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지호영 기자]
1945년 조선약품공업협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워진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및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등 ‘제약주권’ 실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협회 원희목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국내 제약바이오산업계가 자력으로 의약품을 개발하고 생산, 공급할 ‘제약주권’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라며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 성공을 위해 협회도 발 벗고 뛰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원 회장과 나눈 일문일답.
코로나19 사태로 제약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신약개발은 보건안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방역 및 의료체계가 취약한 나라들은 심각한 혼란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은 물론 선진국조차 의약품 부족 현상을 겪다보니 수출 봉쇄 등 자국 우선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죠. 결국 자력으로 의약품을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느냐, 즉 제약주권 실천 여부에 따라 국가 운명이 좌우되는 시대가 열린 셈입니다. 국내에서도 여러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해 뛰어들었습니다. 이들이 하루빨리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협회뿐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적극 도와야 할 때입니다.”
보건안보 위해 백신 개발 반드시 성공해야
세계시장에서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봅니까.“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위상이 많이 높아진 게 사실입니다. 이는 정부의 국제공조 확대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4년 의약품상호실사협력기구(PIC/S), 2016년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ICH)에 각각 가입한 데 이어 2019년 유럽연합(EU) 화이트리스트에도 등재되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또 지난해 의약품 수출액은 6조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최근 10년간 매해 15% 이상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전 세계 시장을 놓고 보면 국내 제약바이오시장 규모는 아직 미미합니다. 2018년 기준 세계 의약품시장 규모는 약 1400조 원인 반면 국내시장은 24조 원 규모밖에 되지 않습니다. 역으로 이는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약개발과 생산설비 확대를 위한 ‘투자’가 가장 중요합니다. 일부 혁신적인 기업들은 매출액의 20%까지 R&D 비용으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영업이익률이 7~8% 수준임을 감안할 때 매우 파격적 행보죠. 이 같은 노력이 바탕이 된 덕분에 2020년에는 10조 원 이상의 기술 수출 계약을 이뤄냈습니다. 이는 다시 R&D 투자로 이어지는 등 선순환 구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민관이 협력해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인지도와 비즈니스 신뢰도를 높여야 합니다.”
국산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 외국산이 아닌 국산으로 대체가 가능합니까.
“코로나19로 ‘의약품 패권주의’ 시대가 열렸다고 봅니다. 주요 선진국은 백신이 출시되기 전 입도선매에 경쟁적으로 나서기도 했고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자력으로 의약품을 개발해 생산하는 ‘제약자국화’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백신 개발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외국산과 국산 중 무엇을 택할지는 차후 문제이고, 보건안보 차원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절대 멈춰서는 안 됩니다.”
제약바이오산업 기반이 제대로 다져지려면 해외시장 진출이 필수일 텐데요.
“제약바이오 분야의 글로벌 시장 규모(1400조 원)는 자동차와 반도체를 합친 것보다도 큽니다. 과거 제약산업의 구조는 내수와 제네릭(복제약) 위주였지만 이제는 여기서 벗어나 제네릭과 개량신약, 신약이 병행하는 구조로 전환돼야 합니다. 그나마 최근 10년간 의약품 수출이 고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한국 기업들이 해외로 직접 나가 연구소도 짓고, 공장도 짓는 등 과감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들의 행보가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협회는 산·학·연 각 주체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노하우 등을 공유하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기술 공유는 물론 인적 교류도 활발히 해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이는 거죠.”
제약사 간 협업 중요
지난해 7월 1일 열린 한국혁신의약품 컨소시엄(KIMCo) 발기인 총회. [사진 제공 ·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우리 기업들을 미국·유럽 등 선진국 제약바이오 클러스터에 진출시키는 겁니다. 웨비나(웹+세미나) 등을 통해 비대면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20년 상반기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기업 연계프로그램(ILP) 멤버십에 컨소시엄 형태로 협회와 14개사가 가입했고, 영국 케임브리지 이노베이션센터(CIC) KPBMA 공용 사무실에도 국내 제약회사 10개가 입주할 예정입니다. 해외 현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야별 자문단도 구성했습니다. 특히 미국 보스턴은 세계 최대 의약품시장인 미국에서도 글로벌 기업 연구센터와 유명 대학·병원·바이오벤처 등이 입주해 2조 달러(약 2200조 원) 이상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곳입니다. 혁신이 살아 숨 쉬는 현장에 국내 기업들이 직접 뛰어들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게 협회가 할 일입니다.”
다국적 빅파마들은 신약 개발 시 컨소시엄을 적극적으로 구성하기도 합니다.
“개별 기업으로 한계가 있으면 협력 모델로 나가야 합니다. 제약과 제약, 제약과 벤처, 한국과 해외 기업, 산학연병, 민관협력 등 개별 주체가 갖고 있는 역량을 잘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도체나 배터리산업 같은 경우는 특정 기술력이 좁고 깊은 반면, 제약바이오산업은 그 반대예요. 분야가 매우 다양하고 특정 기술과 기술이 만나 제3의 물질을 만들어내는 등 협업이 매우 중요한 분야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8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국내 58개 제약바이오기업이 공동 출자해 한국혁신의약품컨소시엄(KIMCo)을 공식 출범했습니다. 이를 통해 감염병 치료제 등 혁신약품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정부, 약가인하 제도 개선해야
정부 지원도 중요할 텐데요.“물론입니다. 제약바이오산업은 특정 스타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제약기업이 저마다 특성을 기반으로 산업 인프라를 구축해나가면서 함께 성장해가는 구조입니다. 아직 규모면에서는 영세한 업체도 많기 때문에 선진 제약산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죠. 따라서 제약산업 전반의 역량과 기반을 강화하는 데 정부 지원이 절실합니다. 의약품 정책이나 약가(藥價)정책을 비롯해 산업 전반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정책이 계속 나와줘야 합니다.”
정부의 약가인하 제도가 제약사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사용량-약가 연동 협상, 실거래가 약가인하, 사용(급여) 범위 확대 시 사전약가인하, 특허 만료 시 오리지널 약가인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약가를 계속 낮추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약사 처지에서 약가는 연구개발의 재정적 원천입니다. 돈이 있어야 연구도 하고 신약 개발도 할 수 있죠. 제약바이오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재정 절감과 제약 산업 육성이라는 두 토끼를 다 잡으려면 정부의 균형 있는 약가 정책이 절실합니다.”
원희목 회장은 “코로나19를 제약바이오산업의 기회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해외로 나간 제약사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제약계도 지속적인 품질 혁신과 연구개발을 통해 제약자국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원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글로벌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는 인공지능(AI)·빅데이터를 활용해 신약개발의 비효율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2021년 협회가 가장 중점적으로 해나갈 역할을 소개해주십시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위드 코로나 시대’를 얼마나 잘 헤쳐 나가느냐입니다. 현재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서 과도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들이 국제무대에 연착륙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협회의 당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