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 효능 가운데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장 기능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한방에서도 김은 치질 예방과 치유에 효과적인 음식으로 알려졌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보면 ‘김은 맛이 달면서 짜고 성질은 차다. 토하고 설사하며 속이 답답한 것을 치료하고 치질을 다스리며 기생충을 없앴다’고 기록돼 있다. 이는 김에 다량으로 함유된 식이섬유 덕이다. 식이섬유는 흔히 변비 해소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물에 잘 녹지 않는 불용성 식이섬유는 음식 찌꺼기가 장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짧게 해줘 용종, 대장암 같은 대장질환 발병률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변비 해소에 좋으니 치질 예방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볼 수 있다. 마른김 100g에는 식유섬유 33.6g이 들어 있는데, 그중 수용성이 0.3g, 불용성이 33.3g이다.
건망증·치매 예방에 효과적
또한 포피란은 위점막 부종과 출혈 등의 손상을 막아 위암 발병률도 낮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에 따라 김에서 추출한 포피란 성분으로 신약을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해조류에 풍부한 알긴산이라는 식물성 섬유도 위장벽을 보호하고 대변을 부드럽게 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 두뇌 발달, 특히 건망증과 치매 예방에 좋다는 평이다. 김에 풍부한 비타민B1·B2가 뇌신경작용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비타민B2는 피부, 손발톱, 머리카락의 건강을 유지해주고 혀와 입안, 입술이 헌 데도 효과가 있다. 또 활성산소로 인한 세포 손상도 방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몸에 좋다고 무조건 많이 먹는 것이 좋지만은 않다. 김도 다른 해조류와 마찬가지로 요오드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심기현 교수는 “요오드는 갑상샘호르몬 성분이기 때문에 과하게 섭취하면 갑상샘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과자처럼 먹는 김스낵의 경우 쉽게 포만감이 들지 않아 과식하기 쉬우므로 한 번 먹을 때 적당한 수량을 정해놓고 그 이상은 먹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 섭취 시 유의해야 할 또 다른 점은 기름과 나트륨이다. 밥반찬용 김은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린 뒤 구워 내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문제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의 김을 조미했을 때다. 아무리 신선한 기름을 사용해도 오래 두고 먹으면 공기와 햇빛 탓에 기름이 산화해 유해 성분인 과산화지질이 생기고, 특히 들기름은 참기름과 달리 천연 항산화제인 세사몰린 등이 포함돼 있지 않아 산패하기 쉽다. 조미김은 염분 섭취를 높인다는 점에서도 주의해야 한다. 나트륨 섭취가 늘어나면 혈관 내 압력이 높아져 혈압 상승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김을 가장 건강하게 먹는 방법은 생김을 구워 간장에 살짝 찍어 먹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심 교수는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렸다면 가능한 빠른 시일 내 먹고, 햇빛을 차단할 수 있는 밀폐용기에 보관해 지방 산화를 막는 것이 좋다. 또한 고혈합 환자의 경우 시중에서 판매하는 조미김을 먹을 때 소금을 살짝 털어내고 먹기를 권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은 김은 어떤 김일까. 일반적으로 검은색 바탕에 약간의 초록김(청태)이 섞여 있고 광택있는 김을 일품으로 친다. 특히 불에 구웠을 때 녹색빛이 선명한 것이 좋다. 물에 녹여도 등급을 알 수 있는데 잘 녹는 것이 좋은 김이다. 보관할 때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밀봉해 냉장 혹은 냉동실에 넣어두는 게 좋다. 김이 눅눅해졌다면 전자레인지에 넣고 10초 정도 가열하면 다시 원래의 맛과 향이 되살아난다.
김씨가 처음 만들어 ‘金’이라 이름 붙어
우리나라 사람은 언제부터 김을 먹었을까. 김이 소개된 우리나라 최초 문헌은 ‘삼국유사’로 신라 때부터 김을 복쌈(복리·福裏)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본격적으로 김을 먹기 시작했다는 기록은 15세기 초 작성된 경남 관찰사 하연의 ‘경상도지리지’에 등장한다. 경남 하동 지방에서 토산품으로 김을 먹었다고 전해지는 것. 이 지역 구전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 한 할머니가 섬진강 어귀에서 조개를 채취하다 우연히 김을 먹어봤는데 맛이 좋아 대나무를 물속에 박아 김을 착생한 데서 김 양식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1429년 ‘세종실록’에는 명나라에 보내는 진사품으로 해의(김)가 기록돼 있고 1456년 ‘조선실록’에도 해의가 무역품으로 기록돼 있다. 김은 ‘해의(海衣)’ ‘자채(紫菜)’ ‘파래’라고도 불렀는데, ‘해태(海苔)’는 일본식 표기다.근대 수산학의 선구자인 정문기는 ‘조선의 수산’이란 책에서 조선의 김 역사는 200년 전 전남 완도에서 방렴(防廉)이란 어구에 김이 착생한 것을 발견하고 편발을 만들어 양식한 데서 비롯됐다고 기록했다. 1481년 집필된 ‘동국여지승람’에도 전남 광양군 태인도 특산품으로 기록돼 있어 그전부터 양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김을 최초로 양식해 건조하는 방법을 개발한 사람은 전남 광양에 살던 김여익(金汝翼)이라는 설이 있다.
광양에서 김여익이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에게 손수 만든 해산물을 진상했는데, 수라상에 새까맣고 종이 같은 반찬이 나오자 어리둥절해하던 인조는 한 번 먹어보고 맛이 좋으니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한 신하가 “광양 땅에 사는 김 아무개가 만든 음식입니다”라고 아뢰었고, 인조는 그 자리에서 “그럼 앞으로 이 ‘바다풀’을 그 사람의 성을 따서 ‘김’으로 부르도록 해라”고 명해 ‘김’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