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빅테크들은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 속에서 성장해왔다. 미래 AI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를 끌어올린 측면도 컸다. 앞으로는 단순한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오르기 어려울 것이다. 실질적인 수익을 얼마나 내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인프라가 어느 정도 깔린 만큼 이제는 실제로 AI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는 기업이 주도주로 재편될 시점이다.”
미국 증시 전문가인 안동후 유에스스탁 이사가 5월 7일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최근 시장에선 AI 사이클이 투자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뒷받침하는 흐름이 강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간 AI 투자 국면을 이끌어온 미국 빅테크도 단순한 실적 수치뿐 아니라, AI 서비스를 실제로 구현할 준비가 돼 있는지에 따라 주가가 엇갈린다.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AI를 통해 얼마나 생산성을 높였는지, 비용을 줄였는지 등을 강조하고 있다. 안 이사는 AI 소비 사이클에서 주목할 기업으로 팔란티어, SAP, 서비스나우를 꼽았다.
관세 불확실성 완화에 반등
주가가 4월 초 급락 후 반등이 이어지고 있다. 일시적 회복인가, 추세 전환 신호인가.“현재 지수는 하락폭의 50%가량 반등한 수준이다. 물론 9거래일 연속 상승은 보기 드문 현상이다. 그렇다 해도 상승폭이 50일선, 200일 이동평균선 부근이라 진짜 회복이라고 보기엔 이르다. 반등 배경은 2가지다. 우선 관세 불확실성이 다소 걷혔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스위스에서 중국 측과 만난다는 소식만으로 S&P500 선물과 나스닥 100 선물이 반등했다. 또 각 기업 1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양호했다. 아직 관세 영향이 본격 반영되지 않은 구간이라 빅테크를 포함한 다수 기업이 전반적으로 괜찮았다. 그래서 급하게 반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4월 급락장에서 불거진 ‘Sell US’ 흐름은 완화됐다고 보나.
“그렇다. 4월 한 달 동안 S&P500이 빠르게 하락했지만, 이후 반등이 나타나며 매도세는 진정된 상황이다. S&P500 지수 5000 선이 무너지던 시점에 매도한 투자자라면 지금 재진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당시 주가 하락 원인은 기업 실적 악화라기보다 경기침체 우려였다. 앞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적인 경기침체 상황을 만들지는 지켜봐야 한다. 채권시장이 흔들리자 관세 90일 유예안을 꺼내지 않았나. 채권시장이 흔들리면 역효과가 크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는 트럼프 대통령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변동성을 파악할 때 주로 어떤 지표를 보나.
“우선 VIX(S&P500 지수 옵션 가격을 바탕으로 앞으로 30일간 시장 변동성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는 지표)를 확인한다. 또 브레드 스러스트(Breadth Thrust) 신호(시장 전체에서 상승 종목 비율이 급격히 늘어나는 매수 신호)도 확인한다. 최근 기준으로 20일 이동평균선 위에 올라선 종목 비율은 약 80%에 달하는 반면, 200일 이동평균선 위에 있는 종목은 30% 수준이다. 단기적으로는 많은 종목이 반등했지만 장기 추세는 아직 본격적으로 돌아선 상황이 아니다. 다시 말해 최근 반등은 힘이 소진될 가능성이 있고, 변동성이 재확대될 여지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추가로 헤지펀드 움직임도 본다. 최근 반등장에서 헤지펀드의 CTA(추세추종형) 펀드 매수세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관세 반영 전, 빅테크 1분기 선방
엔비디아를 제외한 빅테크 1분기 실적이 거의 다 나왔다.“전반적으로 1분기 실적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이번 분기는 관세 영향권이 아니다. 기업들이 미리 재고를 확보한 경우도 많고, 가격 인상도 본격화되기 전이라 비교적 무난한 결과였다. 다만 기업들도 관세 불확실성이 남았다는 점을 의식하는 분위기다. 실적이 좋게 나와도 관세 위험을 해소하지 못하면 주가가 따라가지 못한다. 대표적 예가 애플이다. 관세 노출이 여전히 크고, CEO 발언을 봐도 명확한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 아마존도 비슷하다. 20달러 이하 저가 상품에 관세를 반영한 가격을 매기려다 백악관과 충돌을 빚었다. 메타는 아시아 지역 광고 수요가 줄면서 테무와 쉬인 등이 인스타그램 광고를 축소한 영향도 받았다. 빅테크 전반이 중국 관련 노출에서 직간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안동후 유에스스탁 이사. 조영철 기자
“마이크로소프트(MS)다. 실적 발표 직후 주가가 9% 급등했다. 주가 상승 배경은 클라우드 수요다. 온프레미스(on-premise), 즉 자체 서버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AI를 도입하려면 결국 클라우드로 전환할 수밖에 없다. AI 서비스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 데이터를 모두 클라우드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환 수요가 MS의 클라우드 매출을 끌어올렸다. 오픈AI와 관계가 틀어졌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신규 계약을 맺었다. 중국시장에서 일부 소프트웨어가 수익 타격을 입을 수는 있어도 대표 제품인 ‘윈도우’까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적다. M7(엔비디아·애플·마이크로소프트·메타플랫폼스·아마존닷컴·알파벳·테슬라) 중에서는 MS가 관세 충격에 가장 강한 체력을 갖춘 기업이라고 본다.”
엔비디아가 5월 말 실적 발표를 앞두고 있다. 주목할 포인트는.
“출시 일정이 제대로 지켜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픽처리장치(GPU) H20 수출 제한 관련 비용을 어떻게 반영할지도 봐야 한다. 보통 중국에 팔지 못하면 해당 물량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엔비디아는 다른 수출국으로 물량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 해도 최근 2~3년처럼 높은 가격에 칩을 계속 팔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출 제한이 계속돼 수출 가능한 주요 시장이 미국밖에 남지 않는다면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그럼 엔비디아 실적과 주가 모두 꺾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B2B 소프트웨어 기업이 시장 이끈다
주도주가 ‘빅테크+AI 투자’ 사이클에서 ‘AI 소비+ 소프트웨어’ 쪽으로 넘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사이클 전환의 특징은 무엇인가.“첫 사이클은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었다. 당시엔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이를 뒷받침할 전력·냉각 설비 같은 하드웨어에 투자가 집중됐다. 그 흐름은 일정 부분 마무리됐다. 이 시기가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단계였다면, 이제 시작되는 AI 소비 사이클에서는 해석된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다음 행동을 추천하고 실행하는 소프트웨어가 중심이 된다. 이른바 에이전틱 AI(agentic AI) 단계다. 예를 들어 기업 내부 회계 부서와 마케팅 부서는 다루는 데이터가 다르고 업무 구조도 상이하다. 이 두 조직 사이의 벽을 넘어 전체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고 활용 방안까지 제시하는 게 에이전틱 AI의 역할이다. AI를 업무에 실제로 적용하는 기업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로봇 등 물리적 AI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도 크다.”
AI 소비 사이클에서 주목할 만한 기업 3곳을 꼽는다면.
“팔란티어, 독일 SAP, 서비스나우를 꼽을 수 있다. 팔란티어는 국방·정부기관을 대상으로 효율화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성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잡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40의 법칙’(Rule of 40: 매출 성장률과 영업이익률의 합산 지표) 기준으로 83%나 된다. 일반적으로 40%만 넘겨도 양호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데, 이 수치는 생산성과 수익성이 매우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는 의미다. SAP는 전통적인 재무 소프트웨어에 AI를 성공적으로 도입해 기존 고객군을 중심으로 매출을 확대하고 있다. 서비스나우는 AI를 기반으로 재무, 인사, 보안 등 여러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한다. 기업 입장에선 한 번에 여러 기능을 통합해 쓸 수 있어 편리하다.”
단기 반응이 빠른 건 B2B(기업과 기업 간 거래) 소프트웨어 기업 쪽으로 보인다.
“그렇다. AI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기존 산업 내 기업 고객에 AI를 납품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반 소비자(B2C: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는 아직 AI에 돈을 지불할 확실한 서비스 구조가 형성되지 않았다. 메타·구글·오픈AI 모두 지금은 사용자를 생태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단계다. 아직은 유료화보다 사용자를 확보하는 쪽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팔란티어나 SAP는 주가가 많이 오른 상황이다. 어느 정도가 합리적 주가인지 판단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나.
“TAM(Total Addressable Market·잠재시장)을 잘 살펴야 한다. 단순히 현 실적이나 포워드 PER(주가수익비율)을 보기보다 이 기업이 진출한 시장 크기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봐야 한다. 예를 들어 팔란티어가 활동하는 국방·공공 효율화 시장은 최소 1조 달러(약 14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며, 향후 AI 확산과 함께 더 커질 수 있다. 이 안에서 팔란티어가 차지할 수 있는 시장점유율과 확장성을 고려해야 한다. AI가 이 산업을 얼마나 키울지 먼저 보고, 거기서 이 기업이 차지할 수 있는 몫을 따지는 게 합리적인 접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