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1

2016.03.30

국제

‘쿠르드 독립’ 4000년 열망

시리아 북부에 자치정부 수립 선언, 평화회담 새 변수로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3-28 11: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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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드족이 시리아 내전 사태의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내전 해결을 위해 유엔의 중재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평화회담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쿠르드족이 시리아 북부지역에 자치정부를 세우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현재 시리아 북부 알레포 주의 아프린과 코바니, 하사카 주의 자지레 등을 확보하고 있다. 쿠르드어로 ‘로자바’라 부르는 이들 3개 지역에서 쿠르드족은 독자적인 행정조직과 경찰, 학교 등을 운영하는 등 이미 자치정부에 준하는 통치를 시행하고 있다.



    끊임없이 이용당한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의 자치정부 선포는 앞으로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포석. 시리아 정부는 물론 반군세력도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시리아 정부는 자국의 영토주권을 침해하는 어떤 기도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반군단체인 시리아국가연합(SNC)도 쿠르드족의 자치정부 수립 시도는 시리아 국민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시리아와 국경을 맞댄 터키 역시 자치정부 추진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쿠르드족은 전 세계를 통틀어 자신들의 국가가 없는 민족 가운데 최대 규모다. 4000년 전부터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르메니아 국경이 접한 ‘쿠르디스탄’이라는 지역에서 주로 살고 있다. 현재 국경을 기준으로 보면 3000만~3800만으로 추산되는 전체 인구 가운데 1600만 명이 터키에 살고 있고 이란에 600만 명, 이라크에 500만 명이 거주 중이다. 시리아와 아르메니아에도 각각 200만 명과 60만 명이 흩어져 있다.

    캅카스 계통의 민족인 쿠르드족은 7세기무렵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흥한 이슬람이 세력을 확대하자 이민족으로선 최초로 이슬람으로 개종했다. 이후 쿠르드족은 이슬람에 없던 음악을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11세기 십자군이 점령했던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라딘도 쿠르드족이었다.



    그러나 중동 최대 민족이던 쿠르드족의 거주지는 1923년 로잔 조약으로 하루아침에 다섯 나라로 쪼개졌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튀르크 제국과 싸움을 벌인 대가로 연합국인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얻어냈지만, 이들 나라와 오스만튀르크의 후신인 터키가 체결한 로잔 조약에 따라 무산됐다. 유전을 보유한 강력한 국가가 중동에 출현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연합국과 자국 영토의 4분의 1이 잘려나가야 하는 터키의 강력한 반대가 맞아떨어진 것. 쿠르드족이 염원하던 독립의 꿈이 수포로 돌아간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후 5개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쿠르드족은 지금까지도 독립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슬람 수니파에 속하는 쿠르드족은 고유 언어와 문자를 가졌으며, 인종적으로도 아랍족과는 다르다.

    1946년 쿠르드족은 옛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립국가인 ‘마하바드 공화국’을 이란 지역에 세웠으나 1년 만에 붕괴된 바 있다. 당시 소련이 쿠르드족을 이용해 이란과 석유협정을 체결하고는 이내 철군해버렸기 때문.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이란은 이라크를 견제하고자 쿠르드족의 독립을 지원했고, 이 때문에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화학무기로 쿠르드족을 공격하는 등 철저하게 보복한 바 있다. 쿠르드족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미국을 지원했다. 이때 쿠르드족은 미국이 독립국가 수립을 지원할 것이라 믿었지만, 미국은 이라크 안정을 앞세워 이라크 북부에 자치정부 수립만을 허용했을 뿐 그들의 독립 염원을 외면한다.    

    최근의 시리아 상황 역시 다르지 않다. 쿠르드족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세력 확산을 막아온 일등공신이다. 시리아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는 지난해 2월 터키와의 접경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코바니를 놓고 IS와 4개월간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승리했다. 승승장구하던 IS는 쿠르드족에게 첫 패배를 당하면서 기세가 꺾였다. 이후 YPG는 시리아 북부지역을 확보하며 IS가 터키까지 진출하는 것을 저지했다. 이러한 혁혁한 전과에도 시리아 정부와 반군세력은 물론 터키까지 시큰둥한 반응만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러시아, ‘수용할 수 있다’지만…

    심지어 터키 정부는 YPG를 테러조직이라 규정하고 나서기도 했다. IS보다 쿠르드족 독립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터키 남동부에 주로 거주하는 쿠르드족 인구는 전체 터키 인구의 25%나 된다. 이들 중 일부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이라는 반군단체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벌여왔다. PKK는 1984년부터 터키와 무력투쟁을 벌여왔고 이 과정에서 4만5000여 명이 사망했다. 2013년 터키 정부와 PKK의 휴전협정이 체결됐지만 지난해 7월부터 다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터키 정부는 PKK와 YPG, YPG의 시리아 내 정치조직 민주동맹당(PYD)이 그동안 밀접한 협력관계를 맺어왔다고 보고 있다. 터키가 제네바에서 진행되는 시리아 평화회담에 YPG와 PYD가 참여하는 것을 반대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터키 정부는 시리아에서 쿠르드족이 독립국가를 출범하거나 자치정부를 구성할 경우 자국 내 쿠르드족과 통합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정작 흥미로운 부분은 시리아 사태의 ‘큰 손’에 해당하는 미국과 러시아가 쿠르드족을 일정 부분 지지하고 있다는 점. 미국은 쿠르드족의 자치정부 선포나 시리아 연방제 추진에 반대한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시리아인들 사이에 합의가 있다면 이를 수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간 IS 격퇴를 위해 YPG를 적극 지원해온 미국으로서는, 지상군을 투입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쿠르드족이 가장 유용한 전략적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정부 역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시리아 정부의 지위가 현재대로 유지된다면 쿠르드 자치정부를 포함한 연방제가 시리아 사태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러시아 정부는 3월 15일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시리아에서 주요 군 병력을 철수하고 있다. 점차 발을 빼는 러시아로서는 향후 터키를 견제하기 위해 쿠르드족을 지지하는 게 적절한 카드라고 보는 셈. 그러나 이러한 계산이 미국이나 러시아의 지원으로 이어져 쿠르드족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들 민족이 강대국의 ‘팻감’으로 이용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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