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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은 어떻게 최강팀이 됐나

합리적인 인프라 투자, 내부 프런트 육성이 비결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6-09-30 18: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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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프로야구 KBO리그의 역사는 1999년 11월 26일 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뉜다. 그날 송진우(현 KBSN 해설위원)는 원 소속팀 한화 이글스와 계약했다. 3년간 7억 원이라는 액수는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흘 뒤인 11월 29일 사상 처음으로 자유계약선수(FA) 이적이 나왔다. 해태 타이거즈(현 KIA) 이강철(현 넥센 히어로즈 수석코치)은 이날 삼성 라이온즈와 3년간 8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 이후 KBO리그는 어떤 팀이 얼마나 과감한 투자를 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90년대 후반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벌인 재력 전쟁은 선수들 몸값을 폭등케 했다.

    FA제도가 도입된 지 17년 만인 2015년 ‘4년간 96억 원’ 계약(NC 다이노스 박석민)이 탄생할 정도로 시장은 급속도로 커졌다. 게임업계에서는 “순수 연봉으로만 보면 야구선수 박석민이 구단주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보다 높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과는 전혀 다른 독자노선을 추구한 팀이 있었다. 두산 베어스다. 삼성이 현대 심정수와 4년간 60억 원 계약을 맺어 야구계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파장을 일으켰던 2005년, 두산은 경기 이천시에 베어스필드를 완성했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 도전

    2군 전용훈련장 및 경기장인 베어스필드는 야구선수뿐 아니라 기자 사이에서도 밥맛 좋기로 유명했다. 1군에 올라온 선수도 그 밥맛을 그리워할 정도였다. 선수 건강을 위해 정성껏 차린 음식은 맛과 영양 모두 최고였다. 그만큼 젊은 선수들에 대한 지원이 세심했다. 2군 선수 전용 숙소는 인원 제한으로 핵심 유망주만 선발됐다. 두산은 다른 팀과 달리 2군 선수들이 서로 숙소 생활을 하려고 경쟁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곧이어 베이스필드에서 뛰어난 선수가 배출되기 시작했고 신인 선수를 과감히 기용한 김경문 당시 감독의 지도력이 더해져 두산은 2000년대 후반 연이어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했다. 2005년 두산은 베어스필드에 2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투입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10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대지 매입비용이 포함되지 않은 550억 원을 더해 2군 전용훈련장을 건설했다. 이름을 베어스파크로 바꿔 2014년 문을 연 전용훈련장은 수중 치료실 등 최첨단 시설을 갖춘 종합 재활훈련 시설이다. 두산 선수들은 베어스파크에서 집중적으로 육성됐고, 부상한 선부는 전문인력이 첨단 시설에서 관리했다.



    결실은 빨리 맺었다. 두산은 2015년 3위로 정규시즌을 끝내고 포스트시즌에서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이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에는 1995년 이후 처음으로 정규시즌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두산은 사실 이전까지 투자에 인색한 구단이라는 선입견에 시달렸다. 2013년까지 단 한 번도 외부 FA를 영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3년 계약한 홍성흔도 사실 4년 전 롯데 자이언츠로 떠나보낸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그동안 이종욱, 손시헌, 최준석 등 수많은 두산 출신 선수가 FA 자격을 획득한 후 다른 팀으로 떠났다. 일부 팬은 FA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않는 두산을 거세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산의 야구단 경영방식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2005년부터 전용훈련장 인프라 구축에 두산이 투자한 금액은 대지 매입비용을 제해도 1000억 원에 이른다. 대지는 1983년 2군 경기장을 건설하며 확보해 미래에 대비했다.

    만약 두산이 1000억 원을 FA시장에 투입했다면 삼성 등 다른 구단에 절대 뒤지지 않았을 수 있다. 1000억 원은 특급 선수를 모두 수집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이다. 그러나 FA의 선수 생명은 4년이다. 반면 많은 구단의 부러움을 사는 베어스파크는 20~30년 동안 두산의 든든한 힘이 될 수 있다.



    ‘현장 불간섭’ 원칙

    두산은 2015년 시즌을 앞두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비(非)두산 출신 외부 FA를 영입한다. 롯데 좌완 에이스 장원준이었다. SK 와이번스 김광현처럼 리그를 압도하는 특급 투수는 아니지만 부상 이력이 없는 건강한 몸, 그리고 꾸준한 등판 능력을 갖춘 투수였다. 장원준 쟁탈전은 매우 치열했는데 두산이 4년간 86억 원을 제안하며 승리했다. 당시 많은 구단이 두산이 경쟁에 뛰어든 것 자체만으로도 놀랐는데, 86억 원이라는 큰 액수로 계약에 성공해 또 한 번 놀랐다. FA시장에서 가장 소극적인 팀 중 하나였던 두산이 장원준을 선택한 이유는 우승을 위한 마지막 조각이라는 실무진의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고 장원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마운드에서 눈부신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두산의 강점은 인프라만이 아니다. 프로야구팀은 두 발 자전거처럼 선수단과 프런트가 함께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한국 프로야구 팀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퇴임을 앞둔 다른 계열사 임원이 사장이나 단장으로 야구단에 취임하는 풍토다. 야구에 비전문가인 그들이 다른 계열사로의 영전이나 임기 연장을 위해 현장에 책임을 전가해 종종 큰 마찰이 일어나기도 한다. 1982년부터 올해까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폐단이다.

    그러나 두산은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사장과 단장이 야구단에서 평사원으로 출발해 주요 요직을 거쳐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팀이다. 야구단 경영 측면에서 두산을 따라갈 팀을 고르기 어려운 이유다. 또한 1995년 두산의 마지막 시즌 우승을 경험한 인력이 지금도 프런트에 꽤 많이 남아 있다는 것도 다른 구단과 비교하면 매우 놀라운 점이다.

    두산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현장 불간섭’ 원칙도 두산의 큰 힘이다. 김태룡 두산 단장은 2년 전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구단주에게 사직서를 냈지만 돌아온 것은 무한한 신임이었다. 현장에 개입하지 않지만 적극적인 지원과 아낌없는 격려가 이어지며 건강한 팀이 완성됐다.

    야구 현장에서는 두산이 앞으로 수년간 강팀 자리를 지킬 것으로 예상한다. 베어스파크에서 키워낸 주축 선수가 20대 중·후반이고 프런트에 포진한 각 전문가가 선수 육성과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등에서 연이어 뛰어난 성과를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두산의 구단 경영방식과 성공은 한국 스포츠 산업 전체에 새로운 화두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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