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욕망 완벽 세팅 잠시 머무르는 임시 천막
‘박하사탕’ ‘밀양’으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감독이 된 이창동은 그 이전에 한국 사회의 상처를 농밀하게 들여다본 소설가였다. 그의 영화가 비록 ‘오아시스’ 같은 작품에서 환상성을 강하게 드러낸 부분이 있긴 해도, 기본적으로 ‘…
200809162008년 09월 08일영남 사림 적통 이언적 선생 왕도정치 꿈 숨을 쉰다
퇴계 이황은 시 한서암에서 이렇게 쓴다. “띠 엮어 수풀집 지으니 아래는 차가운 샘 솟아오르네/ 깃들어 쉼 가히 즐길 만하니 아는 이 없음도 한하지 않노라.” 이런 정한을 두고 어디 한가로운 곳, 정자를 찾아 그곳에서 흐르는 강물이…
200809092008년 09월 01일한 굽이 돌아 설움 흐르고 두 굽이 돌아 사랑 넘치네
‘언니’는 이태 전에 남편을 잃었다. 남편은 추석을 지내고 근무지로 돌아가다가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던 날, 폐경기에 이른 언니의 몸에서 ‘혈(血)’이 흐른다. ‘언니’의 마지막 피다. 시댁 식구들에게 ‘…
200809022008년 08월 25일세상 잠든 시간에도 청아한 빛과 소리 깨어 있어
음악평론가 강헌은 ‘딴따라 가요’를 대중음악으로, 나아가 한 시대의 집단 초상화가 되는 중요한 대중예술로 끌어올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중진이다.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음악학을 익힌 그가 이런 작업을 십수년간 해온…
200808262008년 08월 20일북적대던 항구 간 데 없고 고적한 마을에 詩心만 가득
이산하 곳곳에 비경과 절경이 차고 넘쳐서 이제는 ‘체험학습’이니 ‘문화관광’이니 하는 소리를 넘어서 ‘디카 출사처’니 ‘드라이브 코스’ 같은 소리도 숱하게 들린다. 저 임진강에서 남녘의 섬까지 이 잡듯 속속들이 뒤져낸 끝물이니 이 …
200808122008년 08월 06일찾았다! 고요한 이곳 도시인 감성 충전소
최근 발간된 왕유 시전집(박삼수 역주, 현암사)을 읽었다. 현전하는 308편 376수 전체를 옮기고 일일이 주석을 단, 9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에 햇빛도 드나들고 바람도 선선히 지나다니도록 절반은 건성으로 서너 쪽씩 넘겨가다 위급…
200808052008년 07월 29일지친 영혼 달래주는 도심의 푸른 메아리
옥천성당의 종소리가 소박하면서도 거룩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 소리 한번 들으려고 대청호 굽잇길을 따라 옥천-충북 옥천군 옥천읍-까지 갔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끝내 듣지 못하고 올라왔다. 더구나 옥천성당은 보수공사 중이었다. 분…
200807292008년 07월 21일흰 구름도 쉬어 가는 오지 세상 향해 손 내밀다
오늘의 세태에서, 도시를 벗어나 어디론가 출장을 떠나거나 나들이를 갈 때, 봄꽃 구경이며 여름 휴가지의 해변들, 그리고 가을 단풍 구경이나 겨울 스키 시즌의 눈밭이라면 모를까, 그 나머지 공간들로 들어갈 때면 매우 난감하고 어색하게…
200807222008년 07월 14일단청은 꽃잎에 물든 듯 자비는 속세를 감싼 듯
내소사를 바라고, 그곳을 향하여 질주하였으나 온전히 내소사를 참례하지는 못하였다. 줄포 쪽에서 꺾어 들어갔더라면 내소사 전나무 길 걸어, 산의 품에 가만히 들어앉은 내소사의 오랜 단청을 물끄러미 보았을 것을, 그만 변산 쪽에서 거슬…
200807152008년 07월 07일석양빛 물든 서해에 미당의 詩心 출렁이네
‘리셋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컴퓨터의 전원 버튼 옆에 ‘reset’이라고 적힌 버튼이 있는데, 작업을 시작하거나 끝내기 위해 절차에 따라 누르는 것이 전원 버튼이라면, 이 ‘리셋’ 버튼은 컴퓨터 작업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류…
200807082008년 06월 30일목탁과 염불 소리의 어울림 이만한 교향악이 또 있을까
여행자는 피곤에 못 이겨 의자에 앉자마자 눈부터 감았다. 지난 닷새 동안 그는 하루에 겨우 네댓 시간을 빼놓고는 하루 종일 차를 몰았다. 차가 쉴 때도 그는 일을 했다. 일이 끝나면 다시 차를 몰았고, 밤을 도와 달려 다음 목적지에…
200807012008년 06월 23일오백년 고택 대청마루 애틋하게 쏟아지는 햇빛
김성동의 장편소설 집은, 세상만사에 두루 통달하고 깊은 성찰까지 해내는 가장이 일상생활에는 자주 무능하고 대소사마저 형편없이 처신하여, 안 그래도 고부간 갈등이 심각한 집에 부채질을 더하는 이야기가 의뭉스럽게 술술 들려오는 소설이다…
200806242008년 06월 16일청포도 익어가던 영일만 찬연히 빛나는 철강 불빛
네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성경의 ‘욥기’ 8장 7절에 나오는 구절이다. 꼭 그런 일을 겪게 되어 여기에 적는다. 나는 5월 중순 포항에 ‘가야만’ 했다. 옛 노래 중에 최병걸의 ‘진정 난 몰랐었네’가 있는데 그 가사…
200806172008년 06월 11일좌우익의 유별난 싸움 그래도 찾아갈 내 고향이리라
국도를 달리다 보면 갑자기 공허해질 때가 있다. 길은 한적하고 오가는 차량은 드문데, 텅 빈 개활지에 잡목만 부스스 봄바람에 떨고, 갑자기 ‘정말 기름을 넣어주는 곳일까’ 의심스러운 주유소가 나타난다. 그때마다 나는 어김없이 차를 …
200806102008년 06월 02일항구의 불빛 따라 쌓인 사연 가슴 짠하게 밀려왔다
내륙 한복판 대전에서 기차가 출발한다. 0시50분에 출발하는 완행열차. 어디로 가는 걸까? 그 가사는 이렇다.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완행열차는 목포…
200806032008년 05월 27일군산 사랑도 역사도 흉터투성이 아~ 검은 멍든 바다여
경북 예천이 고향인 시인 안도현은 대학시절을 전북 익산의 원광대에서 보냈기 때문에, 오히려 소백산 아래쪽보다 금강하구의 너른 곳들에 대하여 오랫동안 사무쳐왔다. 예컨대 안도현은 군산 앞바다에 대하여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군산 …
200805272008년 05월 21일멈춰선 협궤열차의 추억 파도에 떠밀려 가슴에 요동치네
한반도 구석구석을, 은밀한 밤에 서로의 속살을 따뜻이 위무해주는 연인처럼, 그렇게 구석구석을 기행하며 눈물 몇 점은 묻어 있을 법한 산문을 남긴 시인 곽재구는 저서 포구기행에서 “한없이 고요했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세상 속으로 …
200805202008년 05월 13일심검당 고운 마루엔 깨달음의 볕 내려 있거늘…
여행을 떠난다. 짐을 꾸리고 아차 면도기를 넣어야 할까, 고작 이삼일 여정인데 수염이 얼마나 더 자라겠는가, 그리하여 서둘러 나서지만, 지하주차장에서 나올 때 햇빛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떠나기에는 너무 화창한 것이다. 그럼에도 떠난…
200805132008년 05월 07일어두컴컴한 역사의 상처 그 모든 것 껴안는 바다와 뻘
어떤 지역을 떠올렸을 때 그 순간 어떤 사람이 동시에 떠오른다면, 그 지역과 그 사람은 아주 행복한 인연을 맺었음이 틀림없다. 사람의 이름이 특정 지역과 가역반응을 교호한다면 이는 그 둘 모두에게, 그리고 그 사람과 그 지역을 애틋…
200805062008년 04월 30일영남루와 대숲 속삭임 작은 것들의 큰 역사
밀양은, 아주 오래전의 사실(史實)로 말하자면,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을 낳은 곳이다. 연산군 무오년의 끔찍했던 무오사화. 김종직은 그 환란의 실마리가 되었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썼는데, 진(秦)의 항우가 폐위시킨 …
200804292008년 04월 23일