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2

2012.08.27

“매출 1% 이상 사회공헌 성공보다 행복한 CEO 되련다”

컴포트슈즈 업계 1위 ㈜안토니 김원길 대표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12-08-27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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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출 1% 이상 사회공헌 성공보다 행복한 CEO 되련다”
    신발회사 ㈜안토니의 김원길(51) 대표는 중졸(中卒)이다. 남들이 고등학교에 갈 나이인 16세부터 신발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언젠가 미국에 출장 갔을 땐 미국 세관원이 던진 “노 프로블럼(No problem)”이라는 말도 못 알아들어 고생했다. 옆에 있던 사람에게 “노 프로블럼이 뭐야? 굉장히 좋은 건가 보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 대표는 자신의 무식함을 창피해하지 않는다.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충남 서산에 있는 한 구둣방에서 처음 칼을 잡았다. 18세에 무일푼으로 고향을 떠나 서울 영등포와 경기 성남 등을 떠돌며 구두기술을 배웠다. 그 시간 대부분은 월급도 없는 시다(‘보조원’을 속되게 이르는 말) 생활이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명품구두를 만드는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가 만들어 파는 ‘바이네르’ ‘안토니’ 같은 브랜드 구두는 ‘뭘 좀 아는’ 중·장년층 여성 사이에선 명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컴포트슈즈 부문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는 ㈜안토니의 연매출액은 지난해 400억 원을 넘겼다. 현재 활동하는 제화업계 대표 가운데 기능공 출신 CEO는 김 대표가 유일하다.

    분명 성공한 CEO지만 그는 “성공한 CEO보다 행복한 CEO를 꿈꾼다”고 말한다.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는 기업을 만든다”가 그의 경영철학이라고 한다.

    구두 기술자 출신… 명품 브랜드 인수



    경기 일산에 있는 ㈜안토니 본사에는 승마용 말 2마리가 직원들과 같이 생활한다. 공장 마당에는 1억 원이 넘는 벤츠 스포츠카가 떡하니 서 있다. 경기 청평 남한강변에는 보트 3대가 안토니 직원들의 부름을 기다린다. 총 300명 정도 되는 ㈜안토니 직원들의 취미생활을 위해 김 대표가 사다놓은 것이다. 김 대표와의 인터뷰는 말과 스포츠카 얘기로 시작됐다.

    ▼ 직원들 취미생활 용도로 사다놓은 건가요.

    “네, 직원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기왕 하는 거 폼 나는 걸로 하고 싶어서 몇 년 전 준비했어요.”

    ▼ 직원들이 좋아하겠습니다.

    “우리 회사가 대기업처럼 월급을 많이 주지는 못해도 놀 때만큼은 누구한테도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생각해요. ‘일한 만큼 놀자. 논 만큼 일하자’는 게 제 인생 모토예요(웃음).”

    김 대표는 회사 직원 가운데 셋째 자녀를 낳은 직원에겐 출산장려금 1000만 원을 지급한다. 외국 유학 기회도 준다. 직원에게 쓰는 것 말고도 김 대표는 매년 매출의 1%가량을 사회공헌에 내놓는다. 매출이 400억 원을 넘긴 지난해엔 4억5000만 원을 사회공헌기금으로 내놓았고, 올해는 이미 약정한 금액만 5억 원이 넘는다. 직원들은 이런 김 대표의 결정을 좋아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 직원들이 싫어하지 않나요.

    “솔직히 눈치는 좀 보이죠. 그래도 다들 내 마음을 이해해주니까. 직원들한테 그래요. ‘우리가 열심히 사회에 봉사하면 그만큼 우리에게 돌아온다. 고객이 우리를 보고 감동해서 구두를 더 열심히 사주지 않겠느냐. 일종의 홍보비다’라고요. 베푼 만큼 반드시 돌아오거든요.”

    ▼ 벌어들인 만큼 직원들과 사회에 공헌한다는 생각인 거죠.

    “돈을 벌었기 때문에 하는 건 아니에요. 다들 우리 회사가 성공한 기업이라고 하지만, 아직 빚도 많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집도 없어요.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돈 벌려고 아등바등하는 회사, 특히 대기업이 대체 뭣 때문에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버는지 모르겠어요. 순대까지 팔아가면서 말이죠. 생각해보면 결국 다 자기 자식들 편하게 살게 하려고 돈 버는 건데, 그건 아니죠. 돈은 같이 써야 재미있어요. 돈 벌었다고 혼자 배 타고 놀면 뭐가 재미있겠어요. 같이 타고 놀아야지. 안 그래요?”

    ▼ 그래도 자식들에게 아무것도 안 해 줄 수는 없잖아요.

    “저는 자식들한테도 그래요. ‘나는 풍요롭게 살려고 열심히 산다. 그런데 내가 열심히 일해서 만든 풍요로운 삶을 니들이 누리는 건 반칙이다. 니들도 열심히 일해서 풍요롭게 살아라’라고요.”

    김 대표와 ㈜안토니가 하는 사회공헌사업은 다양하다. 수년 전부터 회사 인근 군부대(육군 9사단)를 지원해왔고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있다. 올해엔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는 사업도 시작했다. “우물 하나만 파면 아프리카 사람 1000명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앞뒤 안 재고 기부를 결심했다. 얼마 전에는 고액기부자 모임(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에도 가입해 1억 원을 내기로 약정서를 맺었다. 개인 이름으로 하는 기부여서 수년간 들어왔던 보험까지 해지했다. 김 대표는 “올해부터는 직원들과 함께 ‘사랑의 구두 만들기’ 사업도 할 예정이다. 우리 회사 구두를 돈 주고 살 수 없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구두를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매출 1% 이상 사회공헌 성공보다 행복한 CEO 되련다”

    생산 중인 구두를 검사하는 김원길 대표(왼쪽). 본사에서 교육받는 ㈜안토니 판매사원들.

    기업의 생명은 언제나 사람

    지금이야 성공한 사업가 소리를 듣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다녔던 제화회사 케리부룩이 1994년 부도나면서 탄탄대로 같았던 그에게도 빨간불이 켜졌다. 자살하려고 한강다리 위에 섰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장 개척에 나섰다. 그러다 찾은 아이템이 ‘편안한 구두(컴포트슈즈)’다.

    “죽으려던 참에 만난 게 이탈리아 브랜드 ‘바이네르’였어요. 당시 마침 컴포트슈즈가 바람을 타기 시작했거든요. 처음에는 수입한 구두 몇 개를 백화점에서 팔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라이선스를 얻어 직접 생산을 시작했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컴포트슈즈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어요. 운도 좋았고 시장 흐름도 잘 탄 거죠. 바이네르가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우리 브랜드인 안토니를 내놨어요. 지금은 수입브랜드 바이네르보다 안토니의 매출 비중이 더 높아요.”

    지난해 그는 바이네르 본사로부터 상표권 60%를 사들였다. 하청업체 사장이던 그가 사실상 이탈리아 본사 대주주가 된 것이다. 그는 현재 명품 브랜드 바이네르를 아시아 전역과 호주, 미국에 팔 수 있는 판권을 갖고 있다. 이로써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발판도 마련했다.

    “조만간 미국, 호주에 매장을 낼 계획이에요. 그래서 요즘은 개발과 생산인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죠. 기술력은 자신 있으니까, 생각만 해도 신이 나요.”

    김 대표는 기업 생명은 언제나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인재를 계속 양성하고 키우는 것보다 좋은 경쟁력은 없다는 것이다.

    “행복지수가 1등일 때 좋은 제품이 나오고, 행복지수가 1등일 때 좋은 기업이 만들어진다고 믿어요. 우리 신발을 신는 고객은 매일 우리 회사에 대해 투표를 해요. 디자인, 품질, 서비스 등을 하나하나 평가하죠. 한번 잃은 신뢰는 쉽게 찾아지지 않아요. 직원들이 행복하지 않은 기업에서 좋은 기술이 나올 리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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