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0

2016.08.10

사회

과로에 차별, 공중보건의의 눈물

치·의전원 증가 여파로 5년 새 30% 감소…한 달 15번 장거리 출장 진료, 결핵 감염 공포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8-05 16: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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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지역 보건소의 경우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배치 인원이 2년 새 3명 줄었습니다. 과거 11명이 담당하던 지역을 8명이 책임지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한 공보의는 60~70km 떨어진 지역에 한 달에 15번이나 출장 진료를 간 것으로 확인됐어요. 출장비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오직 의사라는 사명감으로 버티는 상황이죠.”

    김재림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공보의협회) 회장의 말이다. 공보의협회는 5월 전국 153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공보의 업무량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김 회장은 그 결과를 설명하며 “전국적으로 공보의 업무량이 2년 전에 비해 평균 26.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경남 창원(333%), 충북 청주(169%)의 업무량 증가폭이 컸다고 한다.

    공보의는 군복무를 하는 대신 보건소나 보건지소, 공공의료원 등에서 계약직 공무원 신분으로 일하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을 말한다. 공보의협회가 최근 자체적으로 업무량을 조사한 이유는 지난 몇 년간 공보의 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공보의 수는 2010년 5179명에서 지난해 3626명으로 5년 새 30%가량 줄었다. 특히 의사, 치과의사의 감소폭이 컸다. 2008년에는 의사면허를 가진 공보의 1278명이 신규 배치됐지만, 2014년에는 785명에 그쳤다. 신임 치과의사 공보의도 같은 기간 340명에서 116명으로 줄었다(표 참조).

    전문가들은 이 배경에 2005년 문을 연 치의학전문대학원(치전원)과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근무하며 ‘농어촌 보건의료 서비스체계 개선방안’ 등을 연구한 최경환 대진대 글로벌경제학과 초빙교수는 “공보의 수는 2008년 1962명이 신규 편입돼 최고치를 찍은 후 매년 감소하는 추세”라며 “의대 정원이 줄고, 의대 입학생 중 여학생의 비중이 커진 데다 의·치전원 도입으로 병역의무를 마쳐야 하는 남자 의·치대생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공공의료 인력난

    이에 따라 의료현장에서는 공보의가 빠른 속도로 줄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그동안 산업재해 노동자 보호 등을 위해 군 소재 및 인구 15만 명 미만 시에 있는 산재병원에 공보의를 배치해왔지만 내년부터 이를 없애기로 했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 역시 앞으로는 공보의를 받지 못한다. 같은 정책에 따라 지방 중소도시 공공의료기관의 공보의 수가 줄면서 해당 지역에 재난이나 전염병이 생겼을 때 거점 의료기관 기능을 제대로 못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전국 상당수 농산어촌에서 공보의가 주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농어촌 지역 병원 수는 439개로 도시(3233개)의 13.5% 수준이다. 지역 주민이 병원에 가기까지 60분 이상 걸리는 이른바 ‘의료취약지’가 적잖다. 지금까지 정부는 이러한 공백을 보건소 및 보건지소에 공보의를 배치하는 것으로 메워왔다. 공보의가 계속 감소할 경우 지역의료 서비스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벌써부터 일부 읍·면에서는 공보의가 순회 진료를 하느라 보건지소를 지키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정부가 의료취약지에 공보의를 최우선 배치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공보의들은 과중한 업무와 열악한 근무환경에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예방접종 시즌이 되면 업무량이 급증한다. 지난해 공보의협회 조사 결과 공보의 10명 중 1명은 하루 1000명 이상에게 예방접종을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월에는 경기도 한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공보의가 결핵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루 평균 80명씩 환자를 보는 등 과로에 시달렸다고 해요. 그런데도 해당 보건소는 공보의가 당연히 받아야 할 위험근무수당조차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죠. 농촌은 결핵 유병률이 높기 때문에 공보의들은 상시적으로 결핵 공포에 시달립니다. 그런데도 환자 접촉이 거의 없는 일반직 공무원에게는 꼬박꼬박 수당을 챙겨주면서 공보의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경기도에서 일하는 한 공보의의 말이다. 그는 “공보의는 전국에 흩어져 있고 군복무를 대신하는 처지라 공동행동을 하는 데 제약이 많다. 지자체(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이용해 법률에 규정된 처우조차 보장해주지 않고, 우리를 마치 일선 부대 이등병을 대하듯 하는 데 화가 난다”고도 했다.

    현행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따르면 공보의는 임기제 공무원이다. 일반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위험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지급하지 않는다 해도 처벌할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많은 지자체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수당 지급을 미루거나 공보의를 제외한 다른 보건직 공무원에게만 지급하고 있다. 3월 공보의협회가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보의가 배치된 보건소 및 보건지소 가운데 약 75%가 공보의에게 해당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위험수당 안 주는 지자체들

    이에 대해 경기도 의사회 관계자는 “심지어 3월 11일 복지부가 ‘공보의에게도 해당 수당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협조공문을 발송했는데도 상당수 지자체가 이를 무시하고 있다. 일부 보건소는 지금도 수당 지급을 거부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농산어촌의 급속한 고령화 현상과 다문화가정 증가 등으로 공보의 구실이 더욱 강조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차별은 심각한 문제라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공보의로 교정시설에서 근무했던 한 의사는 “육지와 연결돼 있지 않은 섬지역이나 지방 교도소 등에는 훈련된 의료인력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의료 및 보건 업무를 공보의가 전적으로 떠맡는 상황”이라며 “이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존중과 처우 보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더불어 장기적으로 의료취약지의 공공의료 서비스를 강화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공보의 감소세는 조만간 멈출 예정이다. 의전원으로 전환했던 의대들이 다시 학부 신입생을 뽑는 체제로 속속 바뀌고 있어서다. 교육부는 최근 2027년이면 공보의 수가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이것이 공공의료 공백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국방부가 5월 공보의를 포함한 각종 군(軍) 대체복무제도를 2023년 완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종구 서울대 의대 교수는 “현재 전국에 배치된 공보의 가운데 88.6%가 제대로 된 일차의료 수련을 받은 경험이 없다. 또 지방으로 가면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같은 전문 과목 의사를 확보하지 못한 곳이 많다”며 “앞으로는 지방 공공의료기관에 공공보건사업과 연계해 지역사회 건강 문제를 관리할 수 있는, 일차의료 수련을 충분히 받은 인력을 안정적으로 배치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농어촌 의료취약지역 출신을 의대생으로 선발한 뒤 졸업 후 일정 기간 지역의료·공공의료 분야에서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으로 근무하게 하는 제도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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