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북핵 폐기 없는 한반도 프로세스 공허

INF조약 폐기가 불러올 격변에 문재인 정부는 어떤 대비하고 있나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9-06-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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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1일 핀란드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헬싱키 프로세스’를 추진했던 인사가 들고 온 당시 가방을 보며 “기를 받아 가야겠다”고 말했다. [뉴시스]

    6월 11일 핀란드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헬싱키 프로세스’를 추진했던 인사가 들고 온 당시 가방을 보며 “기를 받아 가야겠다”고 말했다. [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오사카 G20 정상회의 무렵 한미정상회담을 하기 전 원포인트로 남북정상회담을 갖고자 애써온 사실이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발언으로 밝혀졌다. 미국은 이를 의식하고 있었던 듯, 한미정상회담에서는 북한의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와 한미동맹 및 한미일 공조 강화를 의제로 삼겠다고 발표했다. 

    6월 11일 핀란드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1970년대 후반 ‘헬싱키 프로세스’는 냉전시대 긴장 완화에 기여한 협정이다. 국경선의 존중, 경제협력, 인도적 협력 등을 골자로 했다는 점에서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우리의 한반도 프로세스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고 이를 위해 모든 힘을 다 쏟을 것”이라고 밝혔다. 헬싱키 프로세스와 문 대통령이 말한 한반도 프로세스는 무엇이고,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대중 정책과 한반도 프로세스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1970년대 중반 유럽은 미국과 소련이 배치한 준중거리탄도미사일(MRBM) 문제로 뜨거웠다. MRBM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보다 정확도가 훨씬 높다. 소련이 바르샤바조약기구(WTO) 동맹국인 동독 등에 SS-20을 배치하자,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서독 등에 퍼싱-2를 투입하는 것으로 맞섰다. 그 시기 미국 국제정치학계에서는 ‘제2격(the Second Strike)’ ‘상호확실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공포의 균형(Balance of Horror)’ 같은 개념이 회자됐다.

    헬싱키 프로세스

    2월 1일 중거리핵전력(INF)조약 탈퇴를 발표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6개월 뒤인 8월 1일부터 미국과 러시아는 중국처럼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이하의 핵무기를 갖출 수 있게 된다. [AP=뉴시스]

    2월 1일 중거리핵전력(INF)조약 탈퇴를 발표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6개월 뒤인 8월 1일부터 미국과 러시아는 중국처럼 중거리탄도미사일(MRBM) 이하의 핵무기를 갖출 수 있게 된다. [AP=뉴시스]

    미사일방어(MD)체계가 없을 때니 당시 미·소 대결은 누가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느냐의 싸움이 됐다. 대량의 핵무기를 동시에 발사하는 선제공격(preemptive attack)이 성공하면 상대는 자기의 핵무기와 함께 궤멸한다. 미국은 이를 피하고자 ‘제2격’ 구비에 전력을 기울였다. 소련 핵공격이 미칠 수 없는 전략원자력잠수함에 다량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실어놓고, 소련의 선제공격에 대응 발사해 소련 역시 초토화시킨다는 전략이었다. ‘나를 죽이면 너도 확실히 죽는다’는 ‘상호확실파괴’ 전략이다. 덕분에 미국은 ‘공포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러자 소련은 미국과 그 동맹국을 이간해보려고, 동유럽에 MRBM을 배치했다. 예상대로 서유럽국가에서는 소련의 MRBM 배치는 문제 삼지 않고 미국의 퍼싱-2 배치가 서유럽을 위험에 빠뜨렸다며 반미-반핵시위가 일어났다. 서유럽국가 국민들이 핵공포에 젖어들고 있을 때 핀란드가 동서 양진영의 국가 대표를 헬싱키로 불러 평화를 논의해보자는 제안을 했다. 바로 ‘헬싱키 프로세스’인데, 이를 위해 35개국을 회원으로 한 유럽안보협력기구(CSCE·현 OSCE)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CSCE는 핵무기 배치 같은 정치군사 문제를 다룰 수 없었다. 군사 문제를 꺼내면 바로 미·소가 대립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모든 나라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인권이나 경제 같은 문제만 다루기로 했다. 상대의 의도를 몰라 과도하게 무장하는 사태를 피하고자 상호 교류를 확대해 긴장을 줄여가는 ‘예방외교’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취지에 어긋나게 CSCE는 SS-20과 퍼싱-2의 대치에 대해서는 논의하지도 못했다. 쿠바 위기를 해결한 것이 미·소 담판이듯, 이 문제 또한 미·소가 풀어가야 했다. 



    미·소는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미국과 서방국가의 1980 모스크바올림픽 불참으로 기 싸움을 한 뒤 비로소 제네바에서 마주 앉았다. 하지만 서로 상대의 양보만 요구해 회담을 진척시키지 못했다. 미국은 1983년 MD체계의 전신인 전략방위구상(SDI)에 착수했다. 1972년 미·소는 상대가 발사한 핵미사일을 요격하지 않는다는 대(對)탄도탄요격(ABM)협정을 맺은 바 있다. 소련은 SDI는 ABM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했으나, 미국은 연구하는 것은 위반이 아니라며 밀어붙였다. 

    속도가 마하 10이 넘는 ICBM을 요격하는 SDI는 막대한 연구비를 필요로 했다. 미국은 우주에서 핵미사일을 파괴하는 스타워즈 계획까지 전진시켰다. 하지만 소련은 동유럽에 소련군과 MRBM 500여 기 배치에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어 SDI를 추진할 자금이 부족했다. 

    그때 소련에서 ‘정변’이 일어났다. 1964년부터 소련을 통치해온 레오니트 일리치 브레즈네프 총서기가 1982년 사망한 것. 이어 유리 블라디미로비치 안드로포프, 콘스탄틴 우스티노비치 체르넨코가 차례로 후계자가 됐으나 모두 1년 안팎으로 숨졌다. 소련 공산당 내부의 권력투쟁은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총서기가 되면서 마무리됐다. 

    고르바초프는 SDI를 따라 했다간 큰 경제위기가 온다고 판단했다. 그는 1986년 1월 15일 미국 측에 서로의 MRBM을 제거하자고 제안했다. 미국과 군비경쟁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겨난 여력으로 소련 경제를 살려보겠다며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도 펼치겠다고 했다. 그리고 동유럽과 아프가니스탄에 나가 있는 소련군을 철수시켰다. 미국은 처음에는 이 제의를 거부했으나 소련과 세부 협상을 한 후 1987년 ICBM, SLBM을 제외한 모든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중거리핵전력(INF)조약을 체결했다. 

    동유럽국가 민주화를 확정 지은 1989년 몰타 미·소 정상회담. 미·소 대립과 담판이 냉전 완화를 가져왔다.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동유럽국가 민주화를 확정 지은 1989년 몰타 미·소 정상회담. 미·소 대립과 담판이 냉전 완화를 가져왔다.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SS-20과 퍼싱-2가 철수되자 유럽국가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88 서울올림픽이 열리자 동서 양진영이 모두 참가해 사상 최대 올림픽이 됐다. 그때 생중계된 서울올림픽을 보고 동유럽국가들은 6·25전쟁을 치른 한국의 발전상에 놀랐다고 한다. 소련군이 물러나자 동유럽국가에선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WTO의 맹주인 소련은 WTO 회원국에서 일어난 위기에 공동 대응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다시 소련군을 파견해 동유럽 시위를 진압할 수 있었으나 고르바초프는 파병할 형편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때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헬무트 콜 서독 총리로 하여금 소련에 100억 달러를 지원하게 했다. 이러한 미·독(美·獨) 공조가 독일 통일의 기반이 됐다. 그리고 부시와 고르바초프는 1989년 지중해 몰타에서 만나 양국은 유럽사태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몰타선언). 유럽국가는 자국 문제는 스스로 결정하라고 한 것. 이후 동유럽국가에서는 민주화 시위가 잇따라 일어나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동독은 서독에 흡수되는 평화통일을 이뤘다. 1991년엔 15개 공산국가로 구성돼 있던 소련마저 무너졌다. 

    소련을 대신한 러시아는 서구식 대통령제를 택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승계했다. 미국은 곧바로 세계적인 비핵화를 추진했다.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들이 갖고 있던 핵무기를 러시아에 반환하게 했다. 한국의 노태우 정부는 북한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하고 한국에 있던 미국 핵무기를 철수시켰다. 

    미국은 비핵화를 토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CSCE는 유고 베오그라드 회의(1977~1978), 스페인 마드리드 회의(1980~1983), 오스트리아 빈 회의(1986~1989)를 이어갔지만, 냉전 완화와 새로운 세계 건설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냉전을 끝낸 미국은 핵무기에 의존해온 세계전략을 바꿨다. 컴퓨터(Computer)와 통신(Communication)을 기반으로 정보(Intelligence)를 흐르게 하며, 위험국은 감시(Surveillance)하고 적국은 정밀 정찰(Reconnaissance)하다 적대적인 행동을 하려는 것이 발견되면 초정밀 유도무기(Precision Guided Missile)로 선제공격하는 지휘(Command)·통제(Control)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이는 C₄I SR PGM으로 약칭됐다. 이를 갖추기 위해 미군이 만든 것이 위성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이었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구축한 미국은 자국 방어를 강화하고자 2001년 ABM협약 탈퇴를 선언하고 MD체계 구축에 나섰다. 

    미국은 9·11테러를 당하자 이라크를 상대로 새로운 전쟁을 구사했다. 미국은 이라크 국민을 거의 해치지 않고 이라크 정부와 군 수뇌부, 정보통신망만 제거하는 전쟁을 선보인 것이다. 이로 인해 이라크군은 초전에 마비돼 무너졌는데, 이러한 신전쟁을 ‘네트워크중심전’ 혹은 ‘마비전’이라 불렀다.

    네트워크중심전

    주한미군이 2017년 9월 경북 성주 초전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기지에서 발사대 배치 작업을 위해 중장비 차량을 이동시키고 있다. [뉴시스]

    주한미군이 2017년 9월 경북 성주 초전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기지에서 발사대 배치 작업을 위해 중장비 차량을 이동시키고 있다. [뉴시스]

    그러한 때 중국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개혁·개방으로 경제를 일으킨 중국은 미국을 칠 수 있는 ICBM은 20발 정도만 갖고, 주변국을 위협할 수 있는 MRBM 등을 다량으로 구비한 후 미국에게 ‘신형 대국관계’를 갖자고 요구했다. 미국과 대등한 G2임을 주장한 것이다. 이때 중국의 전략은 주변국인 일본, 한국, 대만, 러시아, 인도를 초토화할 수 있는 핵전력을 구비해놓고 이들 나라의 투자를 유치해 고속성장하자는 것이었다. 

    중국은 자국의 MRBM이 도달할 수 있는 바다까지를 ‘도련(島鍊)’으로 설정하고, 도련 안쪽은 중국의 영향권 아래 두는 전략을 펼쳤다. 도련 안쪽이 한국 동·서해와 동중국해, 남중국해다. 중국은 군함과 공군기를 한국 동해에 투입하고, 남중국해에는 인공도서와 군사기지를 만든 뒤 유엔해양법협약을 무시하며 영해를 선포했다. 러시아는 중국의 팽창이 달갑지 않았지만, 러시아제 무기를 구입해가는 중국 측을 지지했다. 

    도련 안쪽에 들어간 미국 함대는 이지스체계를 통해 중국 MRBM을 방어할 수 있다. 그때 북한이 핵개발에 열을 올렸다. 미국은 북핵으로부터 미군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괌에 이어 한국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했다. 일본은 자력으로 이지스 어쇼어를 도입하기로 했다. 동북아에서 ‘중국과 북한의 MRBM(동풍-21 포함) 대 사드’ 대립이 일어난 것인데, 한국에서는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후 미국은 일본과 인도태평양전략을 채택해 대중 봉쇄를 강화했다. 가장 대표적인 조치가 2월 1일 INF조약 탈퇴 선언이었다. 

    이 조약은 어느 한쪽이 탈퇴를 선언하면 6개월 후 효력을 잃는다는 조항을 갖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8월 1일 이후 미국과 러시아는 MRBM 이하의 핵전력을 가질 수 있다. 중국에 무기를 팔아야 하는 러시아는 미국이 장애물을 제거해줬으니 가만히 있었다. 5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냉전시대 러시아가 개발한 단거리핵미사일 이스칸데르와 모양이 비슷했다. INF조약 체결로 이 미사일을 쓸 수 없게 된 러시아는 이를 수출했는데, 한국도 이를 도입해 현무-2B를 만든 바 있다. 

    INF조약 폐기가 확정되면 러시아는 중국을 칠 수 있는 MRBM 이하의 핵미사일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미국은 군함에서 발사하는 토마호크와 항공기에서 발사하는 ALCM을 대표적인 중거리전력으로 꼽는다. INF조약이 폐기되면 미국은 바로 이 미사일에 핵탄두를 달 것으로 보인다. 인도도 MRBM 보유국이다. 결국 미국, 일본, 인도가 손잡고 중국을 포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이 실현 가능해지는 것이다.

    INF조약 폐기가 불러올 파장

    한반도 프로세스를 제시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자신의 역할을 자문으로 한정했다, 남북협상과 대미협상, 그리고 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인도태평양전략을 펼치고 있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왼쪽부터) [뉴시스, 동아일보, AP=뉴시스]

    한반도 프로세스를 제시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자신의 역할을 자문으로 한정했다, 남북협상과 대미협상, 그리고 안보정책을 총괄하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인도태평양전략을 펼치고 있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왼쪽부터) [뉴시스, 동아일보, AP=뉴시스]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8월 1일이라는 시점이다. 그때까지는 북한을 관리해야 하니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받았다며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운을 띄우고 있다. 그러나 원포인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회담을 중재하려는 한국에 대해서는 북한이 비핵화를 확약해야 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회담에서 비핵화를 약속했으니 다시 만나려면 1986년 고르바초프처럼 행동하라는 것이다. 

    1980년대 유럽에서는 미·소 대립과 헬싱키 프로세스가 병존했지만, 유럽 정치지도를 바꾼 것은 미·소 간 담판에 의한 INF조약 체결과 몰타선언이었다. 1980년대 핀란드는 중립국이었고 유럽 분단국가는 독일이었다. 한국은 중립국이 될 수 없는 나라인 데다 분단국이며 북핵 위협 아래에 있다. 그런데도 한국이 동북아 평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 한반도 프로세스다. 박근혜 정부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했다. 헬싱키 프로세스는 ‘국경 유지’를 전제로 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통일대박’을 이루겠다는 비논리적인 주장을 폈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통일헌장을 만들어 사실상 통일을 이루겠다는 비전을 내놓고 있다. 앞뒤가 안 맞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학자 시절 문정인 특보는 CSCE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남북기본합의서도 헬싱키 프로세스를 참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문에 응하는 특보일 뿐 문재인 정부를 대표해 안보정책을 펼치는 안보실장이 아니다. 그는 “학자적 위치에서 조언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은 중국 고립정책을 펼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과 쉽게 만나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처럼 한반도 프로세스에 젖어 있다. 

    INF조약이 폐기되면 미국 핵전력이 강화된다. 또 MD체계와 C₄I SR PGM 능력을 갖춘 미국은 AI(인공지능)를 기반으로 한 ‘자율(Autonomy)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한 대의 유인기가 여러 대의 무인기를, 한 명의 병사가 여러 대의 전투로봇을 이끌고 싸우는 유·무인 복합전쟁 능력을 갖추려는 군사혁신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INF조약 폐기가 불러올 파장에 대비할 준비를 하고 있을까. 한반도 프로세스로 남북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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