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87

2017.05.10

와인 for you

미국 키슬러 빈야드

두 청년의 40년 집념이 만든 명작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7-05-08 11: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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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캘리포니아 주 소노마 카운티(Sonoma County)에는 명문대 출신 두 남자가 설립한 와이너리 키슬러 빈야드(Kistler Vineyards)가 있다. 스티브 키슬러(Steve Kistler)는 스탠퍼드대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마크 빅슬러(Mark Bixler)는 MIT와 버클리대 출신의 화학 박사다. 1970년대 중반 20대 초반이던 스티브는 우연히 오래된 포도밭을 방문했다. 늙은 포도나무의 신비로운 모습에 반한 그는 친구인 마크에게 와인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둘은 의기투합해 포도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축구를 즐기던 스티브가 그때 하필 무릎을 다쳤어요. 그래서 스티브는 삽으로 땅만 팠죠. 무릎 꿇고 포도나무를 심는 건 제가 다했어요.” 얼마 전 키슬러 빈야드를 방문했을 때 마크가 들려준 이야기다. “두 남자가 무모한 일을 벌이자 스티브의 아내는 대학에 다시 들어가 의학 공부를 했습니다. 와인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지 모르니 병원을 차려 살림을 꾸려나갈 생각이었죠. 의사가 된 그녀는 와이너리 직원들의 아이를 직접 받기도 했습니다.”




    키슬러 빈야드의 임직원은 모두 40명이다. 대부분 20년 이상 이곳에서 일했다. 그들의 자녀 가운데 몇몇은 이미 키슬러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와이너리 소유주는 스티브와 그의 가족이지만 이젠 종사자 모두의 와이너리가 된 것이다. “좋은 와인을 만드는 요령은 따로 없습니다. 무엇보다 포도가 좋아야 해요.”

    키슬러는 두 가지 포도만 재배한다. 피노 누아르(Pinot Noir)로는 레드 와인을, 샤르도네(Chardonnay)로는 화이트 와인을 만든다. 자기 밭에서 기른 포도를 주로 쓰지만 때로는 포도를 매입하기도 한다. 그들이 포도를 살 때는 철칙이 있다. 중량을 기준으로 매입하지 않는 것.



    “무게에 따라 값을 지불하면 포도 재배자는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포도를 생산하려 합니다. 하지만 포도는 나무에 열리는 송이 수를 줄일수록 맛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저희는 에이커당 값을 치르는 조건으로 계약합니다. 재배자가 포도 품질에 더 신경 쓸 수 있도록요.”

    이런 노력은 키슬러 와인의 품질로 오롯이 드러난다. 레 누아제티에(Les Noisetiers)는 우아하고 복합미 좋은 샤르도네 와인이다. 배와 파인애플 같은 잘 익은 과일향이 매력적이고, 산도가 좋아 경쾌하다. 입안에서 와인을 굴리면 고소하고 쌉쌀한 견과류향도 느껴진다.

    옥시덴탈 소노마 코스트(Sonoma Coast)는 해안 가까이 위치한 옥시덴탈 포도밭에서 자란 피노 누아르로 만든다. 이 밭은 기후가 서늘해 피노 누아르의 향미가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옥시덴탈 소노마 코스트를 맛보면 농익은 붉은 열매향과 분필가루처럼 고운 타닌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싼다. 와인을 목으로 넘긴 뒤에는 달콤한 체리향이 긴 여운을 장식한다.

    “1979년 4만 병으로 시작해 이젠 한 해 약 36만 병을 생산합니다.” 키슬러 정도의 규모에서 36만 병은 결코 많은 양이 아니다. 품질에만 신경 쓰다 보니 생산량은 뒷전인 모양이다. “지난 40년간 단 한 번도 비용이나 시간을 계산해본 적이 없어요. 그저 좋은 와인을 만들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마크는 이제 일흔을 바라보지만 그의 눈빛에는 여전히 젊은 시절의 꿈과 열정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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