입력2012-10-29 0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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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만난 A씨는 대형 금융회사 임원이다. 지금까지 한 회사에서 20여 년간 일했고, 40대 중반에 임원이 됐으며, 현재 50대 초반이다. 그런데 올해 초 인사발령에서 보직을 받지 못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규모가 작은 기업의 임원 자리에 그를 추천하려고 A씨를 만났다. 업무가 동일한 터라 그 분야에서 일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고 인성이 좋으며 이직을 고려하고 있으리라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만난 자리였다. 그런데 A씨는 이직을 망설였다. 처우 등 조건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를 알기 원하면서도 정작 이직할 마음은 없어 보였다.

    뜻밖이었지만 이직 경험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며칠 생각할 시간을 주고 다시 만났다. 그런데 반응이 마찬가지였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다. 혹시 연말 인사에서 과거에 맡았던 보직을 다시 맡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다른 보직이라도 주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남았던 것이다.

    그가 미련을 갖는 그 기회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전에 맡았던 보직은 그보다 더 젊고 능력 있는 새 임원이 맡아 잘하고 있고, 더욱이 그 자리를 노리는 능력 있는 부장이나 이사가 줄을 섰다. 설령 복귀한다 해도 A씨 나이를 미뤄볼 때 임원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2~3년일 것이다. 실제로 A씨를 제외한 그의 동료 대부분이 그가 연말이면 옷을 벗으리라고 내다봤다.

    A씨는 아마도 연말 인사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직을 받으면 좋고, 그게 안 돼서 사표를 써야 한다면 그 후에 다른 기회를 찾아보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

    기업 대부분은 경쟁사의 퇴직 임원보다 ‘따끈따끈한’ 현직 임원을 데려오고 싶어 한다. 현직에 있을 때와 퇴직 후 이직시장에서의 평가는 확연히 다르다. 더욱이 퇴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자기가 다녔던 회사와 비슷한 규모의 동일 업무로 이직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예고 없이 직장을 그만두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A씨처럼 직장 내에서 자신의 불씨가 꺼져가는 상황이라면, 향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어보고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A씨 경우 이직한다면 잃을 것보다 얻을 게 더 많다. 설령 이직이 성사되지 않아 도전으로 끝날지라도 잃을 것은 없다.

    지금 회사에서 자신의 입지가 사그라지는 불꽃이라면 빨리 끄고 새 불꽃을 키울 수 있는 도전에 나서야 한다. ‘지금 회사가 더 나은데’ ‘나도 과거엔 잘나가던 사람인데’ 같은 미련이나 짝사랑, 충성심은 버려야 한다. 새로운 기회일 수 있고, 더구나 잃을 것 없는 도전인데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A씨를 보면서 필자는 ‘참 열정도 용기도 없는 사람이구나’ 하고 실망했다. 그가 바라는 보직을 다시 찾는다 해도 그 조직을 열정과 패기로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A씨는 내년 2월쯤 필자에게 연락해 한 번 만나자고 하면서 “갈 만한 자리가 나오면 추천해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그때 좋은 기회였는데…’ 하고 아쉬워하면서. 그런데 얼마 전 제안했던 그런 자리가 내년에 또 나올지 장담할 수 없다. 그 회사에서 올해 누군가를 충원한다면 A씨의 나이가 훨씬 많아지고 퇴직 기간도 길어진 몇 년 후에나 자리가 나지 않을까. 그리고 이미 필자 머릿속에는 A씨가 열정이나 도전정신이 부족한 사람으로 각인돼 어느 회사 임원 자리가 나더라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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