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7

2016.10.05

사회

살기 위한 몸부림 ‘연명페이’의 눈물

경력·스펙 쌓기용 ‘열정페이’는 옛말…근로기준법도 외면한 ‘일경험 수련생’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9-30 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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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에게 스펙과 경력을 만들어준다는 핑계로 법정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주며 청년 노동력 착취의 대명사가 된 ‘열정페이’. 그러나 이제 청년은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해오던 경력 쌓기조차 포기한 채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연명페이’를 감수하고 있다. 청년들 입에서 “열정페이를 받을 때가 오히려 좋은 시절이었다”는 자조 섞인 푸념이 나올 정도다. 정부가 ‘열정·연명페이’로 대표되는 청년의 초저임금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잇따라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청년들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정부 대책이 법적 구속력 없는 반쪽짜리 해결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비웃는 초저임금도 감지덕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김모(25) 씨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은퇴로 지난해부터 생활비를 벌고 있다. 학교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지난해 3월부터 작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평일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 주말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8시간씩 일하고 평일에는 일당 2만5000원, 주말에는 일당 5만 원 등 시간당 6000원 조금 넘는 시급을 받기로 구두 계약했다. 그러나 계약은 첫 주부터 지켜지지 않았다. 평일에는 한두 시간씩 초과 근무가 기본이며, 주말에는 개점 준비 명목으로 한 시간 더 일찍 출근하고 퇴근은 평일처럼 한두 시간 늦어지는 게 보통이었다. 실제 일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당시 최저시급인 558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였지만,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 김씨는 최저시급이 6030원으로 오른 올해 초까지 애초 계약대로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계속해야 했다. 김씨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일을 그만두면 당장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어 억울해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는 비단 김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4월 발표한 ‘청년 열정페이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부터 최저임금 미만의 저임금을 받는 청년이 계속 증가했다. 2011년에는 15~29세 근로자의 12.3%, 총 44만9000명이 저임금 노동 청년이었다면 지난해 8월에는 17%, 63만5000명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이 청년들이 미래를 위해 자발적으로 열정페이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초저임금을 감수하는 이유를 묻자 9%만 ‘경력을 쌓아 다음 직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나머지 청년은 ‘수입이 필요해서(20.8%)’ 또는 ‘학업이나 직업훈련과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적합한 일자리가 없어서(49.6%)’ 등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급여 조건이 열악한 곳에서 일한다고 응답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정부도 제 나름 대책을 내놓았다. 고용노동부(고용부)는 8월 31일 ‘전자근로계약서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서면근로계약서보다 작성이 간편한 전자근로계약서를 쓰게 해 근로계약서 작성률을 높이겠다는 게 가이드라인의 골자다. 고용부는 노동현장에서 최저임금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이유를 근로계약서 미작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청년 근로자는 대부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연명페이를 받는 청년 중 27.8%만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일을 시작했다.

    이러한 고용부의 연명페이 해결책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근로계약서 작성 방법이 어려워 그간 근로자와 사용자의 근로계약서 작성 사례가 적었다면 고용부의 ‘전자근로계약서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은 효과적인 대안일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제대로 된 금전적 대우를 하지 않으려고 근로계약서 작성을 고의적으로 꺼린다거나 근로자가 근로기준법 내용을 잘 몰라서 작성 사례가 적은 것이라면 원인 분석이 잘못된 대안이라 정책 실효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효성 없는 대책에 두 번 울어

    연명페이 문제로까지 번졌지만 그간 계속 논란이 된 열정페이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고용부는 열정페이 근절과 올바른 일경험 문화 정착을 위해 2월 1일부터 인턴·실습생 등 ‘일경험 수련생의 보호 가이드라인’을 시행해왔다. 이 가이드라인의 골자는 교육·훈련을 목적으로 하는 인턴, 실습생과 임금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를 구분하는 것이다. 일경험 수련생의 보호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기업이 교육프로그램 없이 업무상 필요에 따라 수시로 업무를 지시하거나 특정 시기 또는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에 활용하는 경우 일경험 수련생이 아닌 일반 근로자로 판단해 근로기준법이 명시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문제는 일경험 수련생과 관련한 급여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업이 수련생을 뽑아 일을 시키면서 아예 급여를 주지 않아도 이를 막을 수단이 없다.

    일경험 수련생의 보호 가이드라인에는 수련생 보호를 권고한 내용도 있지만 이 역시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가이드라인에는 수련생을 상시 근로자의 10% 이상 모집해서는 안 되며 6개월 넘는 수련도 금지된다. 1일 8시간, 주 40시간 근무를 지켜야 하고 연장·야간·휴일 수련도 금지다. 그러나 이 모든 사항이 권고조항에 불과해 법적 강제성이 없다.

    고용부의 면피성 대책에 그 대상자인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일경험 수련생의 보호 가이드라인이 시행되고 한 달 뒤인 3월 인터넷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 30대 청년 61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4%(393명)가 ‘고용부의 가이드라인이 열정페이 근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실효성 논란이 이는 고용부의 열정페이 근절대책에 대해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고용부의 가이드라인이 교육과 노동을 엄격히 구분한 점은 의미가 있으나 교육 범위가 너무 넓어 보완이 필요하다. 교육 효과가 있더라도 해당 사업장에 명백하게 이익을 주는 행위였다면 노동으로 구분하고 교육생에게도 근로자와 같은 대우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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