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3

2021.01.15

전직 대통령 사면 둘러싼 ‘자기’ 정치와 ‘대행’ 정치 [이종훈의 政說-15]

  • 이종훈 정치경영컨설팅 대표‧정치학 박사

    입력2021-01-0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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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1월 1일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 사면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한 언론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대통령에게 건의드리겠다.” 이후 여야 정치권 반응은 뜨거웠다. 국민의힘은 환영하면서도 그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자가 발전한 것 아니냐는 시각부터 결국 선거용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대론이 만만치 않은 가운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사면 불가 글까지 올라왔다.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자 이 대표는 1월 3일 긴급 최고위원 간담회를 개최했다.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이 간담회 뒤 브리핑을 통해 밝힌 결론은 이렇다. “이 문제는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앞으로 국민과 당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호기롭게 제안한 것치고는 허무하게 한 발 빼고만 것이다.

    “국민과 당원의 뜻을 존중하겠다”

    이 대표는 왜 사면 카드를 제기했을까. 자기정치일까, 아니면 대행정치일까. 자기정치+대행정치, 곧 ‘1+1정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최근 각종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뒤지는 것은 물론, 그 격차마저 점차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연히 반전 카드가 필요했을 테다. 마침 사면론이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카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대표의 최대 강점은 친화력이다. 이념적 편향성, 곧 진보 정체성이 강렬하지 않다는 것도 강점이다. 사면론은 결국 보수와의 화해를 지향한 것이다. 이로써 통합 리더십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도지사와 차별화 포인트이기도 하다. 이 도지사는 진보 정체성이 강할 뿐 아니라 투쟁적이다. 이런 이 도지사와 달리 본인은 중도와 보수 지지층에게도 먹히는 대선주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외연 확장성을 의미하며, 대선 본선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1월 1일 인터뷰 당시 자신의 신년사에 주목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대표는 신년사에서 이렇게 언급했다.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전진’과 ‘통합’을 구현하겠습니다.” 



    이 대표의 사면론 제기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사전 교감이 있었는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최 수석대변인은 이렇게 밝혔다. “이 대표의 발언을 국민 통합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로부터 제안이 실제로 온 것도 아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대법원의 형 확정도 남아 있는 상태라 현재로서는 특별사면에 대해 별도 입장은 없다.” 청와대 입장과 민주당 최고위원회 결론을 종합하면 이번 사면 제안은 이 대표가 충정 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제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이 대표 스스로도 1월 4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르는 데 국민의 마음이 두세 갈래로 갈라진 채 그대로 갈 수 있을까 하는 절박한 충정에서 말씀드린 것이다.” 1월 5일 또 다른 언론과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밝혔다. “총리로 일할 때부터 대통령의 생각이 어디에 계신지 짐작해온 편이다. (중략) 교감은 없었다.”

    특별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대표는 일단 월권을 한 셈이다. 특별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그런데 대통령과 사전 논의도 없이 이 중차대한 사안을 거론하고 나섰다면 이는 명백한 월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대표가 벌써 대통령 행세를 하고 나섰다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무책임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집권 여당 대표가 대통령이 받아들일지 아닐지 불확실한 사면 문제를 언급했다 당내 반대 여론에 밀려 주저앉고 만 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리더십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사전교감이 없었을까. 앞서 인터뷰에서 사면과 관련된 언급 전후에 나온 이 대표의 발언에서 얼마간 추론이 가능하다. 인터뷰 내용을 원문 그대로 살펴보면 이렇다.

    질문: 최근 대통령과 두 차례 면담했는데 배경은? 

    답변: 내가 두 차례 다 먼저 요청했다. 

    질문: 무엇을 건의했나. 

    답변: 지난달 중순에는 진영의 쇄신을, 지난달 말 면담에서는 새해 기조로 안정과 소통을 건의드렸다.

    문재인 대통령. [동아DB]

    문재인 대통령. [동아DB]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26일 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단독으로 회동을 가졌다. 12월 12일 단독 회동을 한 뒤 2주 만이다. 바로 이 회동 때 안정과 소통을 건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회동 자리에서 원론적인 건의만 했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12월 12일 회동은 그랬을지 모른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가 임박한 시점이었으며, 그로부터 나흘 뒤인 16일 문 대통령은 징계를 재가했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사의를 표명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선출 문제도 중요할 때였다. 반면 12월 26일 회동 때는 특별한 현안이 없었다. 오히려 현안 마무리 뒤 정국 운영에 관한 대화가 이뤄졌을 개연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문제를 비롯한 국민 대통합 방안에 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봐야 한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확답을 줬을까. 그랬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문 대통령은 민감한 현안에 즉답을 피하는 편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지적처럼 정치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이거나 차후에라도 책임 져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런 평소 태도로 추론해본다면 일종의 선문답을 나눴을 개연성이 높다. 이 대표가 사면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을 때 문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확정 판결이 나와야 하지 않겠나. 그게 언제냐”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눴을 수 있다. 이 대표는 이를 의중을 확인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고, 문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확답을 주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기로 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다. 왕조시대 주군과 가신 사이에서나 있을 법한 대화법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으로서는 손에 흙을 묻히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고, 이 대표로서는 비록 당장은 총알받이가 되더라도 실익을 챙긴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자기정치+대행정치’ 아니냐는 것이다.

    자기정치+대행정치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이 먼저 나서 사면론을 제기할 수 없다. 적폐청산을 앞장서 주장해온 처지에서 이는 결국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진보 정체성이 강한 핵심 친문(친문재인)계의 반대를 직접 헤쳐 나가기도 힘겨울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내분으로 비화하면 레임덕이 더 가중될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퇴임 이후를 생각하면 사면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안 그러면 정치 보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 보복이 아니더라도 현 정부 하에서 진행된 권력형 비리 수사 결과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처지로 몰리게 된다면 빠른 시일 내 사면이라도 받아야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 제거에 실패하면서 그 필요성은 더 높아졌다. 법 개정 끝에 야당의 비토권까지 배제하면서 공수처를 출범시켰지만, 임기 말을 맞아 공수처가 청와대나 민주당 뜻대로 움직여줄지도 의문이다. 공수처장이 윤 총장보다 더 원칙적으로 수사에 임하면 오히려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이상의 점들을 고려할 때 본인 재임 기간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함으로써 전례를 만들어 퇴임 이후 안전판으로 삼고 싶은 생각이 당연히 들었을 것이다.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스스로 먼저 나서지 못해 머뭇거리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총대를 메고 앞장섰으니 내심 반가웠을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2019년 5월 9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청와대에서 진행된 KBS 특집 대담 ‘대통령에게 묻는다’에 출연했을 때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두 전임 대통령께서 한 분은 보석 상태지만 재판을 받고 계시고, 한 분은 수감 중에 있는 이런 상황에 대해 정말 가슴이 아프다. 누구보다도 제 전임자 분들이기 때문에 제가 가장 가슴도 아프고 부담도 크다. (중략) 아직 재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사면을 말하기는 어렵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는 법적 전제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 사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제가 가장 가슴도 아프고 부담도 크다”고 언급한 대목이다. 사면해주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인간적으로 안타까워 사면해주고 싶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본인 퇴임 이후 안전을 보장받는 차원에서 사면해주고 싶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퇴임이 다가오면서 아마도 문 대통령은 후자 관점으로 더욱더 기울어지고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는 사면 카드를 절대 접지 않을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악재로 작용할 테지만, 장기적으로는 호재가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밀고 당기기를 하면서 결국 관철시키는 모습, 내유외강의 강인한 지도자 이미지를 연출하고자 할 테다. 문 대통령으로서도 마지막 순간 못 이기는 척 사면을 단행하면 그만이다. 이 ‘자기정치+대행정치’가 완료되는 시점은 아마도 차기 대선 투표일에 임박한 어느 날이 아닐까 싶다. 민주당 대선주자로 이 대표가 최종적으로 선택받지 못하더라도 그럴 것이라 본다. 이 대표도 노림수가 있지만, 문 대통령도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이재명 경기도지사 또는 친문계 제3후보가 대선후보가 되더라도 외연 확대는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코앞으로 닥친 재보선 승리 차원에서도 사면론은 나쁘지 않은 카드다. 논의만으로도 중도 또는 보수 지지층의 표심을 흔드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국민의힘을 포함한 보수 지지층 내부의 갈등을 증폭하는 효과도 있다. 가덕도 신공항 이슈가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 간 내분을 유발했다면, 사면론은 구친박(친박근혜)계와 구친이(친이명박)계, 그리고 초선의원 사이에 균열을 유발하는 변수라는 의미다. 범야권이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 이른바 반문(반문재인)연대 또는 정권심판론의 예봉을 무디게 만드는 효과도 당연히 거둘 수 있다. 거의 꽃놀이패가 아닌가 한다.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공격 포인트를 정확하게 잡아내지 못한 채 당황 속에서 허송세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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