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2

201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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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

준비 없이 반려동물 키우다 부부싸움에 이혼까지…종별 특징, 관리 비용 꼼꼼히 따져야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입력2016-04-04 11: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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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개○○ 당장 갖다 버려!”

    남편의 고함소리에 50대 후반 우영순 씨는 식탁 밑에서 겁에 질린 눈으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개를 안아 들고 황급히 방으로 피신했다. 남편의 화를 돋우면 집 안에서 개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터였다. 우씨가 세 살 난 수컷 푸들을 키우기 시작한 건 2년 전. 부부가 맞벌이를 해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돌아오면 저녁시간까지 늘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무매독자 늦둥이 아들이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라서였다. 우씨는 “남편 성격을 알기에 수년 동안 아들이 졸라도 모른 체하다 어렵게 개를 기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 년 전부터 우씨 부부는 개 때문에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어렸을 때는 얌전하던 개가 크면서 점점 사나워져 시도 때도 없이 짖고 사람을 물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우씨의 남편은 개를 때리거나 욕설을 퍼부었고, 그것이 집안싸움으로 번졌다. 우씨는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남편이 개를 상대로 화풀이를 한다. 말리면 더 심해지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남편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얼마나 상처가 되겠나. 이제 와서 키우던 생명을 남한테 줄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개만도 못한 대접 받나” 배우자 불만

    50대 중반 여성 이모 씨도 걸핏하면 “개한테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다”며 불만을 쏟아내는 남편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한 번은 남편 잔소리가 듣기 싫어 직접 개털을 다듬어주다 실수로 꼬리 끝부분을 잘라 황급히 동네 동물병원을 찾기도 했다. 수술을 마친 뒤 마취에서 덜 깨어난 개를 품에 안은 이씨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남편은 “수술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 똥오줌도 못 가리는 개○○ 수술비까지 내가 내야 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씨는 “주위 손님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와 남편을 번갈아 쳐다보는데, 그 순간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전체 가구의 21.8%이다. 다섯 집 가운데 한 집꼴로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기르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반려동물을 둘러싸고 가족 간 갈등이 생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 40대 초반 ‘직장맘’인 이모 씨는 고양이 때문에 중학생 딸과 하루가 멀다 하고 실랑이를 벌인다. 이씨는 “딸이 고양이만 사주면 자기가 대소변 다 치우겠다고 해놓고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한다. 퇴근해서 어질러진 집 안을 치울 때면 화가 난다. 부모 몰래 인터넷으로 샴푸와 장난감 등 온갖 고양이용품을 사들이고, 천식이 있는데 꼭 침대에서 고양이를 데리고 논다. 방에 들이지 말라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50대 초반 김희정 씨는 개 때문에 수년 간 남동생 부부와 다투다 관계마저 서먹해졌다. 김씨는 “동생네 부부는 쇼핑하듯 강아지를 사고 얼마 못 가 다른 데로 입양 보내기를 반복한다. 그동안 강아지 6~7마리를 사서 이런저런 핑계로 딴 곳에 보낸 것 같다. 그중 내가 떠안아 키운 강아지만 2마리다. 생명 있는 동물을 데려왔으면 끝까지 책임져야지 뭐하는 짓인지 이해가 안 된다. 이젠 잔소리하거나 다투기도 지겹다”고 했다.

    30대 중반 김모 씨는 미혼 때부터 함께 살던 개를 결혼 후에도 계속 길렀다. 그런데 6년 넘게 임신이 안 되자 시부모는 개를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네가 개를 너무 예뻐해 아이가 안 들어선다. 당장 갖다 버리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마지못해 개를 다른 집으로 입양 보낸 김씨는 “시어머니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응수했다 오히려 잔소리만 더 들었다. 남편도 시어머니 편을 들더라”며 섭섭해했다.     

    반려동물이 다툼의 불씨가 돼 이혼까지 한 사례도 있다. 30대 초반 서모 씨는 결혼 3년 차에 파경을 맞았다. 원래 개를 좋아하던 서씨는 결혼 당시 아내가 기르던 개를 데려온다고 했을 때 흔쾌히 동의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내가 개에게만 매달린다는 생각이 들어 부부싸움을 하게 됐다. 개에 집착하는 아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서씨가 싫은 소리를 하면 아내는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과 막말을 서씨에게 퍼부었다. 급기야 아내가 얼굴을 할퀴는 등 폭력까지 서슴지 않자 서씨는 이혼을 결심했다. 이재만 법무법인 청파 대표변호사는 “요즘 이혼 사유의 40~50%가 성격 차이다. 부부간 성격 차이로 나타나는 여러 갈등 가운데 한 가지는 반려동물 문제다. 젊은 부부가 ‘내가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  ‘남자가 속 좁게 개한테 질투하느냐’ 같은 얘기를 하며 다투다 폭력으로 번져 이혼한 사례도 있다. 자녀를 다 키우고 황혼기에 적적함을 달래려고 반려동물을 기르다 갈등 끝에 이혼한 부부도 있다”고 밝혔다. “반려동물을 기르려면 손이 많이 가므로 사전에 부부가 합의하고 기르는 일도 분담해야 부부 갈등과 이혼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게 이 변호사의 조언이다.

    정호원 한국반려동물관리협회 이사도 “반려동물을 처음 기르는 사람은 반려동물의 습성과 양육방법 등을 교육받는 게 좋다. 반려동물 관련 지식을 알면 가족 내 갈등을 일으키는 여러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이사에 따르면 반려동물관리 교육을 받고자 협회를 찾는 사람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애 하나 키우는 것만큼 손 많이 가”

    유기동물보호소 등 반려동물 관련 현장 전문가들은 최근 유기견이 늘어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가족 간 갈등을 꼽는다. 이웅종 연암대 동물심리치료학전공 교수는 “요즘 반려동물을 기르는 유명인이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덜컥 개나 고양이를 입양했다 갈등을 겪거나 이를 끝내 감당하지 못해 유기하는 사례가 적잖다”고 했다. 실제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사람은 한결같이 “애 하나 키우는 것만큼 손이 가고 돈도 많이 든다”고 말한다. 14년간 기르던 개를 2월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정 이사는 “신혼 초 멋모르고 생후 50일 된 강아지를 아내에게 선물했다 2년 동안 부부 갈등을 겪었다. 강아지가 분리불안증이 있어 퇴근 후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고 잠도 침대에서 같이 자려고 해 아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또 강아지가 심장병에 걸려 약값과 심장병 전용 사료비 등으로 매달 30만~40만 원을 쓰기도 했다. 그때 아내가 더는 못 기르겠다고 했는데, 내가 용돈을 줄이고 반려동물에 대해 공부한 뒤 강아지를 잘 돌봐 간신히 부부 사이 위기를 넘겼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반려동물로 인한 가족 갈등을 피하려면 입양 전 반드시 △종의 특징과 관리법을 공부하고 △관련 비용을 충분히 검토하며 △주거환경에 맞는지 확인하고 △가족구성원 가운데 해당 동물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없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는 “반려동물과 행복한 동행을 꿈꾼다면 함께 살아가면서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문제를 충분히 점검하는 것이 먼저”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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